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현대차그룹의 미래 랜드마크가 2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당초 그룹의 백년대계를 이끌 단일 거점으로 서울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콤플렉스(GBC)를 점찍은 데 이어, 아들 정의선 회장이 송파구 복정역 인근에 'HMG퓨처콤플렉스' 조성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GBC가 경영과 기획을 총괄하는 전통적 헤드쿼터 역할을 수행하고, HMG퓨처콤플렉스는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등 그룹 미래를 설계하는 두뇌를 맡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이번 복정역 투자는 GBC 설계 변경에 따른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지리적 약점이던 남양연구소를 넘어 우수한 미래 인재를 적극 유치하겠다는 정 회장의 실용주의적 결단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 현대차 등 6개사, 2030년까지 7조1251억 출자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22일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 본점을 둔 HMG퓨처콤플렉스 법인 등록을 완료했다. 자본금 87억원 규모의 HMG퓨처콤플렉스는 ▲부동산 임대업 ▲사업지원 서비스업 ▲전대업 등을 주요 사업목적으로 한다. 현재 주주 구성은 ▲현대차 36.1%(초기 출자금 31억5900만원) ▲기아 29.5%(25억8400만원) ▲현대모비스 13.7%(12억200만원) ▲현대글로비스 8.4%(7억3500만원) ▲현대제철 6.5%(5억6500만원) ▲현대로템 5.8%(5억400만원)이다.
HMG퓨처콤플렉스는 이달부터 오는 2030년 12월까지 이들 6개사로부터 7조1251억원 상당의 현금을 출자 받는다. 세부적으로 현대차는 2조5727억원을 분할납입할 예정이며, 기아는 2조1050억원을 투입한다. 이어 현대모비스는 9786억원, 현대글로비스 5985억원, 현대제철 4599억원, 현대로템 4104억원의 현금을 각각 지원한다. 설립 자금에 추가 출자금까지 모두 더하면 총 8조원 상당이다.
HMG퓨처콤플렉스 이사회는 2명의 사내이사와 6명의 기타비상무이사 총 8명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감사 1인도 있다. 황기섭 대표이사와 박기영 사내이사는 현대차그룹 소속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기타비상무이사는 전원 HMG퓨처콤플렉스에 출자하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출신인데 ▲서보영 현대차 자산기획실장 ▲이강규 기아 경영지원3실장 ▲성정은 현대모비스 비즈니스지원실장 ▲박영순 현대로템 안전경영지원실장 ▲김상범 현대제철 비즈니스지원실장 ▲지동운 현대글로비스 비즈니스지원실장이다. 감사로는 현대차 재무관리실장인 김우열 상무가 이름을 올렸다.
◆ ‘랜드마크’ GBC, 110층 초고층에서 49층 3개동 설계 변경
HMG퓨처콤플렉스는 복정역 인근 약 10만㎡ 부지에 조성되는 대규모 연구개발 단지다. 지하 5층~지상 10층 규모로 건립되며 2030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한다. 현대차그룹은 HMG퓨처콤플렉스를 소프트웨어(SW) 중심 연구 거점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주목할 부분은 현대차그룹이 20년 전부터 GBC 건설을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강남 마지막 노른자 땅 위에 GBC를 짓는 상황에서 또 다시 조단위 투자를 단행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명예회장의 오랜 숙원 사업인 GBC는 2006년 현대차그룹이 뚝섬에 110층짜리 초고층 랜드마크 건설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면 위로 부상했다. 하지만 뚝섬 GBC는 2012년 무산됐다. 정 명예회장은 2년 뒤인 2014년 한국전력 삼성동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매입하도록 했으며, 2016년 서울시와 사전 협상으로 랜드마크 건설이 확정됐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GBC는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100년의 상징이자 초일류 기업 도약의 중심”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GBC가 첫 삽을 뜬 것은 2020년 5월이다. 하지만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군사 시설 이슈와 맞물리면서 사업 추진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이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설계 수정과 인허가 재정비에 나섰고, 층수를 낮추는 대신 여러 동을 짓는 쪽을 선택했다. 최종적으로는 49층 3개동으로 확정됐으며, 오피스 뿐 아니라 호텔과 공연장, 전시장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연내 건축심의를 비롯한 건축 허가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고 2031년 말 준공한다는 구상이다. GBC 입주가 본격화될 경우 현대차그룹의 경영과 기획, 글로벌 비즈니스, 대관 등을 총괄하는 헤드쿼터인 동시에 상징적인 건물로 자리 잡게 될 전망이다.
◆ 미래 모빌리티 기술 역량 결집 ‘컨트롤타워’…화학적 결합 목표
업계 안팎에서는 HMG퓨처콤플렉스 설립 배경으로 현대차그룹이 더 이상 완성차 하드웨어 제조사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을 꼽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체제로 전환된 이후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SDV 등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체질을 개선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미래 모빌리티 인력과 SW 개발 역량을 총괄하는 '핵심 컨트롤타워'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 전반에서 피지컬 AI 기술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대규모 거점 구축과 맞닿아 있다. 피지컬 AI는 물리적 하드웨어와 결합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기술을 의미한다. 현대차그룹이 단순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넘어 이를 자동차와 로봇에 완벽하게 이식하고 구동할 수 있는 대규모 물리적 연구 거점을 확보하려는 배경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발 빠른 합종연횡에 나서는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엔비디아 출신의 박민우 사장을 포티투닷과 현대차그룹 첨단차플랫폼(AVP)본부장으로 영입했다. 포티투닷은 현대차그룹의 SDV 전환을 주도하는 SW 조직이며, 현대차그룹 차세대 자율주행 AI 시스템인 아트리아 AI 개발을 맡고 있다. AVP본부는 차량 OS 통합과 자율주행 SW 구조 설계 등 플랫폼과 관련된 전반적인 영역을 총괄 중이다.
현대차그룹이 피지컬 AI 기업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새어 나온 내부 잡음과도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판교에 자리 잡은 포티투닷과 판교 테크원을 비롯해 남양연구소, 해외연구소 등에 거점을 마련한 AVP본부 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SDV 전환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여러 거점에 분산된 조직 간 소통과 역할 중첩 문제 등이 부상한 것이다. 이에 HMG퓨처콤플렉스를 건립해 분산된 인재와 조직을 한 데 모아 화학적 결합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 정의선 ‘실용주의’ 리더십…인재 유출 방어 목적도
일각에서는 HMG퓨처콤플렉스 건립이 정 회장의 실용주의 노선으로 귀결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과거 초고층 GBC 타워를 통해 현대차그룹의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마천루’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지만, 정 회장 체제에서 건물이 49층 높이로 대폭 낮아졌다. 초고층 빌딩 건립에 들어갈 막대한 공사비와 인허가 기간을 줄이는 대신, 확보된 재원과 에너지를 복정역 퓨처콤플렉스 같은 미래 핵심 기술 거점에 집중 투자하는 실용주의 전략을 택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의 인재 유출 최소화 전략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남양연구소의 경우 지리적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 데다, 과거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내부 반발이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HMG퓨처콤플렉스는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실질적인 주도권을 잡기 위한 '내실과 효율'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HMG퓨처콤플렉스는 AI, SW 중심 연구 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이라며 “다른 업무시설(GBC, 양재사옥, 강남사옥 등)과는 활용 목적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복정역 인근 지역은 교통이 우수하고 인재 확보에 유리한 우량 입지로, AI·SW 인력 수요에 대응할 뿐 아니라 연구개발(R&D) 역량 강화, 협업 시너지, 거점 운영 효율화, 비용 최적화, 건설 경기 활성화를 통한 신규 고용 창출 등의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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