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카카오뱅크가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 기존 모바일뱅킹 앱을 전면 개방하며 외국인 금융시장 공략에 나섰다. 별도의 외국인 전용 앱을 구축하는 대신 내국인이 사용하는 앱에서 통장 개설부터 체크카드, 해외송금까지 50여개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비대면 계좌 개설 시간도 약 5분으로 단축했다. 내·외국인 간 금융서비스 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외국인 고객을 새로운 성장 기반으로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12일 카카오뱅크는 서울에서 ‘외국인 서비스 프레스톡’을 열고 외국인 대상 종합 금융서비스를 공개했다. 외국인통장과 프렌즈 체크카드를 비롯해 해외송금, 다국어 상담, 보안·인증 기능 등을 한 앱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카카오뱅크는 약 2800만명의 국내 고객에게 제공해 온 비대면 금융 경험을 국내 장기체류 외국인에게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내국인과 외국인의 금융 이용 채널을 분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정호 카카오뱅크 외국인고객캠프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기존 시중은행의 외국인 금융서비스와의 가장 큰 차이로 ‘채널 통합’을 꼽았다.
배 캠프장은 “외국인 전용 앱을 별도로 운영할 경우 내국인 앱에 신상품과 서비스가 우선 집중되면서 장기적으로 이용 가능한 금융서비스의 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외국인과 내국인의 채널을 분리하지 않고 내국인이 사용하는 앱을 외국인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면서 출시와 동시에 50개가 넘는 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계좌 개설 절차도 외국인 고객의 특성에 맞춰 재설계했다. 카카오뱅크가 이날 출시한 외국인통장은 중국·베트남 등 약 200개 국적의 만 19세 이상 외국인이 가입할 수 있으며 추가 심사가 필요하지 않을 경우 모바일에서 약 5분 만에 개설할 수 있다. 재직증명서나 급여명세서, 거주자증명서 등도 앱에서 제출할 수 있도록 했고 공공 마이데이터와 외국인 전용 셀카 인증을 적용했다.
배 캠프장은 “계좌 개설 시간이 짧아졌다는 것뿐 아니라 인증과 고객확인 절차 자체를 외국인에 맞게 다시 설계했다는 의미”라며 “외국인 비대면 계좌 개설 속도는 앞서 내국인 서비스를 처음 출시했을 때보다 오히려 빨라졌다”고 강조했다.
카카오뱅크가 2017년 출범 당시 내국인 비대면 계좌 개설에 약 7분이 소요됐다고 설명한 점을 고려하면 외국인 대상 서비스의 개설 절차는 이보다 약 2분 짧아진 셈이다.
체크카드 역시 외국인 전용 상품을 별도로 개발하지 않고 기존 상품을 그대로 제공한다. 외국인 고객도 내국인과 동일한 ‘프렌즈 체크카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국내 장기체류 외국인의 소비 패턴이 내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해 별도 상품보다 기존 혜택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언어 장벽을 낮추기 위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다국어 서비스도 도입했다. 상품 가입과 고객 문의 등 주요 화면을 영어·중국어·베트남어로 제공하고 1대 1 영어 상담도 지원한다. 2027년에는 지원 언어를 7개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금융상품 설명이나 거래 과정에서 AI 번역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복수의 AI가 번역 결과를 교차 검증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단일 AI가 번역한 내용을 곧바로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번역과 검증, 수정 과정을 여러 단계에 걸쳐 수행하도록 설계했다. 전문가 번역과 AI 번역 결과를 비교하는 개념검증(PoC)도 진행했다.
배 캠프장은 “한 개 AI가 번역하고 그대로 화면에 보여주는 방식은 아니다”며 “A라는 AI가 번역하면 B라는 AI가 검증하고 다시 수정한 뒤 C라는 AI가 또 검수하는 식”이라며 “여러 AI가 함께 완성도 있는 번역을 제공하도록 구조화해놨다”고 말했다.
이어 “PoC 결과를 보면 AI가 실수하는 부분도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AI가 번역원에 있는 분들보다 금융 지식이 더 많을 수도 있다”며 "맥락에 따라서는 AI가 조금 더 완성도 있는 번역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어 AI 기술을 활용해 번역하는 데 장점이 굉장히 많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고객의 체류기간과 거래 특성을 고려한 보안체계도 마련했다. 명의도용이나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비해 외국인 전용 안면인증과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적용했다. 국내 고객에게 제공하던 AI 스미싱 문자 확인과 명의도용 예방 등 기존 보안 기능도 외국인 서비스에 동일하게 적용했다.
특히 체류기간 만료 이후 계정이 금융사기에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중점을 뒀다. 배 캠프장은 “외국인은 국내 체류기간이 한정돼 있어 체류기간이 만료된 계정이 악용되는 사례를 특히 신경 썼다”며 “체류기간이 만료되면 거래를 단계적으로 제한하고 FDS에서 이상거래가 탐지되면 셀카 인증과 안면인식을 통해 본인 확인을 거치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본국으로 귀국한 외국인의 계정이 국내에서 계속 사용될 경우 이를 탐지해 거래를 제한할 수 있다”며 “카카오뱅크가 기존에 적용해온 입력 습관 기반 인증 등 보안·인증 기술도 외국인 서비스에 적용했다”고 덧붙였다.
카카오뱅크는 외국인 금융서비스를 단기적인 수익사업보다는 신규 고객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외국인 고객 유입을 통해 플랫폼 이용률과 수신 기반을 넓히되 초기부터 구체적인 수익 목표를 설정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배 캠프장은 “수익적인 비즈니스 관점에서 시작하기보다 외국인들의 불편과 불안을 덜어주자는 포용적인 관점에서 시작했다”며 “이용자가 늘면 일간활성이용자수(DAU)나 수신잔액 등의 효과는 따라올 것으로 보고 있지만 구체적인 숫자 목표를 정해두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서비스 확대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우선 외국인 고객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수신·결제 서비스를 중심으로 고객 기반을 확보한 뒤 금융상품과 이용 대상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내년부터 예·적금과 오픈뱅킹, 대출비교 서비스를 추가하고 장기적으로는 방한 외국인과 재외국민까지 고객군을 확장할 계획이다.
반면 자체 대출상품 출시는 중장기 과제로 남겨뒀다. 외국인은 내국인과 소득·체류·신용정보 등의 특성이 달라 별도의 신용평가체계와 대출 심사 인프라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 캠프장은 “외국인 대출 서비스는 아직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외국인은 내국인과 다른 신용평가모형이 필요하고 자체 대출을 제공하려면 별도의 인프라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선 외국인에게 필요한 필수 금융서비스부터 제공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자체 대출 상품까지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외국인 금융서비스를 연계하는 방안도 향후 검토할 수 있는 영역으로 제시했다. 외국인 고객의 송금·결제 수요와 연결될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마련된 단계는 아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스테이블 코인과 연계한 구체적인 서비스 계획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그룹 차원에서도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관심이 있고 외국인도 충분히 스테이블 코인 수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만큼 관련 법제화를 과정을 지켜보면서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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