HMM 딜레마민관 합동 '삼위일체' 시나리오 주목
산업은행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골자로 하는 HMM의 민영화 작업이 시계제로에 빠진 양상이다. 대주주인 산은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 했던 3조2800억원 규모의 영구채 전량을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매수 부담을 키웠다. 그렇지 않아도 난항에 빠진 유력 원매자 물색이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여기에 자사주 소각을 통한 밸류업과 SK해운 인수까지 추진되면서 HMM의 몸값을 부채질하고 있다. 2023년 7월 HMM 경영권 매각의 포문을 연 뒤 2년째 답보 상태에 빠져있는 HMM 새 주인 찾기의 해법을 모색해 본다.

[딜사이트 범찬희 기자] 난항에 빠진 HMM 새 주인 찾기 해법으로 민관 합동경영 체제가 주목받고 있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만 엑시트(투자금 회수) 하고 2대 주주인 한국해양진흥공사는 대주주 자격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원매자의 인수 비용 마련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고,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국적선사인 HMM이 특정 기업의 오너십에 휘둘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 BIS 경고등 엑시트 시급, 현상유지 선호…산은·해진공 '동상이몽'
25일 HMM에 따르면 현재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으로 36.02%(3억6919만9297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서 한국해양진흥공사가 35.67%(3억6559만859주)의 지분율로 뒤를 잇고 있다. 최근 HMM 주당 가격이 1만9000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기업가치가 14조원에 육박한다.
이는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에 투입한 11조원을 넘는 금액이다. 지난달 클로징된 해당 딜은 국내 기업이 추진한 사상 최대 규모의 M&A로 기록됐다. HMM이 정부 관리 체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2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후 소각, SK해운의 일부 사업부 인수 등 HMM의 밸류를 끌어올릴 이벤트가 뒤따르고 있다.
천문학적 몸값이 된 HMM의 새 주인을 찾을 수 있는 방안으로 해진공 잔류 시나리오가 제시된다. 최대주주가 민간 기업으로 교체되면 민영화에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는 만큼 산은 보유분만 매각하는 방법이다. 산은 보유분만 사들인다고 가정하면 인수비용은 7조원 수준으로 감소한다. 지난해 하림이 제시한 매입가(6조원)보다는 1조원 많은 수준이지만, 현 기업가치에 비해서는 절반 수준으로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산은과 해진공 가운데 엑시트가 더욱 절실한 쪽은 산은으로 보고 있다. 은행의 건전성 지표인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에 적신호가 켜져서다. 지난해 말 기준 산은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13.9%로 금융당국 권고치인 13%를 가까스로 넘긴 상태다. 하지만 HMM 보유 주식수가 늘면서 해당 수치는 0.1~0.2%p(포인트)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통상적으로 주식과 같은 위험가중자산은 은행의 건전성을 저해한다고 본다.
◆ 민간 경영권 이전…오너 배당·몸집 불리기 도구화 우려
이와 달리 해진공은 HMM 주주로 남아있는 것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2018년 7월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으로 해진공이 출범하게 된 배경에 HMM(당시 현대상선) 경영 정상화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HMM 살리기'라는 특명을 부여 받고 탄생한 조직이나 다름없는 만큼 HMM 대주주로 잔류하길 바랄 거라는 관측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2023년 연말 하림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당시 해진공이 HMM 주식 보유분(1억9759만859주) 전량을 내놓은 것은 몇 년 안으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일부 CB 물량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해진공이 선박금융 등 해운산업 전반에 걸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HMM 대주주 자격을 잃는다면 공사(公社)의 근간이 되는 기둥 하나를 잃는 거나 다름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해진공 잔류는 HMM이 민간 자본에 휘둘리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일각에서는 국가기간 산업인 해운업의 대표 회사 HMM이 특정 대기업집단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조 단위 영업이익의 일부가 배당을 통해 오너가(家)의 주머니로 들어가거나, 몸집 불리기를 위한 M&A 자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해진공과 더불어 화주의 지분투자까지 이뤄지면 '운임 후려치기'와 관행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물류학 박사)은 "해운과 물류에 대한 이해가 높은 민간기업이 지분의 40%를 갖고 해진공과 국민연금 등 정부 쪽이 30%를, 나머지 30%는 대형 화주가 보유하는 게 이상적"이라며 "민관 상호 간의 견제가 이뤄지면 2010년대 한진해운(현 SM상선), 현대상선(현 HMM), STX팬오션(현 팬오션)의 연쇄 위기를 불러온 국내 해운시장의 암흑기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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