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K-금융의 글로벌 행보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 진출은 이제 주요 금융사에 단순한 기회 모색이 아니라 핵심 사업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탄탄한 해외 실적은 '생산적 금융'이 강조되는 현시점에서 선순환적 수익 구조를 만들어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 딜사이트는 이번 기획을 통해 세계 각 거점에서 펼쳐지는 국내 금융사의 현지 사업과 전략, 그리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 주]
[브로츠와프(폴란드)=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배터리 공장을 따라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자리 잡았던 신한은행의 시선이 바르샤바 방산기업과 체코 원전으로 향하고 있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기존 배터리 산업이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심으로 사업을 다변화하는 가운데 폴란드의 대규모 국방 투자와 체코 원전 사업이 새로운 금융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어서다. 신한은행은 지난 10여년간 축적한 현지 제조업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방산·원전 분야까지 기업금융 수요 발굴 영역을 넓히며 유럽신한은행의 영업 전초기지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 폴란드 대표사무소는 최근 바르샤바의 한국 방산기업들과 접촉을 늘리고 체코 원전 관련 사업 동향을 살피고 있다. 배터리·자동차 기업 중심이던 현지 네트워크를 방산·원전 분야로 다변화하는 움직임이다.
특히 바르샤바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폴란드 방산시장 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수도 바르샤바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주요 한국 방산기업의 현지 거점이 자리 잡고 있어 관련 프로젝트 동향과 자금 수요를 파악하기 용이하다. 한국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과 협력 접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권진만 신한은행 폴란드 사무소장은 “브로츠와프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방산 프로젝트 진행 상황과 기업의 자금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바르샤바 기업들과 정기적으로 접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공장 따라 진출…12년째 금융 수요 발굴 '전초기지'
신한은행 폴란드 사무소는 2014년 폴란드 남서부 브로츠와프에 문을 열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본점을 둔 유럽신한은행 법인 산하로 현재 권진만 소장과 현지 직원 등 2명이 근무하고 있다. 사무소는 지점이나 법인과 달리 자체적인 수신·여신 업무를 취급하지 않는다. 대신 현지 진출 기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사업 현황과 자금 수요, 산업 동향 등을 파악한 뒤 이를 유럽신한은행에 전달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맡는다. 현지에서 발굴한 금융 수요를 유럽신한은행의 실제 기업금융 영업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 기능이다.
신한은행이 첫 거점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가 아닌 브로츠와프로 택한 것도 한국 기업의 진출 현황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폴란드 남서부의 주요 산업도시인 브로츠와프 일대에는 유럽의 주요 배터리 생산거점인 LG에너지솔루션 공장을 중심으로 배터리 제조업체와 자동차 부품 협력사 수십 곳이 밀집해 있다. 대기업 공장을 따라 소재·부품업체들이 함께 진출하면서 기업금융 수요도 형성됐다.
권 소장은 폴란드를 시작으로 동유럽 전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브로츠와프에 사무소를 개설했으며, 이를 통해 현지 정보 수집과 기업 네트워크 구축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10년 넘게 대표사무소 체제를 유지하면서 현지 네트워크 구축과 금융 수요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IBK기업은행과 하나은행이 최근 폴란드 현지법인과 지점을 통해 직접 영업에 나선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신한은행은 폴란드 사무소가 현지 기업과의 접점을 확보하고 독일 유럽신한은행이 실제 금융거래를 담당하는 역할 분담 구조를 활용하고 있다.
◆배터리는 ESS로 전환…방산이 새 금융 수요
폴란드는 3% 안팎의 경제성장률과 서유럽·동유럽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한국 기업들의 주요 생산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기존 배터리·자동차 산업의 재편과 방산 투자 확대가 맞물리면서 기업금융 수요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기존 주력 산업인 배터리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브로츠와프 인근 공장을 유럽 핵심 생산거점으로 운영하면서 전기차용 배터리뿐 아니라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3월 폴란드 국영 에너지기업 PGE와 262MW 출력, 981MWh 저장용량의 대규모 ESS 구축·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올해 4월에는 브로츠와프 공장에서 생산한 ESS용 배터리 시스템의 초도 물량을 출하했다.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응해 기존 생산시설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시설의 용도 전환은 기존 협력업체의 설비 투자와 부품 조달, 운전자금 수요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신한은행 입장에서는 기존 배터리·자동차 산업에서 확보한 네트워크를 ESS 관련 기업금융으로 연결할 수 있는 기회다.
여기에 방위산업이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폴란드가 국방비를 대폭 확대하면서 한국 방산기업의 현지 사업 규모도 커지고 있다. 폴란드 정부가 올해 국가예산과 군사지원기금 등을 통해 편성한 국방 관련 총지출은 약 2001억즈워티로 국내총생산(GDP)의 4.81%에 달한다. 전쟁 이전 2%대 초반이던 비중이 두 배 이상으로 높아졌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 방산기업과 폴란드의 협력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K2 전차와 K9 자주포 등 기존 무기체계 도입에서 현지 생산과 기술이전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사업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완제품 수출에 필요한 금융뿐 아니라 현지 생산시설 구축과 부품 조달, 협력업체 운영 과정에서 시설·운전자금과 계약보증, 외환·무역금융 등 다양한 금융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신한은행이 바르샤바 방산기업과의 접촉을 늘리는 것도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기존 배터리·자동차 기업 중심의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방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한국 기업과 협력업체의 금융 수요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브로츠와프 넘어 체코까지…원전 금융 기회도 탐색
신한은행 폴란드 사무소의 활동 반경은 폴란드 국경을 넘어 체코로도 넓어지고 있다.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이 진행되면서 향후 설비·기자재 공급과 협력업체 진출에 따른 금융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해 6월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약을 체결한 이후 설계와 인허가 등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향후 기자재 공급과 현지 협력업체의 사업 참여가 본격화하면 시설자금과 운전자금, 보증 등 기업금융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은행은 브로츠와프가 체코와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과 지난 10여년간 축적한 현지 기업 네트워크를 활용해 원전 관련 한국 기업과 협력업체의 사업 동향을 파악하고 금융 수요를 발굴한다는 구상이다. 폴란드에서 확보한 제조업 네트워크를 체코 원전 사업으로까지 넓혀 유럽신한은행의 새로운 기업금융 기회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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