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구예림 기자] 수출입은행(수은)이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앞세워 아프리카 인공지능(AI)·디지털 시장 개척에 나선다. 그동안 교량과 전력, 상하수도 등 전통 인프라에 집중했던 개발금융의 지원 영역을 AI 인프라로 넓히고, 국내 기업의 새로운 수주처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첫 사업지는 20년 넘게 EDCF 협력 기반을 쌓아온 탄자니아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은이 정부로부터 운용·관리 업무를 위탁받은 EDCF는 탄자니아 ‘인공지능·디지털 기술교육기관 건립 사업’에 1억7000만달러 규모의 차관을 지원할 예정이다. EDCF가 AI 분야 사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EDCF 운용위원회를 열어 해당 사업을 승인했다. 수은은 사업심사와 차관계약 체결 등 실무를 맡고 있으며 연내 차관계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사업은 EDCF의 지원 영역이 기존 사회간접자본(SOC) 중심에서 AI·디지털 산업 인프라로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DCF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산업 발전을 지원하고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장기·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유상원조 기금이다. 재정경제부가 정책 방향과 주요 사업 승인을 총괄하고 수은이 사업심사와 차관계약 등 집행을 담당한다.
정부가 최근 아프리카와의 경제협력에서 AI·디지털 분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도 이번 사업과 맞닿아 있다. 이달 서울에서 열린 제8차 한-아프리카 경제협력(KOAFEC) 장관회의에서는 AI 솔루션과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등을 EDCF와 KOAFEC 신탁기금,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금융과 연계하는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수은 역시 KOAFEC를 계기로 탄자니아를 포함한 아프리카 주요국과 EDCF를 활용한 경제협력 확대 방안을 협의했다. 탄자니아 측과는 AI·디지털 기술교육기관 건립 사업의 차관계약 등 후속 절차를 점검하고 향후 추가 사업 발굴 방안도 논의했다.
탄자니아가 EDCF 첫 AI 사업지로 선정된 배경에는 현지 정부가 국가 발전전략을 통해 AI와 디지털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데다 한국과 장기간 EDCF 협력사업을 이어왔다는 점이 작용했다.
수은은 2004년부터 탄자니아에서 EDCF 사업을 추진해왔다. 직업훈련센터를 비롯해 말라가라시강과 샐린더 교량, 송변전망·변전소, 상하수도 시설, 병원 등 교통·전력·수자원·보건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왔다. 이후 주민증 데이터센터와 국토정보 인프라, 주민증 시스템 확장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로도 지원 영역을 넓혔다.
지원 규모도 눈에 띈다. 이번 AI 사업의 승인액은 1억7000만달러로, 현재까지 확인된 탄자니아 EDCF 단일 승인사업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가장 큰 사업은 3억6390만달러 규모의 무힘빌리 국립병원 본원 재건사업이다. 그동안 탄자니아의 대형 EDCF 사업이 병원과 교통·수자원 등 전통 인프라에 집중됐다면, 이번에는 1억달러를 훌쩍 넘는 대규모 정책금융이 처음으로 AI·디지털 산업 기반에 투입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규모만큼 사업 범위도 기존 인프라 사업과 차이가 있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교육시설 건립에 그치지 않는다. AI와 로보틱스, 데이터분석, 사물인터넷(IoT) 등 4개 교육과정을 운영할 첨단 기술교육기관을 구축하고 AI 실험실과 고성능 AI 트레이닝 시설, ICT·네트워크 시스템 등을 함께 도입한다.
교육·실습 기자재에는 드론과 3D프린터 등이 포함되고 교육과정 개발과 기관 운영, 현지 교육인력 양성도 사업 범위에 들어간다. 고성능 AI 트레이닝 시설에는 AI 컴퓨팅 자원과 고대역폭메모리(HBM), 고속 네트워크 등 AI 인프라가 집약될 예정이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EDCF 조달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업종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번 사업은 구매적격국을 한국으로 제한하는 구속성(tied) 차관 방식으로 추진된다.
기존 EDCF 인프라 사업에서는 건설사와 엔지니어링 업체가 주요 참여자였다. 반면 이번 사업에는 AI 인프라와 네트워크, 에듀테크, 교육·운영 솔루션 등이 포함돼 첨단기술 기업의 참여 가능성이 커졌다. AI 컴퓨팅 자원과 HBM 등이 사업 범위에 포함된 만큼 AI 반도체 등 관련 기업과의 접점도 확대될 수 있다.
정부 역시 이번 사업을 통해 AI와 에듀테크, 건설 등 국내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 기회가 넓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달 KOAFEC 기간 열린 투자설명회에서도 아프리카 진출을 희망하는 국내 기업과 현지 정부·기관을 연결하고 AI·디지털 분야 유망 프로젝트와 투자 기회를 공유했다.
탄자니아에서 후속사업이 이어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탄자니아 정부는 이번 교육기관을 모델로 추가 교육기관 설립과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 등을 계획하고 있다. 수은도 탄자니아 재무부 및 정보통신부와 후속사업 발굴을 위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첫 사업이 안착하면 협력 범위가 AI 교육시설 건립을 넘어 컴퓨팅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관련 교육·운영 서비스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기존 교량이나 상하수도처럼 단일 인프라를 건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교육과 컴퓨팅 장비, 네트워크, 운영 솔루션을 묶는 복합형 EDCF 사업 모델로 발전할 여지도 있다.
관건은 탄자니아에서 시작한 사업 모델을 다른 아프리카 국가로 확산할 수 있느냐다. 정부가 KOAFEC를 통해 AI·디지털 인프라를 새로운 한-아프리카 협력 분야로 제시한 만큼 EDCF도 향후 관련 사업을 발굴하는 정책금융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수은으로서는 현지의 AI·디지털 개발 수요를 EDCF 사업으로 구체화하고 이를 국내 기업의 수주 기회로 연결하는 역할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전통 인프라 중심이던 EDCF가 국내 AI·디지털 기업의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정책금융 통로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수은 관계자는 “이번 탄자니아 사업에서 사업심사와 차관계약을 담당하고 있다”며 “탄자니아 재무부 및 정보통신부와 후속사업 발굴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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