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IFRS17(새 회계제도) 도입 3년차로, CSM(계약서비스마진) 중심의 외형 성장에서 벗어나 자본 건전성을 통한 체력 차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금리·환율 변동성 확대 속에 자본은 규제 대응을 넘어 수익성과 성장 전략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내년부터 기본자본 지급여력(K-ICS·킥스)비율 50% 규제가 시행되는 만큼 자본의 '양'뿐 아니라 '질' 관리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딜사이트는 주요 보험사들의 자본구조를 유형별로 나눠 건전성 지표 이면의 구조와 리스크를 집중 분석한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동양생명과의 합병을 앞둔 ABL생명이 자본건전성에서 뚜렷한 약점을 드러냈다. 경과조치를 제외한 기본자본 지급여력(K-ICS·킥스)비율은 42.8%로 동양생명(84.2%)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자산 50조원대 통합 보험사 출범을 준비하는 우리금융그룹으로서는 ABL생명의 자본 체력 보강이 합병 이후 건전성과 영업 확대 여력을 좌우할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ABL생명은 경과조치에 기대 자본비율을 유지하는 사이 요구자본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손실흡수력이 높은 기본자본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데다 저축성보험 중심의 사업구조와 누적 결손금도 자체적인 자본 확충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합병 전까지 요구자본 증가를 억제하고 이익 유보를 통해 기본자본을 얼마나 확충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ABL생명의 경과조치 전 기본자본비율은 42.8%로 전년 동기(47.7%) 대비 4.9%포인트(p) 하락했다. 같은 기간 동양생명의 기본자본비율은 84.2%로 집계됐다. ABL생명과의 격차는 41.4%p에 달한다.
전체 가용자본을 기준으로 한 킥스비율에서도 차이는 뚜렷하다. 올 상반기 말 경과조치 전 ABL생명의 킥스비율은 107.9%로 1년 전(105.4%)보다 2.5%p 상승했다. 동양생명의 킥스비율은 205.4%로 ABL생명보다 97.5%p 높았다.
동양생명이 별도의 경과조치 없이도 자본건전성 지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과 달리 ABL생명은 제도적 완충장치에 의존하고 있다. 경과조치를 적용해 계산한 ABL생명의 기본자본비율은 74.3%로 경과조치 전보다 31.5%p 높다. 경과조치 후 킥스비율도 157.0%로 경과조치 전보다 49.1%p 상승한다.
ABL생명의 자본건전성 지표는 사실상 경과조치가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경과조치를 걷어내면 기본자본비율은 2027년부터 적용되는 50% 규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킥스비율 역시 금융당국의 권고수준인 130%를 밑돈다. 통합법인의 자본 적정성을 논의할 때 ABL생명의 경과조치 의존도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경과조치 효과가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이를 적용한 자본비율마저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상반기 말 경과조치 후 기본자본비율은 74.3%로 전년 동기(89.9%) 대비 15.6%p 하락했다. 경과조치 후 킥스비율도 같은 기간 169.1%에서 157.0%로 12.1%p 떨어졌다.
ABL생명은 지난해부터 시가평가로 인한 자본감소분 경과조치(TAC)를 적용하고 있다. TAC는 시가평가에 따른 자본 감소 충격을 일정 기간 완화하는 장치다. K-ICS 도입 첫해인 2023년 적용률 100%에서 시작해 매년 10%p씩 낮아지는 구조로, 올해 적용률은 70% 수준이다. 2032년 10%를 마지막으로 2033년에는 경과조치 효과가 사라진다.
ABL생명은 이와 함께 제도 시행 전 발행한 자본증권의 가용자본 인정범위를 확대하는 TFI와 신규 보험위험 점진적 인식(TIR), 주식위험액 증가분 점진적 인식(TER) 등의 경과조치도 적용하고 있다. 경과조치가 축소될수록 자체적인 자본 축적과 위험 관리 역량이 자본비율을 좌우하는 구조다.
