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취임 이후 3년간 유지해온 '부회장 없는 지주' 체제에 변화가 생길 조짐이다. 연말 경영진 인사를 앞두고 부회장직 신설 가능성이 거론되면서다. 부회장 자리가 만들어진다면 단순한 직제 개편을 넘어 차기 회장 후보군을 육성하고 경쟁 구도를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진 회장이 두 번째 임기를 2년여 남긴 시점이라는 점에서 연말 조직개편에 시선이 쏠린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 안팎에서는 올해 말 조직개편 과정에서 부회장직이 신설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신한금융은 별도의 부회장 없이 회장과 5개 부문장을 중심으로 지주를 운영하고 있다.
부회장직 신설 가능성이 주목받는 이유는 진 회장의 경영승계 과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진 회장은 지난해 말 연임에 성공해 2029년 3월까지 그룹을 이끌게 됐다. 남은 임기 동안 차기 회장 후보군을 육성하고 안정적인 경영승계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실제 신한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지난해 12월 진 회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선정하면서 경영승계 문제도 집중적으로 다뤘다. 당시 곽수근 회추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오늘 논의 중에 제일 많이 한 질의하고 답변한 부분이 경영 승계 부분"이라고 밝혔다.
곽 위원장은 경영승계가 단순히 경영권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신한의 정신과 경영철학을 이어가는 과정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진 회장의 두 번째 임기에서 경영승계 체계를 얼마나 공고히 하느냐가 중요한 평가 요소로 떠오른 배경이다.
부회장직은 이 같은 승계 과제를 풀어갈 수 있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다. 신한금융에서는 그동안 은행장과 주요 계열사 CEO가 차기 회장 후보군을 형성해왔다. 부회장에게 여러 사업 부문을 총괄하는 권한을 부여한다면 개별 계열사 경영을 넘어 그룹 전체를 관리하는 경험을 쌓게 할 수 있다. 기존 계열사 CEO 중심의 승계 경로에 지주 부회장이라는 새로운 경로가 추가되는 셈이다.
이는 진 회장이 취임 이후 유지해온 조직 운영 방식과도 차이가 있다. 진 회장은 취임 첫해인 2023년 말 지주 조직을 4개 부문으로 통합하고 경영진을 10명에서 6명으로 줄이며 부회장 없이 부문장 중심의 경영체계를 꾸려왔다. 부회장직을 신설할 경우 조직 슬림화 기조를 일부 수정하는 동시에 기존 부문장들과 부회장 사이의 업무·권한을 새롭게 배분해야 한다.
부회장직 신설이 거론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22년 말 조용병 전 회장의 재연임이 유력하게 점쳐지던 때에도 부회장직 신설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시에는 실제 도입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진 회장은 이후 부회장 없는 경영체계를 유지해왔다.
올해는 대규모 연말 인사가 예정돼 있어 조직개편과 인사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됐다. 신한금융은 최근 자회사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자경위)를 열고 연말 임기가 끝나는 12개 자회사 CEO에 대한 경영승계 절차에 들어갔다. 신한은행과 신한카드, 신한투자증권 등 주요 계열사가 포함돼 있다.
지주 부문장 5명 가운데 4명도 올해 말 임기가 끝난다. 이인균 그룹운영부문장(COO)과 고석헌 그룹전략부문장(CSO), 최혁재 그룹AX·디지털부문장(CAIO·CDO), 박현주 그룹소비자보호부문장(CCPO)의 임기는 모두 12월31일까지다. 장정훈 그룹재무부문장(CFO)은 지난해 말 새로 선임돼 임기가 2027년 말까지다.
부회장직은 다른 금융지주에서도 회장 승계 과정의 주요 보직으로 활용됐다. 하나금융 함영주 회장은 하나은행장을 지낸 뒤 2019년부터 지주 부회장으로 ESG 부문을 총괄하다 2022년 회장에 올랐다. 함 회장 체제에서도 하나금융은 은행장을 마친 인물을 지주 부회장으로 이동시키는 등 방식으로 차기 후보군을 관리하고 있다.
KB금융도 직함만 다를 뿐 비슷한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윤종규 전 회장 시절 3인 부회장 체제를 통해 양종희 회장을 배출한 KB금융은 이후 부회장직을 없앴지만 2024년 말 이재근 전 KB국민은행장 등 핵심 계열사 CEO 출신을 지주 부문장에 앉히며 사실상 부회장급 역할을 맡겼다. 지난달에는 회추위가 이재근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선정하면서 지주 부문장도 회장 승계 경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신한금융에서 부회장직이 신설된다면 인선 방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뉠 수 있다. 기존 지주 부문장을 승진시키거나 핵심 계열사 CEO를 지주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지주 경영진 재편과 차기 회장 후보군의 구성이 달라질 전망이다.
지주 내부 승진형 후보로는 이인균 부사장이 거론된다. 현재 지주 부문장 가운데 재임 기간이 가장 길고 2019년부터 그룹 운영과 인사를 총괄해왔다. 그룹 경영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진 회장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왔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부회장직이 만들어진다면 계열사 CEO로 이동하지 않고도 지주에서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셈이다.
계열사 CEO의 지주 부회장 후보로는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주목된다. 정 행장은 올해 말 임기가 끝나며 4년 동안 그룹 핵심 계열사인 신한은행을 이끌었다. 은행장 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회장직 신설 시 이동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최근 고객정보 유출 사고에 따른 내부통제 책임론은 인사 과정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부회장직이 신설되더라도 선임 과정은 또 다른 과제다. 부회장이라는 직함이 차기 회장 후보에게 유리한 경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후보군을 특정 인물 중심으로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서다. 금융당국은 과거 부회장 제도가 후보군을 키우는 장점이 있지만 폐쇄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2023년 말 이복현 당시 금융감독원장은 은행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 뒤 "셀프 연임보다 훨씬 진일보한 제도이지만 폐쇄적으로 운영돼 외부 인사를 차단하는 등 부작용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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