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주'도 돈맥경화, 보폭 넓히는 LP세컨더리펀드
출자 약정액 미납 지분 인수 사례 속속…단순 유동화 넘어 활용도↑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2일 07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최양해 기자] # 중소형 벤처캐피탈 A사는 최근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자사가 운용하는 펀드에 출자한 민간 유한책임조합원(LP)이 파산하면서 캐피탈콜(수시납입)에 응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다. 이대로라면 펀드 결성총액 규모가 쪼그라드는 것은 물론, 받을 수 있는 관리보수까지 줄어들 처지였다. 이때 LP세컨더리펀드가 손을 내밀었다. 파산한 민간 LP가 보유한 지분과 함께 출자의무를 동시에 떠안는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A사 입장에선 LP 구성만 변화가 생겼을 뿐 어떠한 손해도 보지 않게 됐다.


국내 벤처투자 업계에서 LP세컨더리펀드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단순히 출자자의 지분을 유동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금경색에 처한 기존 LP의 '출자 약정액 미납 지분'을 인수하는 투자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어서다.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새해 첫 달부터 출자 약정액 미납 지분을 인수하는 LP세컨더리 딜(deal)이 성사됐다. 중소형 벤처캐피탈 A사가 운용하는 B펀드에 약 6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던 해외 민간 LP가 30억원만 납입한 상태에서 부도를 맞은 게 발단이 됐다.


딜을 주도한 LP세컨더리펀드 운용사는 우선 파산한 LP가 보유한 B펀드 지분을 50% 할인한 가격에 매입했다. 여기에 향후 A사가 캐피탈콜을 요청할 때 잔여 출자 약정액 30억원을 납입하는 의무를 넘겨받았다. 총 45억원을 들여 B펀드에 60억원을 출자한 LP가 얻을 수 있는 포트폴리오 구성을 확보한 셈이다.


흔하진 않지만 앞서도 이 같은 형태의 LP세컨더리 딜은 종종 성사된 적 있다. 기존 LP가 보유한 펀드 지분 가치로 할인율을 협의한 뒤, 출자의무를 함께 넘겨받는 방식을 활용했다. 업계는 올 들어서도 고물가·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LP세컨더리펀드를 매개로 한 출자자 손바뀜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고시한 벤처투자조합 표준규약에 따르면 펀드에 참여한 LP가 출자금 납입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조합원총회의 별도 의결 없이 당연 탈퇴된다. 탈퇴 직전까지 보유한 투자자산(출자 비중으로 환산한 지분)은 '우선매수가'에 처분해야 한다.


우선매수가는 '기납입한 출자금액의 50%' 또는 '조합원총회 탈퇴 직전 평가한 조합자산 평가액에서 해당 LP 지분율로 환산한 금액의 50%' 중 작은 금액으로 결정된다. 가령 100억원을 납입하기로 했던 LP가 50억원을 납입한 상태에서 출자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50억원의 절반인 25억원이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우선매수가인 셈이다.


우선매수 권한은 동일 펀드 출자자 가운데 출자의무를 이행한 다른 LP들이 갖는다. 이들이 매입을 원치 않을 경우엔 업무집행조합원(GP)이 우선매수 권한을 행사하거나, 신규 출자자가 조합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단 LP세컨더리펀드와 같은 신규 출자자가 지분을 인수할 때는 우선매수가를 적용하지 않는 게 차이점이다.


벤처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처럼 자금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선 펀드의 포트폴리오 구성이 매우 뛰어나지 않는 한 LP와 GP 모두 우선매수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한 공백을 LP세컨더리펀드를 활용해 채우려는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출자 약정액 미납 지분을 인수하는 LP세컨더리 딜은 연관 관계자들 모두 수요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GP 입장에선 펀드 결성총액과 관리보수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LP세컨더리펀드는 할인된 가격에 투자를 단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출자의무를 이행하지 못해 퇴출된 LP의 채권단 입장에서도 수요가 있다. 규약상 LP, GP, 신규 출자자 가운데 누구에게도 보유 지분을 매각하지 못하면 앞서 출자한 자금을 당장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펀드 청산 이후에나 납입한 출자금을 환급받을 수 있다 보니,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서라도 LP세컨더리펀드에 잔여 지분을 처분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벤처캐피탈 한 관계자는 "LP의 출자의무를 세컨더리펀드에 함께 넘길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수요가 없는 게 아니다"며 "최근 몇 년간 정책자금을 토대로 결성된 LP세컨더리펀드의 투자 영역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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