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중견·중소 소부장들이 글로벌 업체와 경쟁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 단계 앞서 나갈 기회를 놓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부장들이 경쟁할 수 있게 정부가 힘을 불어넣어 줘야 할 때 입니다."(A 반도체 소부장 업체 관계자)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이 정부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 정책에도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중소·중견기업들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기술 개발에 대한 공격적인 자금 투자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 불리는 반도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국가 간 총력전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고, 경쟁국들이 거액의 보조금을 쏟아붓는 가운데 한국도 세제 혜택, 투자 등에 나섰지만 아직은 미흡하다는 평가다.
국회와 정부는 최근 반도체 지원에 드라이브를 걸고 여러 법안과 지원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중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 K칩스법은 반도체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R&D) 세액공제비율을 5%p 올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각종 규제 완화 등 반도체 산업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특별법'도 발의됐지만 주52 시간 근무 예외를 두고 여야 입장이 갈리며 공전 중이다. 그 외 정부는 올해 ▲17조원의 반도체 저리 대출 프로그램 ▲반도체 생태계 펀드 규모 확대 ▲2027년까지 5조원 재정 지원 등 지원 정책도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정책이 소부장 업체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중소·중견기업들의 경우 매출액 대비 R&D 비용 비중이 높은 만큼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한투자증권 이재원 연구원은 K칩스법에 대해 "세제 혜택으로 절약된 법인세 비용으로 현금 흐름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현금흐름 확보는 기업 입장에서 활용 방안을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 증가로 이어진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근간이라 불리는 소부장 업체들은 추가적인 지원이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첫 지원의 시작으로는 괜찮지만 다른 경쟁국과 비교했을 때 좀 더 직접적인 투자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소부장 A업체 관계자는 "현재도 세액 공제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추가로 혜택이 주어진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실질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좋은 중소기업이 많은데 특별한 기술에 대해서만 투자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 가능성은 있지만 조명 받지 못한 기업들도 기술적으로 잘 검토해 지원한다면 생태계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반도체 소부장 B업체 관계자도 "세제 혜택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글로벌 업체와 경쟁하려면 시장에서 이길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며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초기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세제 혜택만으로는 개발 비용을 보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 투자 등 경쟁국의 사례를 설명하며 정부가 공격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지난 2014년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현재까지 6869억위안(135조3467억원)의 거금을 투입한 '빅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도 반도체 강국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오는 2030년까지 10조엔(90조881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은 칩스법을 통해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 390억달러(55조6881억원)과 R&D 지원에 132억달러(18조8509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B업체 관계자는 "중국은 지난해까지 D램을 생산하다 올해 AI 반도체를 출시했다. 1년 만에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의 전폭적인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도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부족하다. 일본, 중국에서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면 우리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역으로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에 투자한다고 해서 일본·중국이 긴장할 것 같은가. 세금 혜택 말고도 비용적인 측면이 지원돼야 한다"고 했다.
A업체 관계자도 "중국이 우리나라 뒤를 쫓아오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중국이 수백조원을 투입하며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중국은 예를 들어 장비 한 대를 팔아도 정부에서 지원금을 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독자 생존해야 한다. 영업이익도 신경 쓰면서 기술 개발도 해야 하기에 중소·중견기업들이 힘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단순히 소부장 업체에 수혜를 주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인재·기술 유출도 방지할 수 있다고도 했다. B업체 관계자는 "능력 있는 개인이 기술 개발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중소기업 입장에선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면 거절할 수밖에 없다. 그럼 자금력이 있는 해외 업체로 기술·인재가 유출된다"며 "정부가 지원하면 중소기업도 글로벌 업체와 싸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작은 기업도 세계 시장에서 싸우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우수한 인재도 유입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첫 단추로 세제 혜택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정부가 이걸로 자기만족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중소·중견 소부장 업체의 희망 사항과 수요를 잘 파악해 앞으로의 방향성을 잘 결정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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