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반도체TC 본더 '공급망 다변화'에도 매출 1조 기대

[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한미반도체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용 '열압착(TC) 본더' 장비 시장에서 주요 고객들의 공급망 다변화 기조에도 오히려 제품 경쟁력으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 전망이다. 올해 생산 캐파(CAPA)는 월 22대에서 내년에는 35대까지 확대해 2025년 연 매출 1조원 달성이 기대된다.
반면 삼성전자는 원가절감을 통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자회사인 세메스를 통해 장비 납품을 받아왔지만 경쟁력 강화에는 발목을 잡히는 모양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장비가 아니라 자회사 장비를 쓰다 보니 HBM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고, 세메스 역시 삼성전자라는 안정적인 고객사를 두고 있어 핵심 장비 R&D에서도 주춤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다.
다올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한미반도체의 매출은 5534억원으로 전년 대비 238%, 영업이익은 2341억원으로 57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나아가 2025년 역시 매출은 8235억원, 영업이익은 4017억원으로 올해보다 각각 49%, 72%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 최근 SK하이닉스로부터 1500억원 규모의 HBM용 3세대 하이퍼 모델 듀얼 TC 본더 그리핀을 수주하면서 일부 증권사에서는 내년도 한미반도체의 매출이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 중이다. 아울러 내년엔 미국 마이크론의 공격적인 설비 확장으로 인해 추가 수주도 기대된다. 앞서 한미반도체는 지난 4월 11일 마이크론으로부터 226억원 규모의 듀얼 TC 본더 타이거 공급 계약을 공시한 바 있다. 마이크론의 HBM 점유율 확대에 따라 한미반도체의 수혜 강도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곽민정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대만 컴퓨텍스 2024에서 밝혔듯 차세대 GPU인 루빈과 루빈울트라 칩의 HBM 탑재 수량을 늘릴 예정"이라며 "HBM은 궁극적으로 커스텀 칩으로 발전함에 따라, SK로드맵에 맞춰 한미반도체의 듀얼 TC 본더에 대한 기술적 우위와 신규 장비의 지속적인 출시를 바탕으로 한 수주는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최근 TC 본더 장비 시장을 두고 국내 1위 한미반도체의 아성을 넘기 위해 한화정밀기계, 세메스 등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SK하이닉스가 한미반도체와 함께 HBM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가지고 있지만, 한미반도체가 마이크론에도 장비를 납품하기로 하면서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장비 공급사 다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경쟁사들이 한미반도체의 기술력을 따라잡긴 힘들다. 한미반도체는 TC본더에 앞서 플립칩 본더(Flip-Chip Bonder)를 개발했다. 기존에는 본딩 웨이퍼를 서브스트레이트(substrate) 기판에 붙일 때 전선과 같은 골드와이어를 가지고 본딩을 했다. 하지만 플립칩 본더는 와이어를 쓰지 않고 솔더볼 범핑 기법을 사용해 직접 웨이퍼에 칩을 부착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한 단계 진화한 방식이 TC본더다. TC본더는 열과 압력을 이용해 칩을 적층하고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장비다. 식각 공정에서 TSV를 뚫으면 TC본더는 형성된 TSV를 통해 칩을 적층하고 연결한다. 하이브리드 본더로 진화하면 인풋과 아웃풋의 단차를 없애고 HBM의 높이를 낮추는 식으로 프로세스가 진화된다. 한미반도체는 2008~2009년부터 R&D 투자를 통해 장비를 연구했고 2013년에 플립칩 본더를 출시했으며 현재의 TC본더 장비까지 개발했다.
반면 한화정밀기계는 본딩이 아닌 칩 마운트(칩을 붙이는 설비)를 주력으로 하던 회사다. 마운트는 단순하게 한층씩 칩을 덮는 형식이라면 TC본딩은 아파트처럼 단층을 높이는 방식이다. 예컨대 HBM 16단을 만들 경우 TC본딩은 겹겹이 아파트처럼 단층을 높여 아파트 16층을 만드는 형식이라면 마운트는 미국에서 볼 수 있는 넓은 단독주택을 위로 하나씩 쌓는 형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정밀기계는 SMT(표면실장기술), 마운트를 하던 회사인데 짧은 시간 안에 갑자기 완성도 높은 본딩 장비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면서 "정밀도나 생산성 면에서 한미반도체 장비를 능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딩 장비는 365일 24시간 돌아가는데 복합기 팩스처럼 글자가 퍼지지 않고 정확하게 초당 몇 장씩 나오는 방식과 같이 제품을 균일하게 생산해야 된다"며 "HBM이 8단 16단까지 적층이 올라가면 이를 견뎌낼 수 있는 내구성을 가진 장비를 만드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세메스는 HBM 제조에 필요한 차세대 TC 본더 개발해 양산 중이라고 밝혔다. 세메스 관계자는 "마이크로 범프(돌기)가 증가하고 있는 HBM 트렌드에 대응할 성능을 갖췄다"고 말했다.
세메스 측은 본딩 과정에서 위치 정렬과 열, 압력 조정 등을 통해 높은 적층 정밀도를 구현했다고 전했다. 나아가 비전도성 절연 필름(NCF) 공법으로 제작되는 HBM에 최적화한 공법을 적용해 생산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세메스는 TC 본더로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엔 2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6세대 HBM 제품인 HBM4 이후의 초미세 공정에 대비해, 별도의 연결 단자 없이 칩을 쌓는 하이브리드 본더도 개발해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측은 일본 신카와, 세메스 등으로부터 TC본더를 조달해왔는데, 한미반도체 장비 도입을 검토하다가 이번 소식을 계기로 세메스 비중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갑자기 한화정밀기계가 SK하이닉스에 TC본더 장비를 납품한다는 소식이 나오자 세메스도 갑자기 차세대 TC본더 양산 소식을 알린 것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세메스는 1993년 삼성전자와 일본 다이니폰스크린(DNS)이 합작해 만든 한국DNS가 전신이다. 2005년 세메스로 사명이 변경됐다고 당시 DNS의 지분 전량을 삼성전자가 인수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세메스 지분 91.54%를 보유 중이다.
삼성전자는 세메스를 인수할 당시 외산 장비 의존도를 낮추고 장비 공급 및 유지보수 등을 맡겨 원가를 절감할 계획으로 자회사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오히려 2012년 한미반도체의 '쏘잉&플레이스먼트(Sawing & Placement)'에 적용된 핵심 기술을 무단 사용하면서 특허침해 소송을 당했다. 기존 장비 협력사의 노하우를 세메스에 넘기면서 자체적으로 장비를 만들어 원가를 낮추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에 최근 HBM에서 밀리는 것도 현재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성능과 안정성, 효율성이 좋은 장비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원가 절감을 위해 기술력이 부족한 세메스 장비를 고집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어드밴스드 MR-MUF와 NCF 방식이 모두 적용 가능 한미반도체 장비를 사용하기로 하면서 HBM 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크다"며 "마이크론이 삼성전자보다 먼저 엔비디아의 퀄 통과에 성공해 HBM 시장 확대에 나선다면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충격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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