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K-금융의 글로벌 행보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 진출은 이제 주요 금융사에 단순한 기회 모색이 아니라 핵심 사업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탄탄한 해외 실적은 '생산적 금융'이 강조되는 현시점에서 선순환적 수익 구조를 만들어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 딜사이트는 이번 기획을 통해 세계 각 거점에서 펼쳐지는 국내 금융사의 현지 사업과 전략, 그리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 주]
[싱가포르=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정형동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장은 20년 가까이 투자금융(IB) 현장을 누빈 'IB맨'이다. 2023년 싱가포르지점에 부임해 올해로 4년째 지점을 이끌고 있다. 그가 지난 4년간 공을 들인 것은 단순히 자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점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었다.
한국인 중심이던 조직은 현지 인력 중심으로 재편했다. 현재 전체 직원 45명 가운데 주재원은 9명으로 현지직원이 80%를 차지한다. 한국 기업에 의존했던 영업의 무게중심도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등 아시아 현지 기업으로 옮기고 있다. 인력과 고객을 함께 현지화해 한국계 은행의 해외지점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목표다.
이제 정 지점장이 바라보는 다음 단계는 글로벌 은행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단순히 신디케이트론에 참여하는 데서 나아가 현지 우량기업의 거래를 직접 주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IB 현장을 경험한 그가 이를 'IB 싸움의 정점'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정 지점장은 최근 싱가포르에서 딜사이트와 만나 "싱가포르지점은 국제금융 중심지에 있어 비즈니스 기회가 많은 동시에 탄탄한 내부통제와 조직관리가 요구되는 점포"라며 "한국계 기업만 상대하기에는 포지션이 작고 발전에 한계가 있어 현지 기업과 금융기관으로 거래를 넓혀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 의존 영업에서 현지 영업으로"…현지직원 80%
정 지점장이 부임 이후 가장 크게 바꾼 것 중 하나는 인력 구성이다. 4~5년 전만 해도 한국인 직원 비중이 70~80%에 달했지만 현재는 전체 45명 가운데 주재원이 9명이다. 나머지 36명을 현지 인력으로 채우면서 현지직원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렸다.
정 지점장은 현지직원의 처우를 손보고 역량 강화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해외에서 한국 직원이 많으면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며 "현지 직원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고용환경 변화도 현지 인력을 늘려야 할 필요성을 키웠다. 외국인 전문인력의 취업비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급여와 함께 기업의 현지 전문인력 고용 비중과 국적 다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예컨대 한국인 주재원 1명을 들이려면 현지직원 4명가량을 채용해야 한다. 주재원 중심으로 해외점포를 운영하기보다 현지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함께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중요해진 셈이다.
이 같은 방향은 신한금융그룹의 글로벌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글로벌 사업에서 현지화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정 지점장은 "회장께서 글로벌은 한국의 문화, 신한의 문화로 다 성공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신다"며 "현지 직원을 존중하고 같이 협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람의 현지화는 영업의 현지화로 이어졌다. 4~5년 전에는 한국 기업 대상 대출이 지점 대출의 절반을 넘었다. 지금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등 아시아 현지 기업을 대상으로 한 대출이 영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정 지점장이 지점을 이끈 지난 4년간 싱가포르 금융시장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점도 고객 기반을 넓혀야 하는 이유다. 글로벌 금융회사와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거점이 몰려 있는 만큼 우량 거래를 놓고 금융회사 간 경쟁도 거세다. 각 은행이 국가·신용위험을 엄격하게 관리하면서 우량 거래에 자금이 몰리고 가격 경쟁 역시 치열해지고 있다는 게 정 지점장의 설명이다.
정 지점장은 "한국에 의존하던 영업에서 현지 영업으로 많이 바뀐 게 가장 크다"며 "실질적인 글로벌 금융기관의 모습을 갖춰가는 게 가장 중요하고 보람"이라고 돌아봤다.
◆"IB 싸움의 정점은 주관사"…현지 우량기업 딜이 다음 목표
20년 가까이 IB 현장을 경험한 정 지점장이 현지화의 다음 단계로 꼽는 것은 '주관사 역량'이다. 싱가포르 신디케이트론 시장에서는 씨티은행과 HSBC, 미즈호 등 글로벌 은행들이 주관사로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한국계 은행은 상대적으로 참여기관으로 거래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정 지점장은 "IB는 결국 주관사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싸움의 정점"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은행과 경쟁할 때 넘어야 할 벽으로는 조달비용과 네트워크, 현지 인력의 영업 역량을 꼽았다. 특히 신용등급과 글로벌 조달망에서 우위를 가진 대형은행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어 대출 가격 경쟁에서도 유리하다.
정 지점장은 조달비용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예로 "글로벌 은행이 3%에 조달해 4%에 대출할 때 한국계 은행은 4%에 조달해 5%에 대출해야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이미 주관 경험도 쌓았다. 산업은행과 함께 포스코 인도네시아의 2억5000만달러 규모 신디케이트론을 공동주관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지 규제와 세금, 담보 관련 법률 등을 검토하며 거래를 마무리하기까지 5~6개월이 걸렸다.
정 지점장이 바라보는 다음 벽은 한국계 기업을 넘어 현지 우량기업의 거래를 주관하는 것이다. 포스코 인도네시아 거래는 한국계 은행이 상대적으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한국 기업 관련 거래였지만 현지 기업을 상대로 글로벌 은행과 경쟁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판단이다.
그는 "한국계 기업 딜이라 가능했던 측면이 있다"며 "현지 우량기업 딜을 주관하려면 금리 경쟁력과 네트워크, 직원 역량을 모두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인력 현지화와 고객 현지화, 주관사 역량 강화는 별개의 과제가 아니다. 현지 직원을 키워 영업망을 넓히고 이를 바탕으로 현지 우량기업의 거래를 발굴해야 글로벌 은행과 주관 경쟁까지 벌일 수 있다는 게 정 지점장의 구상이다.
◆20년 IB맨이 지점장 되니…"영업·내부통제 5대5"
정 지점장은 1998년 신한은행에 입행한 뒤 종합금융부 자산유동화팀에서 IB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부동산금융부와 구조화금융부, 대기업금융센터 등을 거쳤고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에서도 근무했다. 홍콩에서도 두 차례 단기 연수 형태로 근무했다.
20년 가까이 IB 현장을 누빈 그에게도 지점장 자리는 다른 역할을 요구했다. 거래를 발굴하고 금융구조를 만드는 것만큼 조직과 리스크를 관리하는 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경쟁하는 싱가포르에서는 영업 확대에 걸맞은 내부통제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이다.
정 지점장이 과거 특화상품부에서 내부통제와 소비자보호를 맡았던 경험도 지점 운영에 반영되고 있다. 싱가포르통화청(MAS)은 금융회사의 영업을 폭넓게 허용하는 동시에 자본과 유동성, 자금세탁방지(AML), 내부통제 등 지켜야 할 기준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정 지점장은 "예전에는 내부통제가 영업보다 뒤처지는 문화였지만 지금은 적어도 5대5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통제를 챙기면서도 직접 영업 현장을 뛰는 것은 여전하다. 정 지점장의 달력에는 고객과 금융회사 관계자들을 만나는 점심과 저녁 약속이 빼곡하다. 인력과 고객 기반을 현지화하고 글로벌 은행과 경쟁할 네트워크를 확보하려면 결국 직접 사람을 만나 관계를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 지점장은 "싱가포르는 600여개 은행의 각축장"이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은행이라는 사명감으로 해외 은행들과 당당히 경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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