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KB금융그룹 차기 회장으로 이재근 부문장이 낙점되면서 금융권의 'CEO 인선 공식'에도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KB금융이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는 상황에서도 현직 회장의 연임 대신 내부 승계 시스템을 통한 세대교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영성과를 앞세운 현직 회장의 연임이 유력한 선택지로 여겨졌다면 앞으로는 미래 성장동력과 세대교체, 승계 후보군의 경쟁력까지 차기 회장 인선의 주요 평가 기준으로 부상할지 주목된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주요 금융지주 회장 인선에서는 현직 회장의 연임이 잇따랐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에 이어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연이어 연임에 성공했다. 과거에도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이 3연임하며 9년간 그룹을 이끌었고 한동우·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과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 등도 연임을 통해 경영 연속성을 이어갔다.
금융지주 회장의 교체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주요 금융지주에서 현직 회장이 연임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경영성과를 내고도 내부 후계자에게 자리를 내주는 사례는 드물었다. 그만큼 경영성과와 업무 연속성은 현직 회장의 연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로 작용해왔다.
KB금융의 이번 선택이 금융권에서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종희 회장이 연임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에서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현직 회장 대신 이재근 KB금융지주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낙점했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임기를 시작한 양 회장 재임 기간 KB금융은 비은행 계열사의 이익 기여도를 높이는 동시에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KB금융의 비은행 부문 이익 비중은 2023년 말 34%에서 올해 상반기 말 44%로 10%포인트(p)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 순이익도 3조8846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연간 순이익 5조8430억원의 약 66%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KB금융 회추위는 이 부문장을 선택하면서 '현재의 우수한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그룹의 본원적 경쟁력과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양 회장의 경영성과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향후 그룹을 이끌 리더십과 미래 경쟁력을 별도의 평가 잣대로 삼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금융권의 관심은 다음 회장 인선을 앞둔 금융지주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내년 초 현직 회장의 임기가 끝나는 iM금융그룹(옛 DGB금융그룹)과 NH농협금융그룹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두 금융그룹 모두 현직 회장의 연임 여부가 관심사지만 지배구조와 승계 시스템이 다른 만큼 KB금융의 선택이 미칠 영향도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iM금융은 KB금융과 마찬가지로 '현직 프리미엄'이 어느 정도 인정될지가 관전 포인트다. iM금융은 이달 중 회추위를 본격 가동하고 경영승계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다.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황병우 현 회장은 핵심 계열사인 iM뱅크의 시중은행 전환이라는 과업을 완수하며 굵직한 성과를 쌓았다.
특히 iM금융은 지난달 기존보다 구체화한 CEO 자격 요건을 공개했다. 금융회사 등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경력과 최근 5년 이내 금융기관 CEO 또는 부행장·부사장 이상 경력, 만 67세 이하라는 정량 기준을 제시했다. 황 회장이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하는 현직 CEO인 만큼 당초 금융권에서는 연임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KB금융의 선택은 이러한 '현직 프리미엄'의 무게를 낮추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대 실적을 낸 현직 회장보다 미래 성장동력과 세대교체에 적합한 후보를 선택한 선례가 만들어지면서다. iM금융 역시 자격 요건을 충족한 후보군 가운데 누가 향후 전국 단위 금융그룹으로의 전환을 이끌 적임자인지가 주요 비교 기준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선 해당 기준을 충족하는 지주 내 주요 계열사 전·현직 대표와 부사장급 임원, 외부 거물급 인사까지 롱리스트에 합류할 수 있는 명분이 뚜렷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황 회장에게도 과거 3년간의 성과보다 향후 3년의 성장 전략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해진 셈이다. iM뱅크의 시중은행 전환 자체가 지난 임기의 핵심 과제였다면 앞으로는 전국 단위 영업 기반을 실질적인 성장과 수익성으로 연결하는 것이 숙제다. 전국구 영업망 확충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관리하면서 본원적 수익성을 방어해야 하고, 주주환원을 뒷받침할 자본비율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 전환을 성공시킨 현직 회장'이라는 성과가 연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작용하는 동시에, '전환 이후의 iM금융을 누가 이끌 것인가'가 회추위의 또 다른 판단 기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
농협금융의 셈법은 iM금융과 다소 다르다.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회장의 기본 임기가 2년으로 짧은 데다 회장 선임 과정에서 외부 인사가 차지해온 비중도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취임한 이찬우 현 회장의 임기는 내년 2월 만료된다. 과거 임기 만료 후 추가 연임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농협금융 출범 이후 한 회장이 4년 이상 장기간 재임한 사례는 없다.
역대 회장의 면면도 다른 금융지주와 차이가 있다. 신충식·손병환 전 회장을 제외하면 신동규·임종룡·김용환·김광수·이석준 전 회장 등이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등 경제·금융 관료 출신이었다. 이찬우 회장 역시 기획재정부 차관보와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거친 관료 출신이다. 이 때문에 농협금융은 내부 승계 구도뿐 아니라 외부 인사 변수까지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서 함께 고려해야 하는 구조라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KB금융의 선택이 다른 금융지주의 회장 교체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각 금융그룹의 지배구조와 경영환경, 차기 회장에게 요구되는 과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낸 금융그룹의 현직 회장조차 연임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선례가 만들어진 만큼 향후 CEO 인선에서 '현직 프리미엄'은 이전보다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과거의 경영성과만으로 연임의 당위성을 설명하기보다 다음 임기에 필요한 리더십과 미래 성장 전략, 내부 승계 후보군의 경쟁력 등이 주요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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