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정희 기자]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자체 브랜드 판매망을 구축하며 한국 자동차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는 곳은 BYD다. BYD는 국내 승용차 시장 진출 1년 반여 만에 수입차 판매 4위에 올랐다. 지커와 샤오펑도 잇달아 국내 시장에 뛰어들거나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국내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단순 차량 판매를 넘어 지분 투자와 기술 협력까지 병행하며 한국 시장 진출 방식을 다변화하는 모습이다.
◆ 직접 진출과 협력으로 입지 확대
업계에 따르면 BYD·지커·샤오펑 등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직접 진출과 판매망 확대를 통해 국내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2025년 1월 국내 승용차 시장에 진출한 BYD다. BYD는 올해 1~7월 국내에서 1만4521대를 판매하며 지난해 연간 판매량인 6157대를 이미 두 배 이상 넘어섰다. 수입차 브랜드 판매 순위에서도 테슬라와 BMW, 메르세데스-벤츠에 이어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십수년 전 한국 시장에 진출한 토요타와 볼보, 아우디, 폭스바겐 등 기존 수입차 브랜드를 제치며 빠르게 입지를 넓히고 있는 셈이다.
지리차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 지커도 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7X’를 앞세워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 6월 시작한 사전계약에서 1500대 이상을 확보했으며, 연말까지 전국 판매 거점을 14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샤오펑 역시 지난해 국내 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딜러사 선정 등 국내 판매를 위한 막바지 준비를 진행 중이다. 여기에 체리차와 샤오미 등 다른 중국 업체들도 한국 진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국내 시장 진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 업체들의 영향력 확대는 직접 판매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 완성차 업체와의 자본·기술 협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지리차는 2022년 르노코리아 지분 34.02%를 인수해 2대 주주에 올랐다. 이후 지리의 플랫폼과 기술을 활용한 그랑 콜레오스와 필랑트 등이 협업 결과물로 등장했다. 특히 그랑 콜레오스는 2024년 9월 출시 이후 지난달까지 총 7만3087대가 판매됐다. 중국계 플랫폼과 기술을 활용한 차량도 국내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상품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KGM도 최근 체리차로부터 7500만달러(약 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협력 관계를 강화했다. 양사는 KGM의 상품기획·디자인·차량개발 역량과 체리차의 친환경 파워트레인·글로벌 플랫폼 기술을 결합해 신차 개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르노코리아가 지리차의 플랫폼과 기술을 활용해 그랑 콜레오스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데 이어 KGM도 중국 업체의 기술 경쟁력을 활용해 개발 효율과 상품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업체들의 국내 진출 영역은 완성차를 넘어 자율주행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중국 자율주행 기업 포니AI는 국내 업체 퓨처링크와 손잡고 2028년까지 로보택시 200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투입 차량 역시 중국 베이징차가 생산한 모델이다. 중국 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이 완성차 판매뿐 아니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등 미래 모빌리티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모습이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한국 시장 진출이 점점 늘고 있다”며 “업계에서도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낮은 관세 장벽에 ‘테스트베드’ 매력
중국 업체들이 한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배경에는 중국 내수시장 성장 둔화와 한국 시장의 특수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내 승용차 판매량은 828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했다. BYD 역시 같은 기간 판매량이 180만8511대로 16% 줄었다. 내수 판매가 부진해지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는 셈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자동차 시장이 중국산 차량을 대상으로 높은 관세 장벽을 세우면서 상대적으로 진입 문턱이 낮은 한국의 매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기존 2.5% 관세에 더해 10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중국산 전기차에 기본 관세 10%와 업체별 상계관세를 추가 적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중국산 차량에 8%의 관세율을 적용한다. 중국 업체 입장에서는 미국·유럽과 비교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용이한 시장인 셈이다.
한국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테스트베드(시험대)’로 평가받는 점도 중국 업체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 규모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크지 않지만 소비자 눈높이가 높고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 간 경쟁이 치열해 한국에서 상품성을 인정받을 경우 다른 주요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은 단순히 한국 시장을 겨냥한 전략을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내 업체가 보유한 생산 기반과 글로벌 판매망을 활용할 경우 중국 기업들이 미국·유럽 등 주요 시장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우회적인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 시장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한국에서 통하면 글로벌에서도 통한다는 상징성이 있다고 본다”며 “더 나아가 중국 업체들이 국내 완성차 업체에 지분 투자하거나 협력하는 것은 한국의 생산 기반을 활용해 미국·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삼으려는 전략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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