ABL생명의 기본자본비율이 뒷걸음친 직접적인 원인은 기본자본보다 빠르게 늘어난 요구자본이다. 올 상반기 말 경과조치 전 요구자본은 1조7279억원으로 1년 전(1조5297억원)보다 13.0% 증가했다. 반면 기본자본은 같은 기간 7302억원에서 7387억원으로 1.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요구자본이 2000억원 가까이 불어나는 동안 기본자본 증가액은 85억원에 불과했던 셈이다. 위험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자본은 빠르게 커졌지만 이를 흡수할 기본자본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요구자본 확대는 생명·장기손해보험위험액과 시장위험액이 주도했다. 2026년 상반기 말 경과조치 전 생명·장기손해보험위험액은 1조1223억원으로 2025년 상반기 말(1조545억원) 대비 6.4% 증가했다. 시장위험액은 같은 기간 5412억원에서 6962억원으로 28.6% 늘었다.
특히 시장위험액 증가율이 보험위험액을 크게 웃돌았다. 금리 등 금융시장 변화에 대한 민감도가 ABL생명의 요구자본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의미다. 회사 측은 금융당국의 계리적 가이드라인 변경과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보험부채 시가평가액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요구자본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경과조치를 적용한 수치에서도 자본 부담은 커졌다. 올해 상반기 말 경과조치 후 요구자본은 1조3600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1573억원) 대비 17.5% 증가했다. 반면 경과조치 후 기본자본은 1조403억원에서 1조100억원으로 2.9% 감소했다. 경과조치 전에는 기본자본 증가가 요구자본 확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경과조치 후에는 기본자본 감소와 요구자본 증가가 동시에 발생했다.
더 큰 과제는 기본자본을 자체적으로 쌓아 올릴 수 있는 이익 창출력이다. ABL생명은 저축성보험 비중이 높은 사업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누적 기준 일반계정 수입보험료에서 저축성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44.4%에 달했다.
IFRS17 체제에서 저축성보험은 보장성보험보다 미래 보험이익의 원천인 보험계약마진(CSM)을 축적하는 데 불리한 구조다. 저축성보험 중심의 포트폴리오가 지속될수록 보험 본업에서 이익을 쌓아 기본자본을 확충하는 데 제약이 커질 수 있다.
실제 ABL생명은 IFRS17 도입 이후 결손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말 결손금은 158억원으로 전년 동기(653억원)보다 75.8% 줄었지만, 감소분 전체가 보험 본업에서 벌어들인 이익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부동산 매각에 따라 토지재평가잉여금 약 132억원이 이익잉여금으로 대체된 영향도 반영됐다. 이는 1년간 결손금 감소액 495억원의 약 26.7%에 해당한다. 결손금 규모는 줄었지만 일회성 회계 요인이 상당 부분 작용한 만큼 안정적인 이익 축적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과제로 남는다.
ABL생명의 취약한 기본자본은 합병 이후 통합법인의 자본구조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말 ABL생명과 동양생명의 자본 및 요구자본을 단순 합산해 계산한 경과조치 전 기본자본비율은 66.8%, 킥스비율은 164.3%다.
두 수치 모두 ABL생명 단독 비율보다는 높지만 동양생명 단독 기본자본비율(84.2%)과 킥스비율(205.4%)에는 크게 못 미친다. 동양생명의 상대적으로 탄탄한 자본 기반이 ABL생명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 합병 후 자본비율은 위험 분산효과와 자산·부채 통합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현재 자본 체력의 격차가 통합법인의 건전성 관리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양사는 지난해 우리금융그룹에 나란히 편입됐으며 내년 하반기 통합 출범을 앞두고 있다. 자산 50조원대 보험사로 외형이 커지는 만큼 통합 이후 영업 확대에 필요한 자본 여력 확보도 중요해졌다. 특히 경과조치가 단계적으로 축소되는 상황에서 ABL생명의 요구자본 증가세가 이어지면 동양생명의 자본 여력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ABL생명이 합병 전까지 얼마나 자본구조를 개선하느냐가 통합법인의 출발선을 결정할 전망이다. 고위험자산을 줄여 요구자본을 통제하는 동시에 저축성보험 중심의 사업구조를 개선하고 보험 본업의 이익을 쌓아 기본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통합법인의 자본 경쟁력을 동양생명에만 기대지 않으려면 ABL생명 자체의 체질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ABL생명 관계자는 "당사는 고위험자산 비중 축소 및 부동산 매각 등 요구자본 축소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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