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성준 차장] 벤처캐피탈(VC) 업계를 취재하면서 요즘 아이러니한 장면이 목격된다. 수천억원, 많게는 조 단위의 펀드를 운용하며 유망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일부 상장 VC들이 동전주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은 지난 7월부터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000원을 밑돌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 동전주 퇴출 제도를 시행했다. 이후 90거래일 동안 45거래일 연속 1000원 이상을 회복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퇴출해 코스닥시장의 신뢰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해당 정책의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코스닥 시장엔 사업은 뒷전인 채 상장 지위만 이용하면서 주가조작을 일삼는 좀비기업이 수두룩하다. 신규 상장의 기회만 주어지고 부실기업의 퇴로를 닫아둔다면 코스닥 시장은 결국 낡은 기업만 남은 요양원처럼 될 것이다.
문제는 기업의 실질적인 부실 여부와 별개로 주가 1000원이 상장 지위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잣대로 작용되는 데 있다. 주가를 움직이는 변수는 실적만이 아니다. 증시의 방향과 업종별 수급, 유통주식수와 투자심리 등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
같은 시가총액과 자본을 가진 기업이라도 발행주식 수에 따라 주가는 900원이 될 수도, 9000원이 될 수도 있다. 주가는 기업가치의 결과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기업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는 아니다.
최근에는 코스피와 대형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자금이 쏠리는 동안 코스닥시장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흐름이 이어졌다. 실적이나 재무 상태와 관계없이 시장의 외면을 받은 중소형주가 1000원 아래로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부실기업을 겨눈 칼날이 애먼 기업을 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위기감을 느낀 상장 VC들은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다. SBI인베스트먼트는 2대 1 주식병합을 실시한 데 이어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47만여주를 전량 소각했다. TS인베스트먼트도 자사주 68만여주를 소각하고 2대 1 주식병합을 단행한 뒤 다시 15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물론 상장사는 주가 관리와 주주환원에 책임을 져야 한다. VC라고 예외일 수 없다. 투자자에게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지속적인 수익도 보여주지 못했다면 저평가의 책임을 시장에만 돌릴 수도 없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 역시 기존 주주에게는 반가운 조치다.
그러나 이 같은 주가 방어전은 VC 하우스에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한다. 주식병합과 자사주 취득·소각에는 이사회와 주주총회, 거래소 신고와 변경상장 등 여러 절차가 뒤따르고 재무를 비롯해 법무·IR 인력도 동원된다. 자사주 매입에 현금을 투입하면 그만큼 본계정 투자나 신규 펀드의 운용사 출자에 활용할 여지도 줄어든다. 정상적인 주주환원이 아니라 단지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모든 자원이 낭비되는 셈이다.
특히 VC의 자기자본은 새 펀드의 운용사 출자금으로 활용하거나 유망 기업에 후속 투자할 수 있는 종잣돈이다. 스타트업을 키우는 데 쓰여야 할 돈이 주가를 방어하는 데 투입되는 역설이 벌어질 수 있다. 혁신자본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이 한쪽에서는 VC의 투자 여력을 주가 방어에 묶이도록 만든 셈이다.
VC의 실적과 주가에는 일반 제조업과 다른 특성도 있다. VC 하우스는 투자기업의 기업공개와 인수합병이 언제 이뤄지느냐에 따라 회수이익이 크게 달라진다. 증시와 벤처투자시장이 얼어붙으면 우량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도 몇 년간 부진한 실적을 낼 수 있다. 운용자산과 투자기업의 잠재가치는 재무제표와 주가에 즉각 반영되지 않는다. 이런 업종을 하루하루 움직이는 주가 하나로 재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결국 부실기업 조기 퇴출이라는 대원칙을 살리면서도 부작용을 줄일 세밀한 보완책이 절실하다. 감사의견과 자본잠식률, 시가총액, 영업 지속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상장 VC에는 운용자산과 관리보수, 펀드 결성·운용 실적 등 본업이 정상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기업에는 기계적인 퇴출 대신 실질심사나 추가적인 회복기간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상장 VC가 본업인 스타트업 발굴과 투자 대신 주가 방어에 골몰하는 기현상이 계속되지 않도록, 업종 특성을 고려한 핀셋 보완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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