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검찰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5년을 구형한 데 대해 무리수를 던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다만 재계에서는 검찰이 새로운 증거나 법리적 근거가 추가된 것이 없다보니 1심과 동일한 구형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최근 삼성은 사법리스크의 누적된 피로로 인해 조직 내부적으로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온 사건을 검찰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무리하게 항소하면서 삼성이 과도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는 25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회장의 항소심 결심공판 기일을 열었다. 검찰은 1심 구형과 같은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삼성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부당 합병을 추진하고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4조5436억원 규모 분식회계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 19개에 달한다.
1심 재판부는 올해 2월 이 회장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합병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만을 목적으로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당시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산정돼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항소심에서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판단이 쟁점이다. 지난 8월 서울행정법원은 금융당국의 삼성바이오 징계가 정당했는지 여부를 심리하면서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했다'는 취지로 사실상 부정 회계 처리가 일부 있었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검찰도 1심 결과를 뒤집기 위해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 등을 토대로 분식회계 혐의 입증에 총력을 기울이며 증거 2000여개를 새로 제출하기도 했다. 검찰은 최종 의견진술에서 "피고인들은 이재용의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고 정보 비대칭상황 악용했다"면서 "피고인들이 훼손한 것은 우리 경제 정의와 자본시장 근간을 이루는 헌법적 가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재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이번 항소심에 대해 검찰이 추가 증거나 근거가 없이 1심 패소로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무리한 항소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죄를 입증하는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면 1심의 무죄를 뒤집기는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검찰이 추가적으로 찾아낸 게 없어 구형을 더 늘리지 못하고 동일 형량을 내세웠고 1심 때 주장과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명지대 명예교수)는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를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면서 "애초에 완패한 재판이었고, 항소를 할 게 아니었는데, 명분상 물러날 수 없다는 조직 논리가 검찰을 항소로 몰아세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검찰이 재판을 길게 끌어오면서 삼성전자가 초격차 경쟁력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반도체 사업 부진과 주가 하락 등의 악영향을 받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020년 9월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시작해 햇수로 9년째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이 회장은 2021년 4월부터 총 106회 열린 1심 공판에 대통령 해외 순방 동행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총 96번 출석했다. 재계에서는 최근 삼성전자의 위기론이 나오는 상황이 장기화된 재판 상황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실제 삼성은 연말 사장단 인사가 예정돼 있지만 사법리스크로 인해 제대로 된 쇄신 인사를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최근 반도체 경쟁력 약화 등으로 인해 대대적인 쇄신 인사가 요구되고 있지만 사법 리스크로 인해 인사 폭이 크지 않을 가능성도 나온다. 게다가 사법리스크로 인한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와 그룹 컨트롤타워 재건 등도 미뤄지고 있다. 이 회장은 2022년 정부가 광복절 특별사면에서 복권된 뒤에도 이사회 복귀를 못하고 있다. 5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 임원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반도체지원법(칩스법) 축소·폐지 등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이 회장이 직접 대응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이 회장이 또 다시 사법리스크에 묶일 경우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인한 기업 악화는 국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레거시 반도체는 이미 중국이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어 턱밑까지 쫓아왔고, 대만 TSMC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며 "대대적인 인사혁신과 조직개편을 하고 싶어도 사법리스크로 인해 이재용 회장의 경영 보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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