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KB금융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10명이 이재근 차기 회장 내정자의 첫 인사에서 한꺼번에 평가대에 오른다. 특히 이 가운데 비은행 CEO 5명은 올해로 3년차 임기까지 채운다. 최근 두 차례 신임 회장 취임 직후 계열사 대표 60~70%가 교체된 전례가 있는 데다 올해 계열사별 성적표까지 크게 엇갈렸다. '성과와 전문성'을 앞세운 이재근식 세대교체가 어디까지 번질지가 연말 인사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 주요 계열사 수장 10명이 올해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세부적으로 이환주 KB국민은행장과 이홍구 KB증권 WM부문 대표, 구본욱 KB손해보험 대표, 김재관 KB국민카드 대표, 정문철 KB라이프생명 대표, 김영성 KB자산운용 대표, 빈중일 KB캐피탈 대표, 성채현 KB부동산신탁 대표, 박찬용 KB데이타시스템 대표, 윤법렬 KB인베스트먼트 대표다. 올해 초 선임된 곽산업 KB저축은행 대표와 강진두 KB증권 IB부문 대표는 아직 임기가 남아 있다.
올해는 단순히 임기 만료 CEO가 많다는 점을 넘어 KB금융의 수장까지 바뀐다는 점에서 인사 폭에 관심이 쏠린다. 4대 금융그룹 가운데 올해 회장 교체가 이뤄지는 곳은 KB금융이 유일하다. 신임 회장이 자신의 경영 구상을 실행할 계열사 경영진을 처음 구성하는 인사인 만큼 연임과 교체를 가르는 기준에도 이재근 부문장의 색깔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지난달 11일 양종희 회장의 연임 대신 이재근 글로벌부문장을 단독 회장 후보로 추천했다. 조화준 회추위원장은 이 부문장에 대해 “본원적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를 이끌 적임자”라고 평가하며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 부문장은 다음달 20일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회장으로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과거 KB금융의 회장 교체기를 보면 신임 회장 취임 이후 계열사 CEO 인사 폭은 상당했다. 양종희 회장은 취임 후 첫 계열사 인사에서 대상 CEO 9명 가운데 6명을 교체했다. 교체율은 66.7%다. 윤종규 전 회장 역시 첫 인사에서 10명 가운데 7명(70%)을 바꿨다. 최근 두 차례 회장 교체 직후 계열사 대표 3명 중 2명 이상이 바뀐 셈이다.
임영록 전 회장 취임 당시에도 7명의 계열사 대표가 교체됐다. 2010년 어윤대 전 회장 취임 당시에는 8명 가운데 6명이 유임되면서 교체 폭이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최근 회장 교체기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재근 부문장 역시 회추위로부터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라는 주문을 받은 만큼 이번 계열사 인사에서도 변화의 폭이 작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가장 먼저 시선이 향하는 곳은 3년차 임기를 채우는 비은행 CEO들이다. 이홍구 KB증권 WM부문 대표와 구본욱 KB손해보험 대표, 김영성 KB자산운용 대표, 빈중일 KB캐피탈 대표, 성채현 KB부동산신탁 대표 등 5명이 올해 말로 3년을 채운다. 이미 한 차례 연임을 거쳐 임기를 이어온 만큼 다시 자리를 지킬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지난 3년간의 경영 성과가 핵심 잣대가 될 전망이다.
성적표는 크게 엇갈린다. 이홍구 대표가 이끄는 KB증권은 올해 상반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135% 증가한 7963억원으로 반기 기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그룹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지난해 상반기 약 10%에서 올해 상반기 약 21%로 뛰었다. 3년차라는 인사 변수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실적은 연임을 뒷받침할 강한 명분이 될 수 있다.
KB자산운용의 상반기 순이익은 8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2% 증가했고, KB캐피탈도 전년 동기보다 11.3% 증가한 1381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김영성·빈중일 대표 역시 임기 3년차를 맞았지만 실적 개선이라는 성과를 확보한 만큼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평가받을지가 관심사다.
반대편에는 수익성 회복이라는 과제를 안은 계열사가 있다. KB손해보험의 상반기 순이익은 478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4.2% 감소했다. 보험업 특성상 단기 순이익뿐 아니라 보험손익과 계약서비스마진(CSM), 지급여력(K-ICS) 등 수익성과 자본건전성을 함께 봐야 하지만 구본욱 대표 입장에서는 실적 반등 여부가 연임 판단의 주요 평가 요소가 될 수 있다.
성채현 대표가 이끄는 KB부동산신탁은 상황이 더 녹록지 않다. 책임준공형 사업장 관련 충당부채 부담 등이 반영되면서 올해 상반기 153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24년 1133억원, 지난해 787억원의 연간 순손실을 낸 데 이어 올해는 상반기에만 지난해 연간 손실 규모를 넘어섰다. 3년차 임기와 누적된 적자가 동시에 겹친 만큼 수익성 회복과 리스크 관리 성과가 연말 인사의 주요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
3년차 CEO들이 '지난 3년의 성적표'로 평가받는다면 첫 2년 임기를 마치는 CEO들은 실적과 함께 이재근 체제의 미래 성장전략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가 변수다. 김재관 KB국민카드 대표와 정문철 KB라이프생명 대표가 대표적이다.
KB국민카드는 금융 플랫폼 경쟁력 강화를 위해 AI에이전트 구축 등 AX(AI전환)를 추진하고 있다. KB라이프생명은 고령화에 대응해 건강보험과 시니어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AI와 고령화는 이재근 부문장이 차기 경영의 핵심 변화 요인으로 직접 지목한 영역이기도 하다. 두 CEO가 추진해온 사업이 고객 확대와 수익성, 업무 효율 개선 등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졌는지가 첫 연임 여부를 가를 평가 요소가 될 수 있다.
계열사 CEO 교체 여부는 해당 대표들의 거취에서 끝나지 않는다. 빈자리가 생길 경우 지주와 국민은행 경영진의 이동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앞서 국민은행에서는 올해 말 오상원 테크그룹대표와 이성희 자본시장사업그룹대표, 이종민 글로벌사업그룹대표 등 이재근 부문장이 은행장 시절 발탁한 부행장 3명이 나란히 3년차 임기를 마친다.
오상원 부행장은 지주 IT본부장을 겸하고 있어 그룹 IT 사업과 접점이 있고, 이성희 부행장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을 거친 자본시장 전문가다. 이종민 부행장 역시 지주 전략과 시너지, 은행 투자금융·경영기획·글로벌을 두루 경험했다. 계열사 CEO 교체 폭이 커질수록 이 같은 지주·은행 핵심 임원들을 계열사 경영진으로 전진 배치할 공간도 넓어진다. 결국 이번 인사는 '누가 물러나느냐'뿐 아니라 이재근 부문장이 그 자리를 어떤 전문성을 가진 인물로 채우느냐까지 봐야 하는 셈이다.
금융권의 시선은 이재근 부문장이 강조해온 성과주의가 첫 계열사 인사에서 어떻게 구현될지에 쏠린다. 이 부문장은 차기 회장 내정 직후 “세대교체는 단순히 나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조직으로의 탈바꿈”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은행장 내정 당시에도 능력에 따라 보임하고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인사는 이재근 부문장이 말한 '세대교체'의 의미를 확인할 첫 무대가 될 전망이다. 3년차라는 이유만으로 CEO를 바꿀지, 실적이 뒷받침된 인사는 다시 기회를 줄지, 부진한 계열사에는 새로운 인물을 투입할지가 동시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최근 회장 교체 때마다 반복된 대규모 인적 쇄신과 성과주의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이재근 체제 첫 계열사 인사의 폭도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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