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구예림 기자] 한국씨티은행이 김경호 기업금융그룹 부행장을 차기 수장으로 낙점하면서 '기업금융그룹장→행장'이라는 승계 경로가 세 차례 연속 이어질 전망이다. 소비자금융 철수 이후 기업금융이 사실상 성장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기업금융 현장을 이끌어온 김 부행장의 경력과 성과가 강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금융그룹장으로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김 부행장에게는 이제 이를 은행 전체의 성과로 확장해야 하는 한층 무거운 과제가 주어졌다.
3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한국씨티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는 지난 22일 김 부행장을 차기 은행장 단독 후보로 추천했다. 김 부행장은 다음달 27일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김 후보가 최종 선임되면 박진회 전 행장과 유명순 현 행장에 이어 기업금융그룹장 출신이 세 차례 연속 은행장을 맡게 된다.
기업금융그룹장이 연이어 은행장으로 올라서는 배경에는 한국씨티은행의 사업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2020년 유 행장 선임 당시 한국씨티은행은 소비자금융과 기업금융을 양대 축으로 두고 있었다. 당시에는 두 사업을 함께 이끌면서 핀테크·디지털화 등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하고 글로벌 경쟁력과 금융소비자 보호, 내부통제까지 아우르는 전사적 리더십이 요구됐다.
유 행장 취임 이후 사업구조는 크게 달라졌다. 한국씨티은행은 2021년 소비자금융의 단계적 폐지를 결정하고 이듬해부터 관련 상품·서비스의 신규 계약을 중단했다. 기존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유지하면서 신규 투자와 성장의 무게중심을 기업금융으로 빠르게 옮겼다.
사업 포트폴리오의 변화는 차기 수장에게 요구되는 역량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소비자금융과 기업금융을 함께 영위하던 시기에는 은행 전반을 아우르는 관리·혁신 역량이 중요했다면 현재는 기업금융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영업 경험과 전문성의 중요성이 한층 커졌다. 이번 인선에서 기업금융을 직접 이끌어온 김 후보의 존재감이 부각된 배경이다.
당초 임추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김 부행장과 함께 자금시장그룹을 총괄하는 엄지용 부행장이 유력한 내부 후보로 거론됐다. 외환·파생상품 등 자금시장 부문이 이끄는 비이자이익의 증가가 은행 실적을 뒷받침하면서다. 다만 실제 승계 과정에서 엄 부행장이 최종 후보군에 포함돼 김 후보와 직접 경쟁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시장에서 두 사람이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가운데 결과적으로 기업금융을 이끌어온 김 후보가 단독 후보로 선택된 셈이다.
김 후보는 한국씨티은행의 사업 무게중심이 기업금융으로 이동한 시기와 맞물려 관련 조직을 이끌어왔다. 대기업금융부장과 금융기관본부장을 거쳐 소비자금융 철수 결정이 내려진 2021년 기업금융그룹 부행장에 올랐다. 이후 대기업과 금융기관 영업을 총괄하며 소비자금융 철수 이후 은행의 핵심 수익 기반으로 자리 잡은 기업금융 사업을 이끌었다.
이 기간 기업금융 부문의 이익 규모도 크게 확대됐다. 은행의 기업금융 부문 당기순이익은 2021년 말 1266억원에서 지난해 말 4624억원으로 265.2% 증가했다. 유가증권·파생상품 운용 등 김 후보가 이끄는 기업금융그룹의 영업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손익이 포함돼 있어 이를 김 후보 개인의 성과로 직접 연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소비자금융 철수 이후 기업금융 부문의 수익 기여도가 크게 높아진 흐름은 뚜렷하다.
김 후보가 기업금융그룹을 이끌면서 주력해온 또 다른 축은 씨티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국내 기업의 해외 영업 지원이다. 기업금융그룹은 해외 '코리아데스크'를 활용해 국내 기업의 현지 자금조달과 외환·무역금융 등 금융 수요를 공략해왔다.
지난해에는 배터리·자동차·제조·IT·물류 기업의 미국 투자를 비롯해 공기업의 원전 프로젝트 등에서 현지 자금조달과 외환·무역금융을 지원했다. 올해 2월에는 반도체와 배터리 등 국내 기업의 북미 투자가 중서부 제조·물류 지역으로 확대되는 흐름에 맞춰 시카고 코리아데스크도 신설했다. 현지 씨티의 네트워크와 한국 기업 전담 인력을 결합해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금융 수요를 선점하려는 전략이다.
이 같은 기업금융 경험과 성과는 임추위가 김 후보를 추천한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단순히 기업금융그룹장을 오래 맡았다는 점보다 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에서 철수하고 기업금융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는 과정에서 핵심 사업을 직접 이끌어왔다는 점이 경쟁력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김 후보에게는 이제 기업금융그룹에서 쌓은 성과를 은행 전체의 성과로 확장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기업고객 영업과 글로벌 네트워크 활용에서 보여준 강점을 이어가는 동시에 자금시장과 리스크관리, 잔존 소비자금융 등 은행 전반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 행장 체제에서 기업금융 중심의 체질 전환이 상당 부분 이뤄진 만큼 차기 행장의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업금융 전문가로서 검증받은 김 후보가 '사업부문 수장'을 넘어 은행 전체의 성장과 리스크를 책임지는 최고경영자(CEO)로 리더십의 범위를 넓힐 수 있을지가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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