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향해 ‘부패한 이너서클’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관치금융을 막기 위해 자율성을 확대했지만 그 자리를 소수 내부 인사의 폐쇄적인 권력구조가 대신했다는 문제의식이다. 금융지주 회장의 권한과 CEO 승계구조를 둘러싼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왔다. 딜사이트는 금융지주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승계되는지, 이를 견제할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두고 ‘부패한 이너서클’이라고 지적했지만 금융권 내부에서는 다소 억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금융지주 회장 인사부터 경영전략까지 정부와 금융당국의 영향력이 상당한 상황에서 소수 내부 인사가 외부 견제 없이 지배권을 행사한다는 진단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그룹 내부에서 막강한 인사 영향력을 가진 금융지주 회장조차 자신의 연임과 거취에서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시선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게 금융권의 항변이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주요 금융지주 회장이 잇따라 교체되는 과정에서 지금과 정반대로 ‘관치금융’ 논란이 거세게 불거졌다. ‘제왕적 회장’과 ‘관치금융’이라는 상반된 비판이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지주 내부에서는 ‘부패한 이너서클’ 지적을 두고 현재 금융권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금융업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강한 감독을 받는 대표적인 규제산업인 데다 회장 인사부터 경영전략까지 당국의 정책 방향과 시선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금융지주들은 정부가 주요 금융정책 방향을 제시할 때마다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현 정부가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을 강조하자 관련 자금공급 목표를 확대하고 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등 잇달아 실행계획을 내놨다. 지역균형발전 기조에 맞춰 계열사 일부 인력을 서둘러 전주로 내려보내는 등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금융지주 내부의 ‘이너서클’이 외부 견제 없이 움직이는 강력한 권력집단처럼 비치는 데 대해 다소 억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우스갯소리로 ‘기침만 해도 잡혀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현직 회장이 그룹 내부의 인사와 경영전략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정부·금융당국의 견제에서 자유로운 절대 권력을 갖는 것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제왕적 회장'이라지만…연임 때마다 불거진 관치
이 대통령이 지적한 ‘부패한 이너서클’의 핵심에는 현직 회장을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승계 체제가 있다. 현직 회장과 경영진, 사외이사 등이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으면서 회장이 장기간 연임하고 내부 인사들이 돌아가며 경영권을 이어받는 형태가 굳어졌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 금융지주 회장 인사를 둘러싸고는 지금과 정반대의 논란이 벌어졌다. 현직 회장의 연임을 두고 내부 영향력이 지나치다는 비판이 아니라 정부와 금융당국의 입김에 따라 연임 여부가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관치금융’ 논란이 불거졌다.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 금융지주 회장 인선이 대표적이다. 당시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은 3연임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회장후보추천위원회 면접 과정에서 전격 용퇴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역시 연임을 포기했다. 두 금융지주 수장이 잇따라 물러나는 과정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의 의중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금융권에서 나왔다.
특히 손 전 회장을 둘러싼 논란이 컸다. 금융위원회는 2022년 11월 라임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손 전 회장에게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확정했다. 이후 이복현 당시 금융감독원장은 손 전 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현명한 판단’을 언급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 수장이 현직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여부에 사실상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손 전 회장은 결국 연임에 도전하지 않았다. 이후 금융위원장을 지낸 임종룡 현 회장이 우리금융 회장에 선임되면서 이번에는 ‘낙하산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내부 출신 CEO의 연임에는 금융당국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전직 금융당국 수장이 회장에 오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당시 금융권과 노조를 중심으로 나왔다.
조 전 회장의 경우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연임이 무산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조 전 회장은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책임과 세대교체 필요성 등을 용퇴 이유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이후 이 전 원장이 조 전 회장의 용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금융당국이 민간 금융회사 CEO 인사에 지나치게 구체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사례를 근거로 금융지주 회장이 내부에서는 상당한 권한을 행사하더라도 외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절대 권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룹 내부의 주요 보직 인사에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도 정작 자신의 연임과 거취에서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평가와 정책 방향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쪽에서는 현직 회장이 이사회와 승계 후보군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제왕적 회장’을 비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금융당국이 CEO 거취에 지나치게 목소리를 낸다며 ‘관치금융’을 비판하는 역설적인 상황인 셈이다.
◆관치도 '참호'도 답 아니다…남는 건 승계 투명성
그렇다고 정부와 금융당국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사실이 금융지주 내부의 승계 구조가 공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직 회장이 차기 후보군 형성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회추위와 이사회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후보를 평가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반대로 내부 승계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금융당국의 인사 개입을 강화하는 것도 해법이 되기 어렵다. 관치를 막기 위해 금융회사에 자율성을 확대하면 ‘참호 구축’ 논란이 불거지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당국이 개입하면 다시 관치 논란이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은 사고 하나만 터져도 최고경영진까지 책임이 올라가고 당국 검사도 촘촘하게 이뤄진다”며 “이런 환경 속에서 회장, 경영진 몇 명이 짜고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몇 년씩 해먹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금융당국이 특정 후보의 선임과 배제에 개입하는 대신 승계 절차 자체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직과 전직·외부 후보에게 공정한 경쟁 기회가 주어졌는지, 이사회와 회추위가 현직 회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후보를 평가했는지를 주주와 시장이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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