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민승기 차장] 최근 코스닥 상장사 A사는 3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공모 납입을 마쳤다. 그런데 돈을 손에 쥔 지 사흘 만에 한국거래소로부터 시가총액 미달에 따른 상장폐지 우려 안내를 받았다. 퇴출 경고장이 날아든 셈이다.
A사는 신주 상장을 당초 일정보다 일주일 앞당겼다. 주식 수가 늘면 같은 주가에서도 시가총액이 커진다. 상장폐지 기준선인 시총 200억원을 넘기 위한 계산이었다. 하지만 수백만주의 신주가 풀린 날 주가는 오히려 급락했고, 시가총액은 기준선을 밑돌았다.
이 같은 사례는 지난 7월28일 소액공모 한도가 '10억원 미만'에서 '30억원 미만'으로 3배 늘어난 뒤 벌어진 일이다. 소액공모는 증권신고서 대신 간소한 서류만 내면 된다. 금융당국의 정정 요구도, 주관 증권사의 기업실사도 없다. 시행 전부터 한계기업의 연명 수단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두 달이 지난 지금 우려는 절반만 맞았다. 한계기업도 실제로 이 통로를 찾았다. 하지만 그 돈으로 벼랑 끝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8월 주식 공모 발행액은 4조9259억원으로 1년 전의 절반에 그쳤다. 기업공개는 60건에서 36건으로 줄었다. 한때 코스피가 9000선을 넘보는 동안 기업이 돈을 구하는 시장은 얼어붙은 것이다.
그 사이 소액공모만 늘었다. 1~8월 482억원(48건)으로 금액이 전년 동기보다 60% 넘게 늘었다. 금액 기준으로는 8개월 만에 이미 지난해 연간 규모를 넘어섰다. 특히 30억원 한도가 처음 적용된 8월 한 달에만 148억원이 몰렸다. 이전 달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처럼 기업들이 소액공모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허들이 낮기 때문이다. 일반 유상증자는 증권신고서를 내고 금융당국의 심사를 거쳐 효력이 발생해야 한다. 납입까지 두 달가량 걸리고 당국이 정정을 요구하면 일정은 계속 밀린다. 반면 소액공모는 며칠이면 끝난다. 제출 서류 분량도 증권신고서의 절반 이하다. 한도가 10억원이던 시절 상장사들이 모집 총액을 9억9999만원에 맞추는 '턱걸이 조달'이 흔했던 이유다.
이제 그 턱이 30억원으로 올라갔다. 생산 설비를 돌릴 운영자금이 급한 중소기업 등에는 이번 한도 확대가 단비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문제는 같은 문으로 퇴출위기 기업도 들어온다는 데 있다. 만약 증권신고서를 냈다면 금융당국은 A사의 상장폐지 위험이 투자자에게 충분히 설명됐는지 따져 물었을 것이다. 또 주관 증권사는 공모가와 수요를 검증했을 것이다. 소액공모에는 그 과정이 없다. 회사가 버틸 수 있는지 판단하는 일도, 그 판단이 틀렸을 때의 손실도 오롯이 청약 투자자 몫이다.
정부는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고 동전주 퇴출 기준까지 신설하며 부실기업을 신속히 걸러내겠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퇴출위기 기업이 심사없이 30억원을 끌어 쓸 수 있는 문을 열어뒀다. 조달 후에도 퇴출을 피하지 못한다면 소액공모는 회사를 살리는 수단이 아니라 퇴출 직전 투자자 자금을 한 번 더 끌어들이는 통로가 될 뿐이다.
소액공모 한도 확대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퇴출 위험이 확인된 기업까지 같은 혜택을 누려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소액공모 한도 확대는 자금이 급한 중소기업을 돕는 '단비'가 되기 위해서는 부실기업의 연명이나 투자자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시급하다. 관리종목이나 상장폐지 우려 안내를 받은 기업은 확대 한도에서 제외하거나, 조달 자금의 사용 내역을 사후 공시하도록 하는 등 당국의 정교한 핀셋 규제가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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