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게임사와 중견·중소 게임사 간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국내 게임산업의 '허리층'인 중견 게임사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개발비와 마케팅 비용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일부 기업은 구조조정과 사업 축소에 나서는 등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이에 딜사이트는 중견 게임사들이 자체 개발, IP 확장, 신사업 등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아울러 이들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과제와 제도적 지원 방안도 함께 짚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태민 기자] 신작 흥행 공백과 자회사 손실 부담에 직면한 컴투스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개발 효율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규모 신사업 확장 대신 개발 생산성을 높여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AI 전환(AX)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초기 인프라 구축과 전문 인력 확보에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중견 게임사의 AX 부담을 덜어줄 정책 지원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핵심 캐시카우 성장 한계…신작 개발 투자 원가 낮추는 방향 선회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컴투스의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1447억원, 영업이익은 51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3.9%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206.9% 증가했다. 겉으로는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 모습이지만, 신작 부재에 따른 마케팅비 축소와 전사적 비용 통제 효과가 반영된 영향이 크다. 본업 성장에 따른 실적 개선이라기보다는 비용 효율화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컴투스는 대표작 '서머너즈 워'와 '컴투스 프로야구' 시리즈의 현금 창출력으로 실적을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장르 확장을 위해 선보인 MMORPG '더 스타라이트'가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한 데다, 미디어 자회사의 만성적인 손실까지 겹치며 수익성 개선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핵심 IP의 성장세가 둔화하는 상황에서 신규 흥행작 확보가 지연되면서 개발 투자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기존의 고비용 개발 방식을 유지할 경우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 배경이다.
이에 컴투스는 캐시카우로 벌어들인 자금을 신작 개발에 재투자하되,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개발 원가를 낮추는 방식을 택했다. 대규모 선행 투자가 필요한 신사업 확장보다는 기존 게임 사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셈이다. 지난 2022년 메타버스 플랫폼 '컴투버스'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했지만 시장 침체 속에 사업 규모를 축소했던 경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3월 설립된 전담 조직 AX 허브를 중심으로 전사 차원의 AI 활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현업 밀착형 AI 엔지니어(FDE)를 제작·사업 본부에 배치하는 조직 신설도 준비 중이다. AI가 반복 업무를 대체하면서 장수 IP 라이브 서비스 운영 인력을 효율화하고, 확보된 인력을 차기작 개발에 재배치한다는 구상이다.
컴투스의 AI 전략은 새로운 수익원을 만드는 것보다 개발·운영 비용을 절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제한된 인력과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계산이다.
초기 성과는 내부 지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생성형 AI 심화 교육 수료자의 82%가 4개월 뒤에도 업무 시간을 30% 이상 단축했고, 아트 결과물 검수·수정 시간은 평균 60% 이상 감소했다. 사내 설문에서도 AI 활용 임직원의 절반 이상이 주 3시간 이상, 약 40%는 주 5시간 이상 업무 시간을 절약했다고 응답했다.
컴투스 관계자는 "각 현장의 맥락을 반영하기 위해 AI 담당 엔지니어가 현업 부서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중앙집중형 전파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며 "게임성 향상과 운영 안정화를 위해 이용자 반응 분석 등 다양한 영역에 AI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AX 환경 초기 구축 부담 커…업계 “실효성 있는 지원책 병행 필요”
게임업계에서는 컴투스의 시도를 중견 게임사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생존 전략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대형 게임사와의 개발 격차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AI를 활용해 적은 비용으로도 개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중견 게임사 고위 관계자는 "AI 도입이 지연될 경우 국내 기업 간 양극화를 넘어 다작과 고품질(퀄리티) 게임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는 글로벌 게임사들과의 경쟁력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며 "AI 자동화가 개발 현장에 빠르게 확산되는 만큼 관련 R&D 투자도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문제는 AX 초기 단계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 비용과 전문 인력 확보에 따른 부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개발 원가를 낮추기 위한 투자가 오히려 중견·중소 게임사에는 단기적인 재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형 게임사와 달리 초기 투자 비용을 자체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자본력과 수익 기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컴투스는 자체 투자 여력을 갖춘 중견 게임사에 속하지만, 상당수 중소 개발사는 AI 전환에 필요한 비용 자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가 정책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컴투스 역시 AX 전환에 필요한 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투자 회수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올해 중소 게임사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게임제작 인공지능 전환 사업'을 신설하고 10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AI 도구 구독료 지원에 75억원, 게임 내 AI 서비스 직접 개발 프로젝트 지원에 30억원을 각각 투입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정책이 한시적으로 추진된다는 점은 변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사업 성과와 현장 안착 여부를 평가한 뒤 향후 예산 규모를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단기적인 예산 지원을 넘어 R&D 세액공제 확대와 AI 전문 인력 양성 등 중장기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지원은 재무 부담이 큰 신기술 도입을 망설이던 중소 개발사들에 중요한 완충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중견·중소 게임사가 본격적인 체급 확대에 나서기 위해서는 AI 인프라 구축 비용 지원과 전문 인력 양성, R&D 세제 지원 등 보다 촘촘한 후속 대책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컴투스의 AX 전략 성패는 AI 도입이 실제 개발 생산성 향상과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신사업 확장보다 효율화에 초점을 맞춘 선택이 성과를 낼 경우 중견 게임사들에 새로운 생존 모델이 될 수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투자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결과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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