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VC업계에 일렁이는 노랑 물결
공모주 시장 한파, 엑시트 논란…상장 주관사 역량 강화해야
이 기사는 2025년 04월 07일 08시 37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그래픽=신규섭 기자)


[딜사이트 한은비 기자]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


알코올 중독 수준이 심각하다며 나무란 의사에게 반 고흐가 한 말이다. 그가 살아생전 노란색을 즐겨 사용한 이유는 황시증(黃視症)의 영향으로 알려진다. 33세에 파리로 상경한 그는 독주(毒酒)인 압셍트에 빠져 산토닌 중독으로 황시증을 앓는다. 색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로서 좌절할 법도 하나 고흐는 이를 영감의 원천으로 받아들인다. 압생트 복용을 지속하며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프로방스의 건초더미' 등 가장 순도 높은 노랑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 벤처캐피탈(VC) 업계에도 고음의 노랑 물결이 일렁인다. 브랜드 컬러로 노란색을 내세우고 있는 달바글로벌(비건 화장품 브랜드 달바(d'Alba) 운영사)이 지난달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며 기업공개(IPO) 절차에 본격 돌입하면서다.


달바글로벌은 오는 5월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희망 몸값은 8000억원을 웃돈다. 당초 가파른 성장세에 기업가치가 최대 1조원까지 거론된 곳이다. 기업가치를 비교적 낮게 설정해 공모 흥행 가능성은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달바글로벌 지분을 보유한 VC들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달바 글로벌의 기존 주주 구성을 살펴보면 재무적투자자(FI)들이 다수 분포해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벤처파트너스 ▲SL인베스트먼트 ▲HB인베스트먼트 ▲케이앤투자파트너스 ▲유니온투자파트너스 ▲메가인베스트먼트(현 JB인베스트먼트) ▲DSC인베스트먼트 ▲보광인베스트먼트 ▲BSK인베스트먼트 ▲IMM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등이다. 이들은 과거 신주 투자나 구주 매입을 통해 달바글로벌 지분을 취득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상장 추진 과정에서 일어난 기관투자가들의 도덕적 해이 관련 잡음도 들려온다. 일부 후기 투자자들이 보유 지분에 대한 의무보유확약(락업·lock-up)을 채택하지 않으려고 해 일정 기간 상장 절차가 원활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초기에 투자해 펀드 만기 도래에 따라 부득이하게 엑시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IPO 단타를 노린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기관투자가들의 단기 매도 움직임을 두고 국내 증시 부진이 근본적 원인이라 지적한다. 지난해부터 상장 종목들의 주가가 증시 입성 첫날 급락하는 흐름을 이어오면서 중·장기 투자를 지향하는 기관투자가들이 단기 차익 목적의 투자를 하는 등 시장 왜곡이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은 해당 현상을 막기 위해 올초 기관투자가 배정 물량 중 40% 이상을 확약 기관투자가에게 우선 배정하는 등 락업 비중을 확대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현 IPO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특정 대상의 잘못이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만큼 시장 구성원들이 자생적으로 질서를 형성해 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상장 주관사에 우수한 '코디네이팅' 역량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기계적으로 공모 물량을 배정하기보단 주가 안정성을 지향하는 기관투자가를 가려내고 시장의 변동성을 고려해 공모가를 객관적으로 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증시를 안정적으로 조성할수록 단기 차익 실현의 수요나 기회를 줄일 수 있다.


반 고흐에게 압셍트는 '악마'이자 '요정'이었다. 정신착란과 환청을 일으켜 스스로 귀를 자르는 지경까지 이르게 했으나 후세에 길이 남을 명작을 남길 수 있게 해줬으니 말이다. VC들에게 현재 국내 증시는 상황에 따라 엑시트 경로를 가로막는 독이자 경기 불황 속 '잭팟'을 가져다주는 약일 수 있다. 고흐의 작품들이 현대에 들어서야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듯이 회수시장 활성화에도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러나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자본시장에선 유망 벤처기업들이 대거 샛노랑 빛을 자랑하며 꽃피울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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