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부장 2세 경영 '기업가 정신' 답하라
승계 작업 구상에 앞서 오너2세 자격부터 증명해야
이 기사는 2025년 04월 04일 08시 3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진=뉴스1)


[신지하] "기업가정신이 뭔지 서술하시오."


학창 시절, 한 교양 수업에서 접한 주관식 문제다. 무엇을 물어보는지는 이해했지만 정작 펜으로 답을 작성하려니 막막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성공에 대한 열망'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주주들에게 더 큰 이익을 주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위험도 감수하는 게 기업가의 역할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최근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계에서 2세 경영 체제가 본격화하고 있다. 창업 1세대가 일군 기업을 자녀 세대가 이어받고 있는 흐름이다. 경영 효율화나 세대 간 분업이라는 설명이 따르지만 시장은 사실상 승계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연스럽게 과거 마주했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경영권을 물려받는 이들은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달 황철주 회장의 외아들 황은석 미래전략실장(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지난해 지주사 전환을 시도했다가 주주 반대로 무산되자 비교적 조심스러운 접근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마이크론도 지주사 전환 작업에 착수했다. 창업주 최창호 회장의 아들 최한수 하나머티리얼즈 경영지원실장(부사장)이 후계 구도의 중심에 서 있다. 원익그룹은 지난해 이용한 창업회장의 세 자녀(이규엽·이규민·이민경))를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정비했다. '이 회장 일가→호라이즌→원익(지주사)→원익홀딩스(중간 지주사)→계열사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추며 사실상 2세 체제를 출범시켰다.


겉으로 드러난 승계 작업만 놓고 보면 흐름은 매끄러워 보인다. 하지만 어딘가 알맹이가 빠진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시장이 기대하는 건 단순한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 맞는 책임과 판단력이다. 특히 기술 변화와 공급망 불확실성이 반복되는 소부장 업계에서는 숫자를 관리하는 능력보다 위기 속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끝까지 감당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주주들이 승계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단순한 지분 이동 때문이 아니다. 후계자가 경영자로서 신뢰받을 수 있느냐는 본질적인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승계의 완성은 자리를 넘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생각과 태도로 그 자리를 책임지는지 더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노동, 자본, 토지와 함께 기업가정신은 생산의 4대 요소로 꼽힌다. 아무리 많은 자원이 있어도 그것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없다면 생산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업가정신은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기회를 포착해 실현하는 태도이자 판단력이다. 경영권은 물려줄 수 있지만 기업가정신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승계를 말하기에 앞서 2세 스스로가 기업가정신에 먼저 답해야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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