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최유라 기자] 삼성중공업과 러시아 대형 조선사 즈베즈다조선의 4조8000억원 규모 건조계약이 해지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즈베즈다조선과 자금거래가 불가능해진 만큼 건조계약을 이행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향후 계약 해지시 러시아발 불확실성은 해소되겠지만 당초 기대했던 매출액이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3일 삼성중공업은 전날 공시를 통해 즈베즈다조선소로부터 선박 총 17척에 대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앞서 이 회사는 2020년과 2021년 즈베즈다조선과 4조8525억원 규모의 쇄빙액화천연가스(LNG)선 10척, 셔틀탱커 7척에 대한 블록 및 기자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한국 정부의 러시아 제재 및 수출 통제 조치가 시행됐다. 즈베즈다조선이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특별지정제재 대상(SDN)에 오르면서 건조일정이 꼬이기 시작한다. SDN에 오를 경우 해당 기업의 모든 자산은 동결되고 외국과의 거래도 금지되는 까닭이다.
결국 삼성중공업은 즈베즈다조선에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통지 후 작업을 중단했다. 불가항력 통지는 조선소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납기를 맞추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한 면책조항이다. 이 조항은 일반적인 계약에 들어가는 것으로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계약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사유로 계약을 이행할 수 없으면 요청한다.
하지만 즈베즈다조선이 삼성중공업의 계약불이행을 주장하며 17척에 대한 선수금 8억달러(1조1000억원)와 지연이자 지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 삼성중공업은 외부요인에 의한 불가항력으로 공정을 중단했던 만큼 선수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이번 다툼은 싱가포르 중재법원의 손에 넘어간다. 계약해지의 위법성과 반환 범위 등을 다툴 예정이다. 앞으로 러시아 즈베즈다조선과 긴 법적다툼이 예상되지만 삼성중공업은 의외로 덤덤한 분위기다. 일찍이 러시아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건조슬롯(도크)을 채웠기 때문이다. 5월 말 기준 수주잔고(남은 건조량)는 330억달러다. 즈베즈다조선 물량을 제외해도 일감부족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업계에선 법원 판단에 따라 향후 삼성중공업에 미칠 파장을 주목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이긴다면 재무제표상 부채로 반영된 선수금은 매출로 발생하게 된다. 반면 극단적인 예긴 하지만 즈베즈다조선의 손을 들어주면 삼성중공업은 선수금 1조원에 이자까지 얹어 돌려줘야 하기에 상환부담을 갖게 된다.
나아가 대규모 신조선 계약해지로 기대 매출이 사라지는 것도 아쉬움이 남는다. 삼성중공업의 올해 1분기 매출은 2조3218억원이다. 즈베즈다조선과의 계약금이 4조8000억원에 달했던 점을 고려하면 중장기적 매출 성장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셈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러시아 일감이 없어도 도크 일정을 채울 수 있도록 건조 일감을 확보한 상태"라며 "향후 계약이 해지되면 전체 수주잔량이 줄어들 수 있지만 건조도크 일정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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