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NH농협은행이 농업지원사업비(농지비)와 공공·정책금융이라는 구조적인 수익성 제약 속에서 대기업대출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업대출 순증액 5조1000억원 가운데 72%가 대기업 여신에서 발생했다. 전체 원화대출의 15%가량을 공공성 자금으로 운용하는 특수한 사업구조를 가진 가운데 대규모 취급이 가능하고 신용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기업 여신으로 이자수익 기반을 넓히는 모습이다.
18일 NH농협금융지주에 따르면 농협은행의 올해 상반기 말 원화대출금 잔액은 312조8480억원으로, 전년 동기(306조7706억원) 대비 2% 증가했다. 이 가운데 기업대출 잔액은 118조5603억원으로 지난해 말(113조4520억원)보다 4.5%(5조1083억원) 늘었다.
기업대출 성장은 대기업 여신이 주도했다. 농협은행의 상반기 대기업대출 잔액은 27조266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23조5905억원) 대비 15.6%(3조6759억원) 증가했으며, 지난해 상반기(23조1262억원)와 비교하면 17.9% 늘어난 규모다.
상반기 전체 기업대출 순증액 5조1083억원 가운데 대기업대출 증가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72.0%에 달한다. 나머지 기업대출 증가액은 1조4324억원에 그쳤다. 기업대출 전체가 4.5% 늘어나는 동안 대기업 여신은 세 배가 넘는 15.6%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기업금융 성장의 무게중심이 대기업으로 이동한 셈이다.
대기업대출 증가율은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가운데 우리은행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의 대기업대출은 15.7% 증가해 농협은행과 0.1%p 차이에 그쳤다. 국민은행은 9.0%, 신한은행은 8.2%, 하나은행은 10.1% 증가했다.
농협은행의 대기업대출 확대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다른 시중은행과 구별되는 수익구조가 자리한다. 농지비라는 구조적인 비용 부담이 발생하는 데다 농업·정책금융을 담당하는 특성상 공공성 자금도 상당한 규모로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익성에 구조적인 제약 요인이 존재하는 만큼 은행 본업에서 안정적인 이익 기반을 확보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먼저 농협은행은 매 분기 농협중앙회에 일종의 브랜드 사용료 성격인 농지비를 납부한다. 농지비는 농협중앙회가 수행하는 농업인 지원사업 등에 필요한 재원을 계열사가 분담하는 비용으로 금융계열사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인 비용 요인이다. 상반기 지출 규모는 2525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2194억원)보다 15.1% 불어났다.
농지비 부담은 은행 이익이 정체된 상황에서 오히려 확대됐다. 같은 기간 농협은행의 순이익은 농지비 부담 전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0.3% 감소한 반면 농지비는 15.1% 증가했다. 영업을 통해 창출하는 이익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농지비 부담은 두 자릿수 증가율을 나타낸 셈이다.
농지비는 실제 순이익 감소 폭을 확대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농지비 부담 전 기준 상반기 순이익 감소폭은 0.3%에 불과했으나, 농지비를 반영한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2.1% 감소했다. 은행의 이익 성장세가 둔화된 상황에서 농지비 부담 증가는 최종 손익을 추가로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공공·정책금융 비중이 높다는 점도 농협은행의 수익구조를 다른 시중은행과 구분 짓는 특징이다. 농협은행은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농업인과 조합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등 농업·정책금융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책 목적의 자금은 일반 기업대출보다 낮은 금리로 공급되는 만큼 대출자산의 수익성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
실제로 농협은행의 공공성 자금 대출 잔액은 상반기 45조7317억원으로 전년 동기(43조9281억원)보다 4.1% 확대됐다. 2024년 상반기부터 최근 3개년 연평균 성장률은 6.6%에 달한다. 지난해 말(47조5113억원)과 비교하면 감소했지만 전체 원화대출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6%에 달했다. 원화대출 100원 가운데 약 15원이 공공성 자금인 셈이다. 타 시중은행의 공공성 대출 비중이 1% 내외에 그치는 것과 대조된다. 특히 통상 하반기에 공공성 자금 대출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연말 잔액이 다시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사업구조 속에서 대기업 여신은 농협은행이 기업대출 외형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는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대기업대출은 중소기업대출보다 금리가 낮아 개별 여신의 마진 측면에서는 불리할 수 있지만 개별 차주당 취급 규모가 커 대규모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차주가 많은 만큼 대규모 여신을 취급하면서도 신용비용 부담을 낮게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별 대출의 마진이 낮더라도 대규모 여신을 통해 이자수익 기반을 넓힐 수 있는 셈이다.
대기업 중심의 외형 확대와 별개로 전반적인 자산건전성 지표에는 부담이 나타나고 있다. 농협은행의 상반기 고정이하여신(NPL)은 1조7890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5316억원)보다 16.8% 증가했다. 이 여파로 NPL비율은 0.47%에서 0.52%로 0.05%p 상승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부실채권 증가와 반대로 농협은행의 대손충당금 잔액은 감소했다는 점이다. 농협은행의 상반기 대손충당금 잔액은 전년 동기(3조2817억원) 대비 6.2% 감소한 3조783억원으로 집계됐다. 부실채권이 늘어나는 동안 충당금 잔액이 감소하면서 대손충당금적립비율(NPL커버리지비율)은 지난해 상반기 214.26%에서 올해 상반기 172.07%로 42.19%p 하락했다.
NPL커버리지비율이 여전히 100%를 웃돌고 있지만 부실채권 대비 충당금 적립 수준은 1년 전보다 낮아졌다. 이 때문에 단기적인 수익 방어를 위해 충당금 적립을 최소화하면서 위기 발생 시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 완충 여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권에선 대기업대출 확대가 농지비와 공공·정책금융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수익성 제약을 얼마나 보완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농협은행이 올해 상반기 기업대출 증가분의 72%를 대기업으로 채우며 시장성 여신 확대에 속도를 냈지만 타 은행 역시 같은 시장을 공략하면서 경쟁 심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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