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K-금융의 글로벌 행보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 진출은 이제 주요 금융사에 단순한 기회 모색이 아니라 핵심 사업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탄탄한 해외 실적은 '생산적 금융'이 강조되는 현시점에서 선순환적 수익 구조를 만들어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 딜사이트는 이번 기획을 통해 세계 각 거점에서 펼쳐지는 국내 금융사의 현지 사업과 전략, 그리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 주]
[싱가포르=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1기가 시속 30㎞까지 속도를 올려놨다면 2기의 역할은 이를 50~6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도형 한국수출입은행 싱가포르법인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이 같은 속도에 빗댔다. 2022년 출범한 싱가포르법인은 초대 법인장이 3년 동안 법인 설립과 조직·시스템 구축의 기반을 닦아놓은 상태였다. 2대 법인장인 그는 그 위에서 영업망을 넓히고 안정적인 영업 프로세스를 구축해 법인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에서 30년 가까이 금융 업무를 해온 이 법인장이 싱가포르행을 택한 이유도 직접 해외 영업의 기반을 만들어보고 싶어서였다. 첫 해외 근무지였던 두바이 사무소에서는 본점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에 무게가 실렸다면 싱가포르에서는 직접 고객을 만나 거래를 발굴하고 금융을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이 법인장은 최근 싱가포르에서 딜사이트와 만나 "1기는 처음 회사를 셋업해야 하니 굉장히 어려웠을 텐데 잘 만들어놨다"며 "저는 2기로서 이를 다음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해 영업망을 확충하고 안정적인 프로세스를 만드는 가교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바이에선 본점 지원…싱가포르선 직접 '영업 전선'으로
1970년생인 이 법인장은 수출입은행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베테랑 금융인이다. 기획부 팀장과 자원금융부 부장, 두바이 사무소장, 투자금융부장, 혁신성장금융부 2부장을 거쳤다. 기획부터 자원금융과 투자금융, 해외업무까지 두루 경험한 뒤 지난해 싱가포르법인을 맡았다.
해외 경험도 일찍부터 쌓았다. 회사 지원을 받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았고 이후 해외 프로젝트 업무를 담당하며 여러 국가를 오갔다. 두바이 사무소장으로 해외 근무를 경험한 데 이어 이번에는 직접 지원해 싱가포르법인장을 맡았다.
같은 해외 근무지만 두바이와 싱가포르에서 맡은 역할은 달랐다. 사무소는 현지 정보를 수집하고 본점 업무를 지원하는 성격이 강한 반면 법인은 직접 고객을 만나 거래를 발굴하고 금융을 실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법인장은 "두바이에 있을 때는 실제 영업이라기보다 본점을 보조하는 역할에 가까웠다"며 "싱가포르에서는 직접 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새롭게 체감한 것은 '수출입은행'이라는 간판이 갖는 무게도 국내와 다르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수출금융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거래를 주도할 수 있지만 글로벌 금융회사와 일본계·중국계 은행, 싱가포르 현지 은행 등이 경쟁하는 현지에서는 수은 역시 여러 금융회사 가운데 하나로 거래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
이 법인장은 "본점에 있으면 수출금융에서는 그래도 협상 과정에서 어느 정도 주도권이 있는데 여기서는 우리가 주도를 못한다"며 "보조적인 역할을 넘어 주도적인 역할을 찾으려면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딜보다 연결고리"…상반기 8건 중 본점 주도 1건
이 법인장이 직접 영업에 무게를 두면서 싱가포르법인의 거래 발굴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출범 초기에는 본점에서 발굴한 프로젝트를 싱가포르법인이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현지에서 직접 거래를 찾거나 본점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소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 올해 상반기 승인한 8건 가운데 본점이 주도한 거래는 1건이었다.
이 법인장이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개별 거래 한 건의 성과보다 좋은 거래가 꾸준히 들어올 수 있는 영업망을 만드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우량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거래가 시장에 나온 뒤 참여 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평소 글로벌 금융회사들과 관계를 맺고 수은이 관심을 두는 산업과 금융지원 역량을 알려야 새로운 거래가 나왔을 때 참여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이 법인장 역시 싱가포르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주변 국가를 직접 찾아 금융회사 관계자들을 만나고 이들이 싱가포르를 방문하면 다시 접점을 만드는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다. 이렇게 쌓은 관계가 실제 거래로 이어진 사례도 여러 건 있다는 설명이다.
이 법인장은 "딜 하나가 어떤 한 가지 때문에 성사됐다고 말하기보다는 연결고리를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그런 관계를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해야 안정적으로 자산도 늘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수출입은행'이라는 간판만으로 거래를 따낼 수는 없지만 관계를 만드는 출발점으로는 강점이 있다는 게 이 법인장의 생각이다. 싱가포르법인의 조직 규모는 글로벌 대형은행과 비교하면 작지만 현지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법인을 통해 수은 본점과 새로운 거래 관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은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접점을 얼마나 실제 거래로 이어가느냐가 현지 영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셈이다.
31년차 금융인으로 일해온 이 법인장이 현지 영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단순한 실적만은 아니다. 좋은 프로젝트를 발굴해 국내 기업의 해외 사업에 도움을 주고 그 결과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의 의미를 찾는다고 했다.
이 법인장은 "좋은 프로젝트를 잘해서 우리 기업들에 도움이 되고 그런 성과가 알려질 때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오랜 직장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스스로 재미와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초대 법인장이 법인 설립과 조직 구축을 통해 만들어 놓은 '시속 30㎞'의 기반 위에서 영업망과 프로세스를 갖춰 속도를 50~60㎞까지 끌어올리는 것. 이 법인장이 싱가포르에서 맡고 싶었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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