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우찬 기자] 9월29일 오전 미국 뉴욕 맨해튼 6번가에 있는 메이어브라운 사무실. 평소 금융·법률 관계자들이 오가는 공간에 이날은 전력, 원자력을 비롯한 한국 에너지 산업 관계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메이어브라운 사무실이 속한 빌딩 ‘1221 Avenue of the Americas’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통해 잘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날은 국내 에너지 산업 리더와 미국 주요 에너지 기업 전문가들이 주름잡은 공간으로 변모했다.
한국전력과 한전KPS를 비롯해 두산에너빌리티, 삼성중공업,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LS전선, 대한전선,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주요 기업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투자공사와 IMM 크레딧앤솔루션, 스카이레이크PE 등 금융권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미국 쪽에서도 PSEG,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테라파워, 오펜하이머에너지, 블랙스톤, 아크 클린 테크놀로지스 등 에너지·금융업계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딜사이트와 메이어브라운이 공동 주최한 ‘2026 딜사이트 한-미 전력망 뉴욕포럼(MAEGA in NY)’은 100여명의 국내외 에너지 리더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인공지능(AI)이 낳은 전력 슈퍼사이클과 전력망을 주제로 한미 에너지산업의 협업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비교적 선명했다. AI 데이터센터가 전력을 빨아들이고 있지만 미국 전력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술력과 신뢰관계로 무장한 한국 기업이 미국 전력망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다는 데 많은 참석자들은 동의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11시30분까지 전력망, AI 인프라,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에너지의 세 그룹으로 나뉘어 비공개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됐다.
오후 공개 세션에 들어서자 참석자들의 관심은 더욱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1세션에서는 PSEG와 한국전력이 미국 전력망의 병목을 짚었고 LS일렉트릭과 대한전선은 한국 기업의 공급 역량을 소개했다.
2세션에서는 삼성중공업이 차세대 AI 전력 인프라로 주목받는 부유식 데이터센터(FDC)를 소개하며 참석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한전KPS는 원전 수출과 운영, 유지보수 역량을 드러냈다.
실제 참석자들의 면면도 이를 보여줬다. 발전부터 송전·배전, 전력기기, 원전, 배터리, 데이터센터, 금융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관계자들이 한 공간에 모였다.
과거 미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관심사가 수주에 있었다면 이날 대화의 온도는 조금 달랐다. 미국이 원하는 속도를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맞출 수 있는지, 현지 생산과 인력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등 더욱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오후 세 번째 세션에서는 분위기가 금융시장 쪽으로 옮겨갔다. 열띤 토론도 벌어졌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브래드 피어스타인 파트너는 기가와트급 AI 데이터센터 하나를 짓는 데 수백억달러가 들어갈 수 있다며 막대한 자금 수요를 설명했다. GPU를 하나의 금융자산으로 만들어 자금을 끌어들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앉은 제조업계의 고민은 달랐다. HD현대일렉트릭의 강성수 미국법인장은 미국에서 변압기와 전력기기의 공급이 쉽지 않은 현실을 설명했다. 자금 조달뿐만 아니라 공장을 짓고 엔지니어를 구하고 납기를 맞추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세리나 킴 영업관리 시니어 매니저 역시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시장에서 데이터센터 고객들이 기존보다 훨씬 짧은 납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뉴욕에서 오간 이야기는 하나로 모였다. AI 데이터센터의 문제는 더 이상 ‘돈이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력망을 연결하고 변압기를 만들 시간과 공장을 지을 시간, 사람을 확보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맨해튼 한복판에서 열린 이번 포럼은 미국 AI 산업의 거대한 투자 기회를 보여준 자리인 동시에 한국 전력산업이 마주하고 있는 기회와 해결해야 할 과제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날 참석한 관계자들은 뉴욕포럼이 한미 양국의 에너지 동맹을 단단하게 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장에서 만난 두산에너빌리티 박정균 뉴저지 법인장은 “뉴욕 한복판에서 한미 에너지 전문가들이 모인 의미 있는 자리다”고 말했다. 산업부 차관을 지낸 법무법인 광장의 한진현 고문은 “여러 에너지 산업 전문가들이 뉴욕에 한 데 모여 유익한 논의를 진행했다”며 “일회성 행사를 넘어 더 발전적인 모임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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