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차장] 유통업계에선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진출로 인한 지역 소상공인들의 피해 사례가 심심찮게 들린다. 거대 자본을 무기로 제품 품질과 서비스 등을 내세운 '쩐의 전쟁'으로 돌입하면,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의 영세업자들은 버텨낼 재간이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경쟁을 통해 더 좋은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살아남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자본력이 뒷받침되기에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출혈 경쟁을 벌일 수 있는 대기업이 소상공인과 경쟁하는 것을 '공정'하다고 보지 않는다.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시장 경제라도 체급이 맞지 않는 기업 간, 기업 대 개인 간 경쟁은 정서적 반발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최근 은행업계에선 시중은행들의 지방 공략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영업 확대를 위한 지방 공략이 거세다는 이유에서다. 지역의 튼실한 기업들에 대한 영업 확대는 차치하고 시 금고나 지역 대학의 주거래은행 선정 경쟁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지방은행의 안방까지 엿보고 있다.

최근 광주은행 노조는 조선대학교 주거래은행 선정 탈락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했다. 50여년간 조선대학교의 주거래은행이었던 광주은행이 지난 18일 조선대학교 주거래은행 사업자 선정 공개경쟁입찰에서 탈락해서다. 

물론 공개경쟁입찰이었던 만큼 경쟁 우위에 있는 은행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일테다. 50년을 주거래은행이었다고 앞으로도 계속 주거래은행이 될 당위성은 없다. 일각에선 우는 소리 말고 경쟁력을 키우라고도 한다. 하지만 광주은행 노조는 돈의 논리로 상생과 신뢰의 관계를 저버렸다고 토로한다. 애초에 지방은행에게 불리한 경쟁 기준이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최근엔 부산시 금고 선정 경쟁에 시중은행이 참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부산은행이 긴장하고 있다. 매년 약 15조원의 예산을 굴리는 부산시 금고는 부산은행이 22년간 독점하고 있다. 광주은행이 조선대 주거래은행 선정에 50여년만에 탈락하면서 부산은행의 부산시 금고 선정 경쟁에 대한 불안 강도가 더 높아지는 모양새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체급 차이가 크다 보니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방은행이 시중은행처럼 공격적인 혜택을 제공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시중은행은 지역 인재 채용, 이익 지역 재투자를 통한 자금 순환, 지역 경제 활성화 등 측면에선 지역에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금고와 지역대학의 주거래 은행을 유지하는 것은 지방은행의 입지는 물론, 지역을 대표하는 은행이라는 상징성과도 직결된다. 단순 은행 거래처의 상실이 아닌 지방금융 생태계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나오는 이유다. 

빈대인 BNK금융그룹 회장은 금융당국과 각 금융지주 회장이 모인 간담회에서 "지방은행의 어려움을 고려해 달라"라며 시중은행의 공격적인 지방 공략에 대해 이례적인 하소연을 펼치기도 했다. 

격투기 스포츠에서는 맞붙는 상대와 공정한 대결을 위한 기본 장치로 체급을 나눠 놨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신체적 조건 상 경량급 선수가 중량급 선수를 이기기 힘들어서다. 이는 경기를 위해 뼈를 깎는 훈련을 하는 선수들에게 최소한의 공정한 환경을 만듦으로써, 들인 노력이 단순 신체적 우월함에 빛이 바래지 않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기도 하다. 

은행권에서도 공정경쟁은 물론, 지역금융 보호를 위한 금융당국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