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vs 엘리엇, 장기전 시작

[딜사이트 공도윤 기자] 서울중앙지법은 19일 11시 삼성물산과 엘리엇간 1차 심문을 진행한다. 엘리엇이 지난 9일에 제기한 합병결의 임시 주주총회 금지 가처분 소송과 11일에 제기한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 관련 주식처분 금지 가처분 소송에 대한 심문이 이뤄질 예정이다.


폭풍전야일까? 법정싸움을 앞두고 삼성그룹 측은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사장단이 직접 나서 적극적으로 언론에 대처하고 있는 반면, 엘리엇 측은 조용하다. 현재 삼성 측 우호지분은 19.8%, 엘리엇 7.1%, 외국인 투자자 지분은 26.7%, 국민연금 10.2%를 보유하고 있다. 합병 성사여부의 키를 쥐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 역시 네덜란드연기금을 제외하고 찬반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엘리엇이 장기전에 돌입했다고 보고 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엘리엇은 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로 합병 무산보다는 합병이 성사되는 것이 더 많은 주가 차익을 볼 수 있다”고 분석, 애초에 엘리엇에게 합병 성사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엘리엇이 그동안 벌인 해외소송 사례를 보면 사전 치밀한 계획 하에 장기전으로 간 경우가 있었다. 엘리엇은 2001년 아르헨티나 재정위기 당시 액면가 13억3000만달러 규모의 국채를 4800만달러의 헐값에 매입해 2014년 16억달러를 상환 받았다. 14년간 보유한 투자 수익률은 3233%였다. 엘리엇은 채무탕감을 원하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채무조정안을 거부한데 이어, 2012년 액면가 전액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해 엄청난 차익을 거둔 것이다.


지난 2004년 삼성물산의 주식 5%를 매입했던 헤르메스는 당시 주식매입 목적을 ‘투자목적’으로 밝혔으나 이번 엘리엇은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했다는 점 역시 장기전을 예고한다. 최근 엘리엇은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에게 적극적으로 경영권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통합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엘리엇은 지분을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업체 주니퍼에게 3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2명의 신규 이사 선임, 비용절감, 글로벌 인력 감원, 모바일 보안부문 매각을 요구한데 이어, CEO교체까지 이뤄냈다.
올해는 미국 데이터 통합 소프트웨어 업체인 인포매티카에 지분 매각과 회사 매각을 요구해 결국 이 회사는 사모투자펀드(PEF)인 페르미나와 캐나다연기금 투자위원회에 주당 48.75달러에 매각됐다.


엘리엇의 삼성물산 경영참여는 삼성전자를 지배하기 위한 사전 계획이라는 분석도 있다. 앞서 지난 5일 엘리엇은 삼성물산 측에 삼성전자와 삼성SDS 등의 현물배당을 요청한 상태다. 현물배당은 기존 주요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등 실물자산을 배당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공개적으로 삼성물산이 보유한 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을 엘리엇 측에 내놓으라는 말과 같다. 합병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 역시 삼성물산 측에서 호락호락 들어줄 사안이 아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이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건에 대해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활용해 최소의 금액으로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려는 ‘꼼수’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재벌닷컴과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합병비율이 1대 0.35인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합병 법인 지분율(보통주)은 16.54%,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30.42%가 된다. 하지만 엘리엇이 주장한 합병비율인 1대 1.6으로 조정하면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율은 8.15%, 총수 일가 지분은 14.99%로 줄어든다. 엘리엇의 요구를 들어주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지배력도 높일 수 있다. 이 부회장의 완벽한 경영승계를 위해서는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지분 확대가 필요하지만 삼성전자의 주가가 워낙 높아 직접 지분을 매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지분 4.1%를 가진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면, 이재용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 16.54%를 보유해 덩달아 삼성전자의 지배력도 높일 수 있다.


만약 엘리엇의 당초 목적이 삼성전자 주식의 확보이자 삼성그룹의 경영권 간섭이라면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지분을 더 매입해 삼성물산 합병 후에도 현물배당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삼성 측에서는 합병 반대만큼이나 민감한 부분이다.


현물배당 요구는 소액주주들도 이득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소액주주들은 삼성그룹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팍스넷에서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개인투자자들의 82%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고 있다. 인터넷카페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에서도 소액주주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표를 모아 엘리엇 측과 함께 반대 의사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표 위임안을 찾고 있다.


엘리엇은 12일 이후 추가 지분 매입에 나설 수 있다. 이 기간에 취득한 주식은 의결권행사를 할 수 없지만 추가적으로 임시주총을 소집할 경우 추가 매입한 지분은 의결권이 발생한다.
한국투자증권 윤태호 연구원은 “엘리엇이 삼성그룹과 버금가는 지분을 취득한 후 새로운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이사 해임안, 중간 배당, 자산양수도(삼성전자, 삼성SDS 지분 매각), 순환출자 즉각 해소를 제시하거나 합병 주주총회 이후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시한다면 주주총회 결과와 관계없이 삼성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고 분석했다.


엘리엇은 합병이후에도 끊임없는 경영진 압박을 위해 소송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릴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의 가장 큰 특징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소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소송의 승률도 높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합병 주총 이후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고 이후 국내법의 문제를 들어 ISD(투자자국가분쟁해결)에 국제 소송을 제기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투자증권 김철범 센터장은 “ISD는 자유무엽혁정(FTA)에 포함돼 국내법에 우선하며, ISD소송에서 피고는 삼성그룹이 아니라 한국정부라는 점에서 엘리엇은 정부를 통해 삼성그룹을 압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엘리엇은 이미 삼성그룹과 법적 분쟁을 벌여 승리한 경험이 있다. 2002년 삼성전자는 주주총회에서 기존 우선주의 배당률을 높이고 신규발행 우선주를 10년 후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내용의 정관을 삭제했다. 이에 엘리엇의 자회사인 맨체스터 시큐리티즈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주주총회 결의 소송을 제기해 4년 만에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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