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딜레마SK해운 M&A…'독 든 성배' 되나
산업은행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골자로 하는 HMM의 민영화 작업이 시계제로에 빠진 양상이다. 대주주인 산은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 했던 3조2800억원 규모의 영구채 전량을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매수 부담을 키웠다. 그렇지 않아도 난항에 빠진 유력 원매자 물색이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여기에 자사주 소각을 통한 밸류업과 SK해운 인수까지 추진되면서 HMM의 몸값을 부채질하고 있다. 2023년 7월 HMM 경영권 매각의 포문을 연 뒤 2년째 답보 상태에 빠져있는 HMM 새 주인 찾기의 해법을 모색해 본다.

[딜사이트 범찬희 기자] HMM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SK해운의 일부 사업부 인수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SK해운 M&A(인수합병)를 통해 컨테이너 부문에 편중돼 있는 포트폴리오를 다각화 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지만, 자칫 HMM의 몸값 상승을 부추기는 재료가 돼 원매자 물색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HMM은 최근 SK해운의 적정 가격을 매기기 위한 실사(Due Diligence·듀딜리전스)를 마쳤다. 당초 HMM은 이달 안으로 SK해운 인수를 매듭지을 예정이었지만, CEO 교체(김경배→ 최원혁) 등 내부 사정으로 인해 스케줄에 변동이 생겼다. 업계에서는 수개월 안으로 2조원대로 추정되는 SK해운 인수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고 있다.
SK해운 M&A는 현 최대주주인 한앤코(한앤코탱커홀딩스·71.43%)가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막이 올랐다. 한앤코는 2018년 12월 1조5000억원을 투자해 SK그룹으로부터 SK해운 경영권을 확보했다.
당시 한앤코는 SK해운이 실시한 3자 배정 유상증자 1조원을 태웠고, 5000억원 어치의 CB(전환사채)도 사들였다. SK그룹은 해운업 불황 여파로 SK해운 부채비율이 2540%에 달하는 등 재무구조가 악화되자 PE(사모펀드)인 한앤코에 경영권을 넘겼다. 현재도 SK그룹의 지주사인 SK(주)가 SK해운 지분 16.35% 보유한 2대 주주에 올라있다.
한앤코 체제에서 SK해운은 환골탈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1조6000억원 수준이던 매출 규모는 지난해 2조원에 근접했고, 영업이익은 700억원대에서 4000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개선됐다. 같은 기간 EBITDA(상각전영업이익)는 2000억원에서 6000억원 규모로 성장했고, 순이익은 흑자로 돌아섰다.
SK해운 재무 악화를 불러온 원인으로 지목된 스팟(Spot·비정기적인 단기 운송계약) 영업을 줄이고, 우량 화주와의 장기운송계약 위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한 덕분이라는 평가다. 실제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SK해운 매출에서 장기계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44.7%에서 지난해 3분기 69.7%로 증가했다.

한앤코는 PE의 통상적인 투자 기간인 5년이 지난 데다 SK해운의 경영이 정상화 반열에 올랐다고 보고 엑시트에 착수했다. 지난 2월 LNG(액화천연가스)를 제외한 SK해운의 일부 사업권(벌크·탱커·LPG 등)을 사들일 수 있는 우선협상대상권을 HMM에 부여했다. 이번 M&A가 통매각이 아닌 분리매각의 방식을 띈 것은 HMM이 당분간 LNG 사업에 몸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HMM은 2015년 IMM PE에 LNG 사업을 매각하면서 2029년까지 동종 비즈니스를 영위하지 않는다는 경업금지 조항을 체결했다.
HMM은 SK해운 인수를 통해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HMM은 연매출의 87%가 컨테이너에서 창출될 만큼 포트폴리오가 불균형하다. 이를 해소하고자 현재 40여척 수준인 벌크선 규모를 2030년까지 110척으로 늘리고, 관련 매출도 1조원에서 3조원으로 불리겠다는 전략이다. SK해운 M&A 결과에 HMM의 중장기 목표 달성 여부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비(非)컨테이너 부문을 키워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확보한다는 HMM의 구상이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SK해운 인수가 시장에 호재로 작용해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여지가 다분하다는 점에서다. 주당 가격이 오르면 향후 원매자가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HMM 지분 71.69%(7억3479만156주)를 사들이는 데 더 많은 값을 지불해야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4년 새 3조2800억원 규모의 영구채가 전량 주식으로 전환되면서 산은과 해진공의 HMM 주식 보유분이 6억주 이상 늘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주가마저 오르면 HMM 경영권 확보를 위해 지급해야 할 액수가 10조원을 훌쩍 넘어서 원매자 물색이 더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HMM은 SK해운 인수가 주가를 부양 시킬 땔감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으로 인해 중국 쪽 물동량 감소가 예상되고 있어 올해 해운 시장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며 "올해 초 SK해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때도 주가는 큰 변동이 없었던 만큼 실제 인수가 결정된다 하더라도 다이나믹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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