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준식 자본시장부 부국장] 죽은 나무에서도 열매가 열릴 수 있을까. 혼인이 파탄난 뒤 새롭게 형성된 부(富)를 두고 벌어지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법정 공방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결혼은 법률로 시작되지만 그 끝은 법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한 집에 살지만 이미 남남인 이들도 있고, 법적으로 남남이지만 경제적 의존 관계를 청산하지 못할 수도 있다.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났는데 한쪽 배우자가 노력해 취득한 재산은 그럼 누구의 몫일까.
세기의 이혼소송은 다시 대법원으로 갔다. 최 회장은 파기환송심이 명령한 재산분할금 9440억원 가운데 7000억원은 수용하기로 했다. 대신 나머지 2440억원은 재심을 요구했다. 이 재상고에는 한국의 재산분할 제도가 부부의 경제적 공동체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담겨 있다.
우선 첫째 쟁점은 SK실트론이다. 최 회장은 2017년 SK실트론 지분 29.4%에 대한 경제적 권리를 확보했다. 당시 이미 두 사람의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파탄 상태였다. 경제 공동체가 해체된 후 취득한 투자자산까지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주장이다.
물론 파탄 후 취득한 재산이라고 해서 반드시 특유재산이 되는 건 아니다. 취득 재원이 과거 부부 공동재산에서 비롯됐는지, 배우자가 재산의 형성이나 유지에 기여했는지 따져야 한다. 반대로 실질적 공동체가 종료된 이후 독립적인 투자와 위험 부담을 통해 형성한 재산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국 법원이 판단해야 할 것은 혼인신고의 효력이 언제 끝났느냐가 아니라, 재산 형성에 대한 공동의 기여가 어디까지 이어졌느냐는 문제다.
둘째 쟁점은 기여도 산정이다.
앞선 대법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된 사정을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그런데 파기환송심에서 인정된 노 관장의 재산분할 비율은 33.3%였다. 파기환송 전 항소심의 35%와 비교하면 1.7%포인트 낮아졌을 뿐이다.
물론 기여도는 단순한 산술 공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가사와 양육, 배우자의 사회활동에 대한 지원도 재산 형성의 기여로 평가할 수 있다. 노 관장이 오랜 혼인생활을 통해 SK그룹의 성장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판단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앞선 판결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기여 요소가 배제됐음에도 분할비율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 판단에 이른 논리는 충분히 설명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은 세금이다.
최태원 회장은 재산분할금 마련을 위해 SK㈜ 지분 9440억원어치를 매각했다. 이 가운데 4000억원에는 주가수익스와프(PRS) 구조가 결합됐다. 단순한 주식 처분이 아니라 미래 주가 변동에 따른 경제적 위험을 일부 남겨뒀다.
여기엔 역설이 존재한다. 법원이 명령한 재산분할금은 9440억원이지만, 주식을 처분한다고 해서 그만큼 순현금이 남는 건 아니다. 주식 매각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거래비용이 발생해서다.
대법원은 1994년 판례(94므901·918)에서 재산분할을 위한 자산 처분 이유로 장래 양도소득세를 재산가액에서 당연히 공제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법리를 제시했다. 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판단이다. 재산분할은 보유 재산의 가치와 부부의 기여도를 기준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자산 보유자가 선택한 현금화 방식에 따라 상대방의 권리가 달라지는 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제적 질문은 남는다. 법원이 평가한 재산의 가치와 그 재산을 실제 현금으로 바꿨을 때의 가치는 같지 않다. 특히 경영권 지분처럼 자유로운 처분에 제약이 따르는 자산이라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노 관장이 오로지 현금만으로 재산을 받겠다고 주장한 것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최태원 회장은 적어도 2000억원 이상의 양도세까지 떠안게 됐다.
이번 소송에서 노 관장의 권리를 가볍게 볼 이유는 없다. 수십 년의 혼인생활 동안 이뤄진 무형의 기여를 금전적 가치로 평가하는 것은 재산분할 제도의 중요한 존재 이유다. 최 회장의 혼인 파탄에 대한 책임과 재산분할에 관한 법률적 판단도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의 문제와 재산권의 경계를 정하는 문제 역시 혼동해서는 안 된다. 혼인 파탄 이후 형성된 재산을 어디까지 공동재산으로 볼 것인지, 주식 가치의 상승을 어느 시점까지 반영할 것인지, 재산분할에 따른 현금화 비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는 각각 독립적인 법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최태원과 노소영의 소송은 언젠가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 판결이 남길 기준은 앞으로도 수많은 기업가와 투자자, 그리고 일반 부부의 재산분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혼인의 법률적 종료 시점은 판결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의 경제적 공동체가 언제 끝났는지, 그 이후 만들어진 부의 주인은 누구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훨씬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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