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일본)=딜사이트 이태민 기자] 일본이 K게임의 ‘출시 시장’을 넘어 신작의 흥행 가능성을 미리 가늠하는 시험대로 떠올랐다. 도쿄게임쇼(TGS)를 찾은 한국 게임사는 1년 만에 50곳에서 127곳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주요 게임사들은 미공개 신작을 일본 이용자에게 먼저 선보였고, 인기작에는 두 시간을 훌쩍 넘는 시연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게임사 수장부터 정부·국회 관계자까지 현장을 찾으면서 일본 시장을 바라보는 국내 게임업계 안팎의 달라진 무게감도 드러났다.
韓 게임사 50→127곳…일본서 신작 가능성 먼저 본다
23일 일본 컴퓨터엔터테인먼트협회(CESA)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멧세에서 진행된 ‘도쿄게임쇼(TGS) 2026’에는 총 25만7650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당초 21일까지 5일간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태풍 25호 ‘두쥐안’의 접근으로 마지막 날 일정이 취소됐다. 비즈니스 매칭은 3673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한국 게임업계의 참가 확대는 올해 TGS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였다. 한국 참가사는 127개사로 지난해 50개사보다 2.5배 이상 늘어 개최국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단순 참가 규모뿐 아니라 출품작의 범위도 서브컬처부터 콘솔·크로스플랫폼, 인디게임까지 넓어졌다.
특히 주요 게임사들은 일본을 개발 중인 신작의 반응을 먼저 확인하는 무대로 활용했다. 넥슨은 넥슨게임즈의 신작 ‘파레이돌리아’를, 엔씨소프트는 디나미스원의 ‘아스트라에 오라티오’를 선보였다. '프로젝트 KV' 유출 관련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양사가 나란히 신작을 공개하면서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넷마블은 인기 원작과 자체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신작 3종을 전면에 내세웠고, 스마일게이트도 신작 2종을 선보였다. 시프트업은 ‘스텔라 블레이드 컴플리트 에디션’ 닌텐도 스위치2 버전을 세계 최초로 공개 시연했다.
NHN플레이아트는 8년 만에 단독 부스로 참가했으며,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내 중소 게임사 15개사의 공동관 참가를 지원했다.
주요 한국 게임사 부스에는 장시간 대기 행렬도 이어지면서 현지 반응도 뜨거웠다. 엔씨소프트 ‘아스트라에 오라티오’ 부스에는 행사 기간 약 3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했고, 19일에는 시연 대기 시간이 120분을 넘기면서 현장 접수가 조기에 마감됐다.
넥슨 ‘파레이돌리아’ 역시 대기 시간이 최대 150분까지 늘었다. 넷마블 부스에도 개장 직후부터 관람객이 몰리며 이른바 ‘오픈런’ 행렬이 형성됐다. 특히 ‘샹그릴라 프론티어: 일곱 최강종’ 시연 대기권은 19일 오전 중 모두 소진됐다.
국내 게임사들이 TGS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일본 시장의 역할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완성된 게임을 출시한 뒤 마케팅에 나서는 데 그치지 않고 개발 단계부터 현지 이용자에게 게임을 공개해 캐릭터와 세계관, 전투 방식 등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고 초기 팬덤까지 확보하는 방식이다.
캐릭터와 이용자 간 관계, 팬덤의 충성도가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서브컬처 장르에서는 일본 이용자의 초기 반응 자체가 개발 방향을 점검할 수 있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이준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개발 단계부터 일본 이용자에게 신작을 공개해 캐릭터와 세계관, 전투 방식 등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고 팬덤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라며 "특히 이용자 취향과 캐릭터 선호가 중요한 서브컬처 게임의 경우 현지 반응을 실제 개발 과정에 반영하는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중국 대형 게임사들의 B2C 전시가 예년보다 줄어든 점도 올해 한국 게임사들이 상대적으로 존재감을 키울 수 있었던 배경으로 거론된다. 전시장 내 경쟁 구도가 일부 달라진 사이 국내 게임사들이 대규모 부스와 신작 시연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관람객의 접점을 넓혔다는 분석이다.
게임사 수장들도 일본행…현장에서 직접 신작 반응 확인
일본 시장을 바라보는 달라진 무게감은 게임사 경영진의 행보에서도 나타났다. 주요 게임사 수장들이 직접 TGS를 찾아 관람객의 신작 시연 모습을 살피고 일본 시장 전략을 점검했다.
넥슨에서는 이재교 엔엑스씨(NXC) 대표와 이정헌 넥슨 일본법인 대표 등이 현장을 찾았다. TGS 기간 ‘데이브 더 다이버’ 모바일 버전을 선보인 황재호 민트로켓 대표도 함께 부스를 둘러봤다.
방준혁 넷마블·코웨이 이사회 의장도 직접 현장을 찾아 김병규 넷마블 대표와 권영식 넷마블네오 대표, 개발 스튜디오 PD들과 관람객들의 시연 모습을 지켜봤다.
방 의장은 “작년의 경험을 토대로 일본 이용자들이 만족스러워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며 “아무래도 작년보다는 반응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준호 스마일게이트 대표 역시 개막일 현장을 찾아 출품 신작에 대한 이용자 반응을 직접 확인했다. 일본을 단기적인 신작 출시 시장이 아닌 글로벌 사업 확대를 위한 전략 지역으로 보고 장기적으로 이용자 접점을 넓혀가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성 대표는 "일본은 세계 3위 규모의 게임 시장이자 소니·닌텐도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과 세계적인 개발사들이 자리한 게임 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인 만큼 회사의 글로벌 사업 확대에 있어서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며 "앞으로도 일본 이용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현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국회도 TGS로…중소게임 해외 진출·제도 지원 약속
게임업계뿐 아니라 정부와 국회의 시선도 TGS로 향했다. 관심은 대형 게임사의 신작에만 머물지 않았다. 중소·인디 게임사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살피고 마케팅 지원과 제도 개선 등 정책적 뒷받침 방안을 찾는 데도 무게가 실렸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재정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여야 간사인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 등은 넷마블, NHN, 스마일게이트, 한국공동관, 엔씨, 넥슨 부스를 차례로 둘러보고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특히 이들이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을 할애한 곳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한국공동관이었다. 대형 게임사 부스에서는 주요 신작과 일본 시장 전략을 살폈다면 한국공동관에서는 중소 게임사들의 출품작과 해외 진출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확인했다. 최 장관은 현장 이동 중 중소 게임사의 참가 현황을 직접 묻기도 했다.
최 장관은 중소 게임사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마케팅·홍보 등 정부 지원을 살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장을 둘러본 뒤에는 “근사한 게임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어 든든하다”며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 우리 게임산업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게임산업 관련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겠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이재정 위원장은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에 대해 “도쿄게임쇼도 그렇고 직전 독일 게임스컴에서도 의원들이 직접 찾아 게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때가 됐다”며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법안 논의가 시작되는데, 그 뒤로 늦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정문 의원도 "우리 게임이 좀 위기이기도 하지만 오늘 둘러보니 게임 시장이 대단하다는 걸 눈으로 봤다"며 "우리 게임도 K콘텐츠의 선두 주자가 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 더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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