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최령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미국발 '관세 폭탄' 속에서 일단 한숨을 돌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공식화했지만 자국민 피해 등을 고려해 의약품은 최종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다만 향후 국가별·품목별 관세가 별도로 부과될 가능성도 남아 있어 업계 전반의 긴장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3일(한국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 연설을 통해 '미국 해방일'을 선언하고 주요 교역국에 상호관세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기본 수입품에는 10%의 관세를 매기고 한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는 25%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는 상대국이 미국산 제품에 매기는 관세율만큼 동일하게 적용하겠다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조치다.
다만 철강·알루미늄, 구리, 반도체, 목재, 금괴, 특정광물과 함께 의약품은 관세 면제 품목으로 명시했다. 이에 따라 한국산 의약품은 기존 조건대로 미국 수출이 가능하게 됐다.
업계는 의약품이 공중 보건과 직결된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실제 백악관은 "공중보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필수 의약품과 의료 물품은 관세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그간 미국바이오협회 등은 의약품에 고율의 관세를 적용하면 자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점을 지속 강조해왔다. 특히 의약품에 대한 고율 관세가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이는 미국 내 다수 제약사가 해외에서 원료의약품(API)을 들여와 완제의약품(DP)으로 가공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가 부과되면 제조 원가가 급등하고 이는 곧 약가 인상과 공급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구조적 한계를 인식한 미국 제약업계는 생산 전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단계적 관세(phased tariff)' 적용을 트럼프 행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미국 제약협회는 제조시설 이전에 최소 5~10년, 최대 20억달러가 소요된다며 점진적 인상을 제안했고 업계는 초기 관세율이 25%보다는 낮게 시작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내비치고 있다.
다만 미국 행정 절차상 대중 의견 수렴 등 시간이 필요한 법적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실제 시행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한 기조를 여전히 유지 중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일라이 릴리, 화이자, 머크(MSD) 등 미국 주요 제약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해외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이전하라고 직접 압박했다.
이에 일부 제약사들은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 확대를 밝히기도 했다. 일라이 릴리는 270억달러를 투입해 공장 4곳 신설을 예고했고 머크와 J&J도 각각 10억달러, 55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발표했다.
국내 제약사들 역시 대응 전략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셀트리온은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만큼 관세 부과 전 9개월치 재고를 미리 이전해 관세 부담을 줄였다. 동시에 미국 내 위탁생산(CMO)을 확대하고 관세가 상대적으로 낮은 원료의약품 수출 비중을 늘려 리스크를 분산한다는 전략이다. 또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대응해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연달아 단행하며 밸류업 프로그램 실행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SK바이오팜도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매출 비중이 전체의 80%에 달하는 만큼 캐나다 CMO를 유지하면서 미국 내 생산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단기 영향을 줄이기 위해 6개월치 제품을 사전에 확보한 상태다.
시장 한 관계자는 "당장은 공중 보건이라는 이유로 면제됐지만 향후 미국 내 생산 요구 강화나 품목별 관세 부과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대미 수출 전략 전반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도 "의약품에 추가 관세가 적용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며 "원료의약품(API)과 완제의약품을 구분해 적용하거나 일괄 부과될 가능성 모두를 염두에 두고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관세가 실제로 부과된다면 미국 내 공장 설립이나 위탁생산(CMO)을 통한 현지 생산이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며 "국가별로 의약품 관세가 차등 적용될 경우 한국이 경쟁국에 비해 유리하거나 불리해질 수 있는 만큼 최종 조치가 나오는 대로 전략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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