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공적자금은 갚았지만 '3대2'는 남았다. Sh수협은행이 2022년 공적자금 상환 의무를 조기에 해소하면서 정부가 행장 인선에 관여할 명분은 과거보다 약해졌지만, 은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에서 정부 추천 인사가 5석 중 3석을 차지하는 구조는 그대로다.
이런 상황에서 현직 금융위원회 1급 고위공무원인 이형주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이 차기 행장 공모에 뛰어들었다. 최근 세 차례 연속 '수협맨'이 행장을 차지한 가운데 이 원장의 등장은 공적자금 상환 이후에도 남아 있는 정부 추천 몫의 제도적 영향력이 실제 인선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 1일 마감된 수협은행 차기 행장 공개모집에 지원했다. 신학기 현 행장과 정철균·박양수 전 부행장, 강철승 전 중앙대 교수, 일반 기업 출신 인사 1명 등 모두 6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 원장의 지원을 두고 금융권 안팎에서는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현직 FIU 원장이 임기를 수행하는 도중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공모에 직접 뛰어들었다는 점에서다. 역대 FIU 원장 가운데 금융회사나 유관기관으로 이동한 사례는 있다. 김광수 전 원장은 FIU 원장을 떠난 뒤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지냈고 박정훈 전 원장도 퇴임 이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이 원장은 금융위원회에서 금융산업국장과 금융정책국장, 상임위원 등을 거친 금융정책·감독 분야의 정통 관료다. 현재 FIU 원장으로 자금세탁방지와 가상자산 관련 정책 등을 총괄하고 있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오는 12월 임기가 끝나는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의 후임 후보로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금융당국 내 차기 고위직 후보로 거론되던 현직 1급 공무원이 수협은행장에 도전하면서 그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 원장의 출마가 더욱 주목받는 것은 수협은행 특유의 행장 선임 구조 때문이다. 수협은 과거 대규모 공적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정부가 행장 인선의 주요 이해관계자로 자리 잡았다.
수협은 2001년 신용사업 부문 경영 정상화를 위해 예금보험공사로부터 1조1581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이후 정부 추천 인사가 행추위의 과반을 차지하는 구조 속에서 정부와 수협중앙회 간 이해관계가 행장 인선의 주요 변수로 작용해왔다.
이 같은 구조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2017년 행장 인선이다. 당시 정부 측과 중앙회 측 행추위 위원들이 후보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재공모가 반복됐고 행장 공백도 장기화했다. 정부 추천 위원 3명만으로도, 중앙회 추천 위원 2명만으로도 최종 후보를 결정할 수 없는 행추위 구조가 실제 인선 파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공적자금을 상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수협중앙회는 2022년 예보에 남아 있던 공적자금 7574억원에 대해 국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상환 의무를 조기에 해소했다. 이에 따라 공적자금을 매개로 정부가 수협 경영과 행장 인선에 관여할 명분도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같은 영향 탓인지 행장 인선의 흐름도 내부 출신 쪽으로 기울었다. 2020년 김진균 전 행장을 시작으로 2022년 강신숙 전 행장, 2024년 신학기 현 행장까지 세 차례 연속 내부 출신이 행장에 올랐다. 2001년 독립사업부제 도입 이후 민간 금융회사와 관료 출신 등이 번갈아 행장직을 맡았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진 흐름이다.
공적자금 상환 의무는 사라졌지만 정부의 제도적 영향력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행추위의 추천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다. 이런 배경 탓에 이 원장이 정부 측과 일정 부분 교감한 뒤 지원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금융권 일각에서 제기된다.
실제로 정부 추천 몫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수협은행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따르면 행추위에는 기획재정부 장관과 해양수산부 장관, 금융위원장이 추천한 사외이사가 각각 1명씩 참여한다. 나머지 2명은 수협중앙회가 추천한다. 현재 행추위에는 김병규·박경철·임형준 사외이사가 각각 기재부·해수부·금융위 추천 몫으로 참여하고 있다. 중앙회 추천 인사는 송광복 부안수협 조합장, 정승만 경기수협 조합장이다.
즉 공적자금 상환으로 정부 개입의 명분은 약해졌지만 정부 측이 행추위 5석 가운데 3석을 추천하는 '3대2' 구조는 변하지 않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직 금융위 고위공무원인 이 원장이 후보로 등장하면서 정부 추천 몫의 제도적 영향력이 실제 표결에서 어떻게 나타날지도 이번 인선의 관전 포인트가 됐다.
그렇다고 정부 추천 위원들의 선택만으로 이 원장이 최종 후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종 후보 추천에는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5인 체제에서는 4명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 추천 위원 3명이 모두 같은 후보를 지지하더라도 중앙회 추천 위원 가운데 최소 1명의 동의를 추가로 얻어야 한다. 반대로 중앙회 측 역시 2표만으로 내부 출신 후보를 최종 후보로 만들 수 없다.
이 때문에 이번 인선 결과를 특정 후보에 대한 정부의 의중과 곧바로 연결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 원장이 최종 후보로 추천되더라도 금융정책·감독 분야에서 쌓은 전문성과 후보 개인의 경쟁력 등이 행추위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직 금융위 1급 공무원이 출마했다는 사실 자체는 공적자금 상환 이후 수협은행 행장 인선에서 정부와 중앙회의 관계가 어떻게 재정립됐는지를 살펴볼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원장이 낙점된다면 최근 세 차례 이어진 내부 출신 행장 흐름이 끊기는 동시에 외부 출신이 다시 선택되는 셈이다. 반대로 내부 출신이 네 차례 연속 선택된다면 정부 추천 3석이라는 제도적 틀과 별개로 최근 인선의 무게중심이 내부로 이동하는 흐름이 더욱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이 원장에게는 다른 후보에게 없는 별도의 관문도 있다. 현직 고위공무원인 만큼 최종 후보로 추천돼 수협은행으로 자리를 옮기려면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취업심사를 거쳐야 한다. 심사 과정에서는 퇴직 전 수행했던 업무와 취업 예정 기관 사이의 업무 관련성 등이 판단 대상이 된다.
행추위는 오는 9일 서류심사를 거쳐 면접 대상자를 추린다. 면접은 21일이다. 이후 최종 후보가 정해지면 수협은행 이사회와 수협중앙회 이사회 의결, 수협은행 주주총회 등의 절차를 거쳐 차기 행장이 선임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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