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현대자동차가 트럼프발 상호관세 환급 신청과 관련해 계열 부품사들의 잇따른 문의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환급 절차가 까다로워서라기보다 글로벌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굳이 먼저 나서 눈에 띌 이유가 없다는 계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그룹 차원에서 트럼프발 상호관세 환급 신청과 관련한 공동 대응 방안을 구상 중이다. 지난 4월부터 계열 부품사들의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지침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현대차가 상호관세 환급 신청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우선 미국 시장이 갖는 무게감 때문이다. 현대차에게 북미는 단일 지역 기준 압도적 1위 시장이다. 지난해 북미 매출은 전체의 44.8%로 절반 가까이에 달한다. 올 상반기 기준 현대차 미국법인은 총 45만568대를 판매했는데 이는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아반떼 하이브리드(HEV), 쏘나타 하이브리드, 투싼 하이브리드 등의 판매 호조 덕분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도 한몫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상호관세 위헌 판결에 반발해 무역법 122조에 따라 전 세계에 10% 글로벌 관세를 부과했지만 이마저도 지난 5월 위법 판결을 받았다. 이 관세는 애초 오는 24일 만료될 예정이었던 만큼 트럼프 행정부는 그 전에 이를 대체할 새로운 관세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에는 강제노동 등을 이유로 한국을 포함한 60개 경제권에 10~12.5% 관세 부과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렇다 보니 현대차 입장에서는 상호관세 환급 신청이 자칫 다른 통상 이슈를 건드리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계산에서 미온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환급받았을 때 미국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을 맺어도 언제 손바닥 뒤집듯 바꿀지 몰라 신뢰성이 이미 많이 무너진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미국 의존도가 워낙 높고, 현대차는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이 미국에서 나오기 때문에 괜히 찍혀서 좋을 게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자동차 산업은 하청 부품사와 융합적으로 얽혀 있어 반도체 같은 다른 산업과는 다르다"며 "자체 판단하기에 금액이 크지 않다면 상황을 눈여겨보면서 지켜보는 것이 오히려 올바른 정책적 접근일 수 있다"고 했다.
현대차가 환급 신청 시점 자체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늦게 신청해도 권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 데다 부품사가 먼저 신청해 환급금을 받더라도 이를 다시 현대차 쪽으로 회수할 방식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시각이다.
박주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통합 관세 환급 시스템인 '케이프(CAPE)' 1단계 마감이 지나도 2단계에서 순차 처리되는 구조라서 지금 신청하지 않는다고 권리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결국은 신청해서 받긴 받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 돈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현대차 쪽으로 가져올지, 단가에 반영할지 다른 형태로 정산할지는 그룹 내부에서 아직 정리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문제를 서두를수록 오히려 계열사와의 관계에서 잡음이 날 수 있는 만큼 시간을 두고 조율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환급 신청 자체를 포기할 경우 자칫 주주가치 훼손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재무 전문가는 "현대차와 계열 부품사는 주주 구성이 다른 별개 상장사"라며 "환급 기회를 계속 방치한다면 이는 결국 현대차 주주가 감당하는 손실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계열사 관세를 대신 보전해주면서 현대차의 영업이익이 줄어든 셈인데 이제 그 비용을 회수할 기회가 열렸는데도 신청조차 미루고 있다면 주주 입장에서는 문제 삼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어차피 돌려받을 돈이라면 환율이 유리할 때 먼저 받는 게 나을 텐데, 지금처럼 그냥 두면 환율 변동에 따라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 기업들도 사정이 비슷해서 다들 눈치만 보는 상황"이라며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 현대차도 결국엔 신청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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