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신대양제지가 상장폐지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안 그래도 권혁홍 회장의 우호 지분율이 60%에 육박하는 상황인데, 자사주를 지속 매입하면서 유통 주식 수가 고갈되고 있어서다. 신대양제지가 지난해 자회사 대양제지공업(대양제지)를 자진 상장폐지 시킨 전례가 있다는 점은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 2023년 거래 활성화 목적 액분 이후부터 자사주 취득 '속도'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신대양제지는 올해 2월 기준 자사주 1043만1439주(25.89%)를 보유 중이다. 이 회사 발행주식수가 4029만7820주라는 점을 고려하면, 유통 가능 주식 수는 전체 물량의 74.11% 수준이다.
신대양제지가 자사주를 사모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19년까지 자사주 비율이 0%이던 신대양제지는 2020년 주가 안정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처음으로 자사주를 장내 매수했다. 취득 수량은 발행주식 수의 5%인 20만1500주였다. 신대양제지의 자사주 비율은 2022년까지만 해도 10.5%를 유지했는데,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었다.
주목할 점은 신대양제지의 자사주 비율이 2023년부터 급격히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 시기 회사는 유통 주식 수를 늘리기 위해 보통주 액면가를 1주당 5000원에서 500원으로 분할했고, 발행 주식 수는 종전 402만9782주에서 4029만7820주로 10배 늘었다. 그해 7월 1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하면서 자사주 비율은 15%로 불어났다. 지난해에도 총 327만4309주(8.1%)를 확보한 결과 신대양제지의 자사주 비율은 현재 25.9%까지 상승했다.
신대양제지의 자사주 비율은 추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신대양제지가 지난달 공시한 신탁계약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은 39만8431주(1%)를 들고 있는데,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오는 6월 해당 주식은 모두 신대양제지의 증권계자로 입고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애초 신대양제지는 자사주를 직접 취득이 아닌, 간접 취득 방식으로 확보해 왔다. 해당 방식은 공시의무 부담이 적다는 점에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 효과 '글쎄', 경영권 위협 방어 목적도 아냐…소액주주 지분율 10%대
표면상 신대양제지의 자사주 매입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신대양제지가 액면분할을 실시한 직후인 2023년 4월24일 종가는 8530원이었다. 이후 총 6차례에 걸쳐 400억원 상당의 주식을 매입했지만, 이달 16일 기준 종가는 7460원으로 오히려 12.5% 하락했다.
의아한 점은 따로 있다. 신대양제지가 소각 없는 매입만 실시하고 있어서다. 통상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 부양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사주 소각이 동반돼야 한다. 단순 매입은 주식수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유통주식수가 줄어든다. 반면 매입 후 소각은 주가 상승 재료가 된다. 발행 주식 수 자체를 줄이는 만큼 주당순이익(EPS)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신대양제지가 주식거래 활성화를 위해 실시한 액면분할과 배치되는 행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권 회장 일가를 비롯한 특수관계자 지분율이 과반을 훌쩍 넘긴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신대양제지 최대주주인 권 회장의 지분율은 17.2%다. 부인과 누나, 세 자녀 등을 모두 포함하면 57.1%에 달한다. 여기에 자사주 물량까지 더하면 약 83%다. 의결권이 없는 상태의 자사주는 제3자에게 매각되는 순간 의결권이 살아난다. 이에 경영권이 불안정할 기업들은 자사주를 백기사에 넘기는 방식으로 방어책을 세운다. 하지만 권 회장 측은 이미 절대적인 지배력을 구축한 상태로, 굳이 자사주를 지속적으로 늘릴 필요는 없다.
신대양제지가 자사주를 매입하는 동안 소액주주 지분율은 크게 축소됐다. 2023년 말 기준 소액주주는 5000명(99%)이었고, 이들이 보유한 주식수는 23.7%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소액주주수는 절반 수준인 2585명으로 줄었고, 보유 주식 수 역시 14.4%로 9.3%포인트(p) 떨어졌다. 이 기간 유통 주식 수를 기준으로 추산하면 소액주주 지분율은 28.7%에서 19.3%다.
◆ 대양제지 이미 자진 상폐…개미 지분율 더 낮아지면 강제 상폐될수도
시장에서는 신대양제지가 유통 주식 수를 조절하는 배경으로 상장폐지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한다. 권 회장이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경영 방침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상장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리스크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신대양제지는 한국ESG기준원으로부터 3년 연속 지배구조 등급이 매우 취약 상태인 'D'등급을 받고 있을 뿐더러, 권 회장은 이사회 의장으로 실질 권력자 지위를 구축 중이다. 더군다나 신대양제지가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어 비상장사로 전환되더라도 경영상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신대양제지 관계자는 "상장폐지와 관련해 검토 중인 사안은 전혀 없다"며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앞서 신대양제지가 지난해 코스닥 상장사이던 대양제지를 자진 상장폐지 시킨 사례가 있다는 점은 시장 의구심을 키우는 요인이다. 대양제지는 2022년 말 소액주주 소유주식수가 유통주식수의 20% 미만을 기록하며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이에 모기업인 신대양제지는 공개매수로 시중 물량을 거둬들인 뒤 자발적으로 상장폐지 시킨 바 있다.
신대양제지가 상장폐지를 추진할 경우 실탄은 넉넉한 것으로 파악된다. 유가증권(코스피) 상장사는 소액주주 주식수가 유통주식수의 10% 미만일 경우 관리종목지정 대상이 되며,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상장폐지된다. 단순 계산으로 신대양제지가 290만주(7.2%) 가량을 자사주로 추가 매입하면 소액주주 지분율은 10%를 하회하게 된다. 전날 종가를 대입하면 약 216억원 상당이다. 지난해 말 기준 신대양제지의 현금성자산(금융자산 포함)은 1567억원이다.
일각에서는 신대양제지가 코스피 상장사라는 점에서 자발적 상장폐지보다는 강제 상장폐지가 유리하다고 분석한다. 자발적 상장폐지를 하려면 자사주를 제외한 대주주 지분율이 95% 이상을 채워야 해서다. 이 경우 권 회장 측은 최소 400억원 이상의 사재를 투입해야 한다.
제지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대양제지가 2000억원 상당의 초지기 구입을 계획했으나, 상장폐지로 해당 계획을 철회하면서 그룹 차원에서 상당한 현금을 아낀 것으로 보인다"며 "자사주 취득 이유가 불분명한 만큼 시장의 의혹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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