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위기 넘는 현대차그룹전기차 승부수…캐즘 '정면돌파'
현대자동차그룹을 둘러싼 글로벌 경제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가 강력한 보호무역 장벽을 쌓아 올리고 있고, 대내적으로는 고물가·고금리가 지속되며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있어서다. 완성차 시장 전반으로는 전기차 판매 부진 현상이 지속 되면서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은 고조되는 실정이다. 현 상황을 '퍼펙트 스톰'(복합적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이라고 진단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겠다는 구상이다. 고객 뿐 아니라 주주와 시장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의 신뢰를 쌓는 것도 중요하다. 이에 딜사이트는 현대차그룹의 위기 돌파 전략과 추후 과제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글로벌 전기차(EV) 시장이 좀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2023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어서다. 캐즘 탈출은 올해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 중 하나인 미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수요 둔화가 예고된 데다,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전기차 생산 계획을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전동화 시대의 '퍼스트 무버'(선구자)로 나아가는 현대차그룹은 예정대로 전기차 신차를 선보이며 시장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전기차 판매 둔화에 따른 실적 간극은 하이브리드(HEV)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등으로 채우겠다는 대안도 이미 마련해 뒀다.
◆ 글로벌 전기차 시장 위축에도 2030년 총 360만대 판매 목표
5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오는 2030년까지 총 21개의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하고, 연간 200만대 이상의 전기차를 판매할 계획이다. 현대차가 현재 보유 중인 전기차는 ▲캐스퍼 일렉트릭 ▲코나 일렉트릭 ▲아이오닉5 ▲아이오닉5N ▲아이오닉6 ▲아이오닉9 6종이며, 제네시스는 ▲GV60 ▲GV70 전동화 모델 ▲G80 전동화 모델 3종이다. 현대차의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지난해 말 기준 약 12만대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5년 만에 판매 규모를 17배 늘리겠다는 것이다.
기아는 2027년까지 목적기반모빌리티(PBV)를 포함해 총 15개 모델을 선보인다. 시판 모델인 ▲레이EV ▲니로EV ▲EV3 ▲EV6 ▲EV6 GT ▲EV9 총 6종의 전기차 모델보다 2.5배 증가한 숫자다. 이와 함께 기아는 2030년까지 전기차 연간 160만대를 팔겠다는 기존 전략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률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의 이 같은 목표 설정은 매우 공격적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 HMG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 규모는 125만6000대로, 전년(105만6000대)보다 18.9% 증가하는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5년(2019~2023년)간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인 50.9%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특히 올해 전기차 시장은 유례없는 혹한기를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미국 시장이 변수로 부상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초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30년까지 신차 판매량의 50%를 전기차로 한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했으나, 최근 2기 행정부를 출범시킨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공식 폐기했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도 폐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캐즘을 정면돌파가 아닌, 회피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점도 문제다. 북미 시장 1위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는 전기차 생산량을 축소하며 올해 전기차 100만대를 팔겠다는 목표를 취소했다. 타 완성차 업체와의 전기차 관련 합작 계획을 철회했을 뿐 아니라 전기 픽업트럭 모델의 출시와 생산일을 연기하기도 했다. 포드는 전기차로 개발 중이던 3열 SUV를 하이브리드로 변경하기로 했으며, 볼보는 2030년까지로 제시한 전기차 100% 전환 시점을 연기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전동차 비중 50% 달성 시점을 올해에서 2030년으로 미뤘다.
◆ 전용 플랫폼 '자신감'…다양한 친환경차 라인업, 수요 변화 유연 대처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전략을 강행하는 주된 배경에는 '전용 전기차'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꼽을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2030년 글로벌 전기차 시장 톱 3위를 차지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 전용 전기차 플랫폼인 'E-GMP'은 정의선 회장이 주도로 개발됐다. 해당 플랫폼은 모듈화와 표준화 개념을 도입한 덕분에 차급에 관계없이 적용이 가능할 뿐 아니라, 멀티 급속 충전 시스템인 'V2L'로 활용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그룹 E-GMP를 처음 탑재한 전기차는 2021년 양산에 들어간 현대차 아이오닉5다. 이어 아이오닉 시리즈와 기아 EV 시리즈, 제네시스 GV60 등 총 9개 차종(GT 포함)에 적용됐다. E-GMP 차종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총 88만대 가량이 판매됐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전용 전기차 신차인 아이오닉9을 필두로 기아 EV4와 EV5를 연내 출시하는 만큼 누적 100만대 판매 돌파는 무난하게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더해 현대차그룹은 2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M'(승용)의 기반의 첫 번째 모델인 제네시스 GV90을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 선보일 예정이다. 아울러 PBV 전용 플랫폼인 'eS'를 첫 장착한 기아 PV5는 오는 하반기 출격한다. 차세대 플랫폼은 배터리와 모터 등 핵심 부품을 표준화한 '통합 모듈러 아키텍처(IMA)'를 적용해 원가를 낮추는 동시에 제품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판매 방어를 위해 유럽 시장 장악력을 높일 방침이다. 유럽은 비교적 전기차 시장 성숙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올해부터 전년 대비 20% 강화된 탄소배출 규제를 시행하는 만큼 전기차 판매를 늘릴 적기로 꼽힌다. 실제로 현대차는 올해 유럽 시장에서 전년(7만대)보다 약 2배 증가한 14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현대차그룹이 사실상 '포트랙'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전기차 뿐 아니라 내연기관 신차로 완성차 시장 리더십을 공고히 다지는 동시에 고부가 차종인 하이브리드로 수익성을 확보한다는 게 골자다. 아울러 일종의 '하이브리드 확장형'인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를 출시해 전동화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2026년 북미와 중국에서 주행거리 확장형 전기차 양산을 시작하고, 2027년부터 판매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한 메가플랜트아메리카(HMGMA)가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연산 전기차 30만~35만대 목표로 지어진 전기차 전용 공장이지만,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모델도 생산할 수 있도록 설비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연산 50만대까지 생산 케파를 확장할 수 있으며, 미국 현지 생산 규모는 기존 60만대에서 100만대 이상으로 커진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차세대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신차를 출시해 글로벌 고객이 믿고 선택할 수 있는 톱 티어 브랜드로 자리잡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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