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건설 안전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콘크리트의 핵심 원료인 골재를 관리하는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골재 토분 관리 기준은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고 골재 유통이력관리제 역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순환골재 사용 확대와 건축물의 고층화가 이어질수록 골재 품질은 구조물의 안전성과 직결된다. 딜사이트는 골재 품질관리의 현주소와 제도적 한계를 진단하고 건설 안전을 뒷받침할 골재 품질관리 체계의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딜사이트 김정은 기자] 건설자재 품질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골재 유통이력관리제는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2024년 골재의 생산부터 유통, 건설현장 납품까지 전 과정을 추적·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골재채취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정부도 제도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골재업계의 반발과 법안 처리 지연이 맞물리면서 시행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2024년 8월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골재 유통이력관리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골재채취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골재의 채취부터 생산, 운송, 판매, 최종 납품까지 전 과정을 전산으로 관리해 이동 경로와 생산 이력을 추적·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골재는 채취원에서 여러 유통 단계를 거쳐 건설현장으로 공급된다. 이 과정에서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골재가 혼입될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2기 신도시 건설 당시 무허가 발파석을 활용한 불량 골재 사용이 문제가 됐다. 2022년 광주 화정동 붕괴사고와 2023년 인천 검단 붕괴사고 이후에도 골재의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제도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유통이력관리제가 시행되면 생산량과 출하량이 모두 전산으로 관리돼 허가량 초과 생산 여부를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 허가나 신고를 거치지 않은 불량 골재의 건설현장 반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사고 발생 시에도 유통 경로를 신속하게 추적할 수 있다. 아울러 불법 채취와 무허가 골재 유통을 근절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허가량을 초과한 골재 생산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도 제도 도입의 기대 효과로 꼽힌다. 현행 제도에서는 지방자치단체 등 허가권자가 업체의 채취 능력을 고려해 생산 허가량을 정하지만, 일부 업체가 허가량을 초과해 골재를 생산하는 사례가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법안 발의 이후에도 골재업계의 반발로 개정안은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실제 한국골재협회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의견 조사에서는 응답 업체의 57%가 제도 도입에 반대했다. 골재업계는 행정 부담과 비용 증가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전산 시스템 구축과 운영 비용이 발생하고 각종 신고 절차가 늘어나 경영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영세 골재업체는 인력과 비용 부담이 큰 만큼 제도 시행에 앞서 충분한 준비기간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는 2026년 시행을 목표로 관련 전산 시스템 구축과 하위 제도 마련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골재업계 의견을 보다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법안 심사가 중단됐고, 이후 후속 논의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전국적으로 대규모 공공 인프라 사업이 본격화되는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법안의 신속한 통과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3기 신도시 조성과 가덕도신공항, GTX 등 국가 주요 사업이 순차적으로 착공·시공 단계에 접어들면서 향후 수년간 골재 수요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건설 물량 확대가 예고된 상황에서도 골재 품질관리 체계는 여전히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어 제도적 공백 지속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골재협회 회원사들 사이에서는 유통이력관리제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품질관리 강화와 시장 투명성 제고를 위해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시료 채취 방식의 적정성과 비용 부담, 현장 적용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골재협회 한 관계자는 “유통이력관리제 법안을 둘러싼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며 품질관리 강화를 찬성하는 측은 골재 품질 관리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하는 측은 시료 채취 방식의 적정성과 업계의 현실적인 적용 가능성 등에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유통이력관리제가 골재 품질관리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고 대응 체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입장을 견지 중이다. 골재는 콘크리트의 강도와 내구성을 좌우하는 핵심 자재인 만큼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 이력과 유통 경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불법 골재 유통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사고 발생 시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도 보다 명확히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골재자원정보시스템(AGRIS) 등 유통이력관리 시스템은 이미 구축돼 있지만 현재는 업체가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라 시행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며 "골재업체들은 유통이력관리제 도입에 따른 비용 부담이 있는 데다 관리·감독이 강화된다는 인식 때문에 제도 도입을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안이 통과되면 유통이력관리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 입장에서는 유통이력관리제가 시행되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골재의 생산·유통 경로를 역추적해 원인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책임 소재를 확인할 수 있어 관리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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