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좋은 주주와 나쁜 주주
행동주의펀드 주주제안 빗발…주주환원-투자재원 균형 찾아야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6일 08시 48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처=픽사베이)


[딜사이트 이진철 부국장] 2000년대 중반 외국계 헤지펀드의 경영권 공격으로 곤욕을 치른 한 대기업 총수는 "좋은 주주와 나쁜 주주가 있다"는 표현으로 주주라고 해서 요구사항을 모두 관철시킬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 


당시 또 다른 대기업은 외국인 주주가 지분을 샀다는 소식에 "드디어 우리도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했다"고 쾌재를 불렀다. 증시에서 큰 손인 기관·외국인의 대규모 자금이 장기 투자되면 기업의 저평가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해서다. 하지만 그 외국인 주주가 다름아닌 해외에서도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외국계 헤지펀드라는 말에 아연실색했다는 코믹과 허풍을 섞은 일화가 회자되기도 했다.


12월 결산법인의 3월 정기주총 시즌을 앞두고 기업들의 주주환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올해는 정부의 상장사 저평가 해소 대책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맞물려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환원 확대 공세도 본격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외국계 헤지펀드가 주주행동주의를 주도했다면 이제는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주주환원에 적극적으로 제목소리를 내는 분위기다. 외국계 헤지펀드와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면 기업은 애국심에 호소하며 여론전에 나섰던 시절도 있었다. 주가만 올려놓고 보유 지분을 팔아 차익실현에 나서고 경영권 방어에 온힘을 쏟았던 기업과 일반주주들은 후유증이 만만치 않아서였다.


하지만 요즘은 주주환원 공세로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얻어내 주총에서 이사 선임 및 정관 변경 등의 안건에서 표 대결까지 벌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높아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았던 배당확대나 이사 선임 등의 주주제안을 통해 기업의 변화를 주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과거 단기 시세차익만을 노린 외국계 헤지펀드와 달리 요즘 행동주의 펀드들은 2년 이상 투자를 통해 주총 시즌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주주제안에 나서고 있다.  


그래서인지 주주제안을 받은 기업들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태광산업을 비롯해 삼성물산, KT&G, 삼양그룹, 현대엘리베이터 등은 매년 주총 시즌이 다가오면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환원 확대 요구를 받는 단골 기업들로 꼽힌다. 기업 입장에서는 주주환원 요구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이유로 인색한 주주환원이 꼽히고 있다. 반면 과도한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투자재원을 소진해 미래 성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한 국내 기관투자가와 동학개미 운동으로 소액주주가 늘어나면서 앞으로 주주환원 확대 요구는 지속될 전망이다. 여기에 투명한 지배구조와 경영 감시에 대한 주주들의 역할론도 강조된다. 올해 주총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주주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면 내년 똑같은 주주제안이 연례행사화 되란 법이 없지 않다. 


단기 주가상승과 과도한 배당으로 기업의 미래 투자가 차질을 빚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배를 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주환원은 끊길 수 있다. 그럼에도 주주환원에 인색했던 기업의 인식변화를 이끌어내면서 향후 기업가치 제고가 이뤄질 수 있도록 주주권리의 적극적인 행사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결국 주주환원과 투자재원의 적절한 조화와 합의점을 찾는 노력은 기업의 밸류업을 위해 필요하다. 주식투자의 본래 목적이 수익실현이라는 점에서 좋은 주주와 나쁜 주주의 차이는 백지장 한장 차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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