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산업1부 부장] 세계 인공지능(AI) 패권을 주도하는 미국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역설적으로 전력망이었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이를 가동할 전력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의 위기가 한국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9월29일 뉴욕 맨해튼에서 딜사이트와 글로벌 로펌 메이어브라운이 공동 개최한 '한미 전력망 뉴욕포럼'은 이러한 가능성과 현실의 장벽을 동시에 확인한 자리였다. 미국은 노후화된 송전망과 발전설비 부족, 인허가 문제 등으로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이 잇따라 지연되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AI 반도체를 확보하더라도 전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이는 한국 기업들에 기회다. 한국전력의 초고압 송전망 기술과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등 국내 기업들의 전력기기 경쟁력은 미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산이다. 조선과 원전,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까지 협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이번 뉴욕 포럼에서는 글로벌 대체투자 운용사 아폴로 글로벌매니지먼트와 효성중공업, 삼성중공업 간 블라인드 미팅도 이뤄졌다. 세계적인 금융자본과 한국 제조기업들이 직접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구체적인 사업 성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기술과 자본을 연결하는 새로운 협력의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다.
다만 기회만큼 현실의 장벽도 높다. 미국은 한국 기업들의 투자와 기술을 원하지만 현지 진출 여건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공장을 건설하고 설비를 설치할 전문 기술인력의 비자 문제조차 원활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대미투자 역시 이런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한미 간 합의된 3500억달러(487조원) 규모의 투자가 미국의 AI·에너지 인프라 확충에 기여하는 것은 분명한 기회다. 하지만 투자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기업이 얼마나 많은 사업을 수주하고, 실질적인 수익을 확보하느냐다.
미국의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과 까다로운 인허가, 비자 문제는 투자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정부는 대미투자가 일방적인 자금 공급에 그치지 않도록 한국 기업의 사업 참여와 안정적인 투자 환경을 확보하는 데 협상력을 집중해야 한다.
이번 뉴욕 포럼은 딜사이트에도 의미있는 도전이었다. 산업의 변화를 전달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 기업과 미국의 투자자들이 직접 만나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다. 만남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성과일 것이다.
뉴욕에서 확인한 것은 K-전력의 경쟁력과 가능성이었다. 동시에 뛰어난 기술만으로 글로벌 시장을 차지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이었다. 미국은 한국의 자본과 기술을 원한다. 이제 한국도 그에 상응하는 사업 기회와 정당한 수익, 안정적인 투자 환경을 요구해야 한다. 확정된 영수증 없이 무리한 청구서를 들이대는 미국에게 모든 것을 내주다가는 자칫 기업 자체가 한번에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이 크다.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를 살려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지원과 외교도 반드시 필요하다.
대미투자의 성공은 약속한 금액이 아니라 한국 산업에 돌아오는 실질적인 성과로 평가 받아야 한다. 뉴욕에서 시작된 한미 전력망 협력이 단순한 교류를 넘어 한국 기업들의 새로운 성장 기회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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