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가온전선이 새로운 방식의 자금조달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내년 시행될 토큰증권 제도를 통해 구리 등 핵심 원자재를 유동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 따르면 가온전선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토큰발행 및 토큰증권(STO) 관련 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같은 달 모회사인 LS전선도 정관 변경을 통해 같은 내용을 사업목적에 반영했다.
양사 모두 "신사업 추진 관련 사업목적 정비"라고 밝히고 있지만 최근 불거진 중복상장 논란을 의식해 새로운 자금조달 통로를 마련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는 게 업계 해석이다.
실제로 LS그룹은 지난 1월 증손회사인 에식스솔루션즈의 기업공개(IPO) 추진을 철회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중복상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이라고 지목한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오찬 자리에서도 에식스솔루션즈 사례를 직접 거론하며 문제를 제기한 게 결정적이었다.
가온전선이 지난달 15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전기동(순도 99.95% 이상의 구리)과 희토류 등 실물자산(RWA)을 기반으로 토큰증권을 발행하고 유통 플랫폼과 협업하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른 토큰증권 제도화에 맞춰, 보유 중인 핵심 원자재를 유동화해 새로운 자금조달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목적도 명시했다.
가온전선은 업종 특성상 원재료 비중이 다른 산업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주력인 전력케이블 생산을 담당하는 전력사업부의 매입액 중 전기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1분기 기준 52.2%(4058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그 비중이 53.1%(1조3370억원)이었다. 핵심 원재료인 구리 가격이 출렁이면 수익구조가 그대로 흔들리는 셈이다. 올 1분기 전기동 가격은 톤당 1953만6000원으로 지난해(1434만3000원)보다 36.2% 올랐다. 이에 회사의 연결기준 재고자산도 지난해 말 2842억원에서 올해 1분기 말 3507억원으로 늘었다.
회사는 그동안 구리 가격이 출렁일 때 손실을 줄이기 위해 선물 투자로 헤징해왔다. 다만 선물 계약을 유지하려면 현금이나 현금성 자산을 시장에 일정 기간 묶어둬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토큰증권은 이런 부담을 다소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보유 중인 구리 재고 가치를 쪼개 증권 형태로 발행하면 현금을 시장에 묶어두지 않고도 재고 자산만으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가온전선은 분기보고서에서 사업 추진 현황도 일부 공개했다. 실물자산 기반 토큰증권 발행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관련 법령과 시장 동향을 분석하고 있고, 주요 증권사 및 관련 컨소시엄과 협력 가능성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전기동과 희토류 등 사업용 재고자산을 기초로 한 구조화 모델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 상품 설계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투자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가온전선은 "토큰증권 관련 사업에 대한 추가 투자 및 예상 자금 소요액은 현재 미정"이라고 공시했다. 향후 추진계획으로는 전담조직 구성, LS그룹 계열사와의 협력 방안 모색, 사업성 검토에 따른 단계적 투자 검토 등을 제시했다. 주요 위험 요인으로 전문인력 확보, 기술적 리스크와 함께 전자증권 관련법 시행이 지연될 가능성을 꼽았다.
실제로 가온전선이 구리 재고 중 얼마까지 토큰화할 수 있을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토큰증권 제도화를 위한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개정안은 올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 내년 초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발행 한도나 기초자산 인정 범위 등을 정할 시행령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특히 투자자 입장에서는 가온전선이 구리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알아야 투자 판단이 가능한데 회사는 원자재 보유량을 영업비밀로 취급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시행령에서 '보유 재고의 몇 %까지 토큰화할 수 있다'는 기준이 정해지면 발행 규모만 보고도 회사의 실제 재고량을 역산할 수 있게 된다. 자금조달 통로를 넓히려는 회사가 그 대가로 지금까지 숨겨온 재고 정보를 시장에 내줘야 하는 딜레마에 놓일 수 있다는 얘기다.
LS전선 관계자는 "토큰증권 사업 관련 법안 세부 세칙이 어떻게 정해지고 어떤 방식으로 투자가 가능할지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면서도 "관련 내용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지 않을 경우 해당 사업을 시기에 맞춰 추진할 수 없어 미리 반영해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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