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우리은행에서 2년 넘게 자리를 지킨 은행장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정진완 행장이 이 '단명 행장'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뚜렷한 경쟁자가 부상하지 않는 데다 최근 금융권을 뒤흔든 연쇄 해킹 사태에서도 고객정보 유출 피해를 피하면서 연임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됐다. 남은 변수는 실적이다. 상반기 순이익이 뒷걸음친 가운데 이달 발표될 3분기 성적표가 정 행장의 연임 여부를 가를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그룹은 지난달 30일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를 열고 차기 우리은행장 경영승계 절차를 개시했다. 정 행장의 임기가 오는 12월31일자로 만료되고, 은행 이사회가 2024년 12월20일 차기 행장 후보로 정 행장을 확정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두 달 뒤인 12월 중순께 연임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파악된다.
정 행장의 연임 여부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최근 우리은행장들의 짧은 재임 기간 때문이다. 정 행장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에 따른 내부통제 논란으로 연임이 무산된 조병규 전 행장의 뒤를 이어 지난해 1월 취임했다. 당시 조 전 행장의 연임 불가 결정이 급박하게 이뤄지면서 우리금융은 별도의 롱리스트(1차 후보군)나 숏리스트(압축 후보군)를 공개하지 않은 채 차기 은행장 최종 후보를 확정했다.
2020년 이후 우리은행에서는 2년을 넘겨 재임한 은행장이 나오지 않았다. 통상 은행장은 최초 2년의 임기를 마친 뒤 연임에 성공하면 1년 이상의 임기를 추가로 부여받지만, 우리은행에서는 이 같은 관행이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조병규 전 행장은 2023년 7월 취임했지만 연임에 실패하면서 약 1년6개월 만인 2024년 말 물러났다. 전임자인 이원덕 전 행장 역시 2022년 3월 취임했으나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취임을 앞둔 이듬해 3월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2020년 3월 취임한 권광석 전 행장은 한 차례 연임에 성공했지만 총 재임 기간은 2년에 그쳤다.
반면 2020년 이전에는 2년 이상 재임한 은행장도 있었다. 손태승 전 회장은 2017년 12월 취임해 약 2년3개월간 우리은행을 이끌었으며, 이광구 전 행장 역시 2014년 12월 취임해 약 3년간 재임했다.
차기 은행장 후보군의 폭이 넓다는 점과 달리 정 행장에게 맞설 뚜렷한 대항마가 부상하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역대 우리은행장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차기 행장이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승진 경로는 없다. 이광구·손태승 전 행장과 정진완 현 행장은 은행 부행장급 임원으로 재직하다 발탁됐다. 반면 이원덕 전 행장은 지주 수석부사장, 조병규 전 행장은 우리금융캐피탈 대표를 거쳐 은행장에 올랐다. 권광석 전 행장은 우리PE 대표와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를 역임한 뒤 우리은행으로 복귀했다.
은행 부행장뿐 아니라 지주 핵심 임원과 계열사 CEO까지 후보군에 포함될 수 있는 구조지만, 현재 정 행장과 경쟁할 만한 인물은 좀처럼 거론되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은행 내부 관계자들도 뚜렷한 대항마가 부상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금융권을 뒤흔든 해킹 사태 역시 정 행장의 연임 구도에 영향을 미칠 변수다.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에서 해킹에 따른 고객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랐지만 우리은행은 이번 사태에서 고객정보 유출 피해가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 19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드러났다. 이날 5대 시중은행장이 모두 증인으로 출석한 가운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에 대해 기본적인 보안 통제에 충실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우리은행은 다중인증 체계를 갖춘 점을 언급했다.
정 행장이 국정감사에서 직접 내부통제를 연임의 핵심 평가 기준으로 꼽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그는 이날 은행장 연임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내부통제를 꼽았다. 연쇄 해킹 사태 속에서 금융당국으로부터 보안 통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만큼 내부통제 역량은 정 행장이 내세울 수 있는 성과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연임의 마지막 관문은 수익성이다. 우리금융은 오는 23일 3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1.9% 감소한 1조3730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다른 주요 시중은행이 일제히 순이익을 늘린 것과 대비된다. 특히 비이자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0.5% 급감하면서 수익성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자본건전성 개선은 정 행장의 경영성과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우리은행의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2024년 말 13.1%에서 올해 6월 말 15.3% 수준으로 상승했다. 위험가중자산(RWA) 관리와 자산 포트폴리오 재편에 집중한 가운데 자본 여력이 개선됐지만, 이 같은 성과가 수익성 회복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올해 우리금융이 은행장 경영승계 과정에서 경영성과 점검과 외부 전문기관의 평가 참여를 강화한 점도 변수다. 정 행장의 연임 여부는 단순히 경쟁자 유무나 경영 연속성의 필요성만으로 결정되기 어렵다. 강화된 평가 절차에서 내부통제와 자본건전성 개선 성과를 인정받는 동시에 수익성 부진에 대한 해법까지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임종룡 회장 2기 체제의 첫 은행장 인사라는 점에서도 이번 결정의 의미가 작지 않다. 단명 행장 관행을 끊고 경영 연속성을 택할지, 실적 부진에 책임을 물어 다시 수장을 교체할지에 따라 우리은행의 향후 경영 방향도 달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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