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딜사이트 김정희 기자] 2일(현지시간) 오전 11시,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 1000번지. 오전 10시 문을 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정문 앞은 개관 1시간 만에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은 물론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시민, 5번가를 오가는 관광객, 이들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주거나 음식을 파는 상인들까지 한데 뒤섞였다. 정문 양옆에 자리한 2개의 분수대 앞 벤치에도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미술관을 찾은 사람과 5번가를 오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공간이었다.
이날 찾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정문 앞에서는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후원하는 '더 제네시스 파사드(정면 외벽) 커미션: 리우 웨이, 스페큘레이션(Speculation)'이 열리고 있었다. 지난달 17일 시작된 전시는 내년 6월8일까지 이어진다.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은 제네시스가 2024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5년간의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시작한 현대미술 커미션 시리즈다. 매년 선정된 작가가 미술관 파사드를 위해 새로운 대형 작품을 제작·전시한다. 올해로 세 번째다. 첫해에는 한국 작가 이불이, 지난해에는 미국 현대미술 작가 제프리 깁슨이 전시를 맡았다.
올해 전시를 맡은 리우 웨이는 1990년대 후반부터 사진과 회화, 비디오,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온 중국 현대미술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편화, 변형, 재생'을 주제로 해체와 복원의 순환을 탐구한 대형 조각 4점을 선보였다.
레슬리 마(Lesley Ma)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현대미술 담당 큐레이터는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은 방문객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전시"라며 "관람객들은 이집트 유물과 한국 미술, 중국 회화, 이슬람 미술 등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지만, 미술관 정면 외벽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과거의 역사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미술가들과 함께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실제 이날 정문 앞을 오가던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리우 웨이의 작품으로 향했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뿐 아니라 계단에 앉아 쉬던 시민과 5번가를 지나던 관광객들도 작품을 올려다보거나 휴대전화로 사진을 남겼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누구나 일상의 풍경 속에서 작품과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다는 파사드 전시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스페큘레이션은 인류 문명사 속에서 사회적 구조와 가치가 끊임없이 변형돼 온 과정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마 큐레이터는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해체와 복원의 연속이었다"며 "더 나은 변화를 향한 열망 속에는 언제나 흩어지고 다시 합쳐지는 지난한 퍼즐 맞추기 과정이 있으며, 그 안에는 많은 긴장과 갈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해체와 재구성의 개념은 실제 작품의 형태에서도 드러났다. 작품은 거대한 크기만으로도 강한 존재감을 보였다. 높이는 최소 3m에서 최대 5m에 달해 작품 전체를 눈에 담으려면 고개를 한껏 들어 올려야 했다.
네 작품은 모두 '손'을 형상화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안쪽 기둥에 설치된 작품에는 손이 아래쪽에, 바깥쪽 작품에는 위쪽에 자리했다. 손가락의 형태도 제각각이었다. 중지와 약지가 서로 꼬여 있는가 하면 새끼손가락이 약지 아래로 기묘하게 꺾여 들어간 모습도 눈에 띄었다.
마 큐레이터는 "손은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며 "서양 미술사의 종교적 도상부터 불교 조각의 수인, 저항과 권력을 상징하는 민중 미술의 주먹에 이르기까지 손의 제스처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의 형상은 단일 색상이 아닌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돼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역동성을 보여준다"며 "네 점의 조각을 하나의 연속된 세트로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손이 공간을 빚어내는 듯한 서사적 흐름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독특한 손의 형상을 구현하는 데에는 다양한 소재도 활용됐다. 작가는 복합 유리섬유와 철, 알루미늄 합금, 폴리우레탄 페인트, 소가죽 등을 조합해 건축적 파편과 신체 일부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만들었다. 마 큐레이터는 "표면은 스테인리스 스틸 판재와 페인트 등 금속 클래딩 기법으로 마감해 이질적인 소재 간의 시각적 충돌과 분절된 느낌을 연출했다"고 분석했다.
제네시스 관계자는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을 통해 동시대 다양한 작가들의 창의적인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관람객들에게 예술을 매개로 한 깊이 있는 경험과 시공간을 초월하는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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