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민승기 기자] 현금성자산은 2억원까지 줄었는데 자본잠식 계열사에 빌려준 돈은 156억원으로 불어났다. 관리종목에 지정된 형지글로벌의 자금 사정이다. 더 눈에 띄는 건 돈을 빌려준 계열사의 투자지분에서 이미 58억원가량의 손상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그룹 내 다른 상장사에서도 비상장 계열사에 빌려준 돈 대부분을 대손 처리한 사례가 확인된다. 상장사들의 기업가치 회복이 절실한 상황에서 계열사에 묶인 자금이 또 다른 재무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형지글로벌이 올해 6월 말 형지씨앤씨와 형지코퍼레이션에 빌려준 돈은 총 156억원에 달한다. 형지씨앤씨에 대한 대여금이 116억원, 형지코퍼레이션이 40억원이다. 반기 초 109억9000만원이었던 두 회사에 대한 대여금은 불과 반년 사이 46억원가량 늘었다.
문제는 돈을 빌려간 두 회사 모두 자본총계가 마이너스인 완전자본잠식 상태라는 점이다. 형지글로벌 연결재무제표 주석을 살펴보면 형지씨앤씨는 6월 말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34억5733만원으로 반기 중 1억6393만원의 순손실을 냈다. 형지코퍼레이션도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4억941만원이고 같은 기간 1억5187만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형지글로벌은 두 회사에 대한 대여를 통해 이자수익도 인식하고 있다. 상반기 형지씨앤씨와 형지코퍼레이션에서 인식한 이자수익은 각각 2억5025만원, 8472만원이다. 적자를 내고 자본까지 잠식된 계열사에 대한 대여금이 오히려 늘어난 만큼 앞으로 원리금을 정상적으로 회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형지씨앤씨에서는 투자자산의 손상이 이미 현실화됐다. 형지글로벌은 대여금과 별도로 형지씨앤씨에 출자했다. 투자지분 취득원가는 80억원이지만 이 가운데 58억954만원을 손상차손누계액으로 반영하면서 6월 말 장부가는 21억9046만원까지 떨어졌다. 투자원금의 약 73%가 장부가에서 사라진 셈이다.
형지씨앤씨 투자지분에서 이미 대규모 손상을 인식한 상황에서도 형지글로벌이 이 회사에 빌려준 돈은 116억원에 달한다. 형지글로벌 자체의 별도 기준 현금및현금성자산이 반기 초 95억원에서 6월 말 약 2억원으로 급감했다는 점과 대비된다. 회사가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현금은 크게 줄어든 반면 자본잠식 계열사에 나간 대여금은 늘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패션그룹형지 측 관계자는 "계열회사에 대한 대여는 각 사의 사업 운영 자금 수요를 고려해 내부 의사결정 절차에 따라 집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손충당금 판단에 대해서는 "단순히 해당 회사의 자본총계가 마이너스라는 사실만으로 결정하지 않고 채무자의 자산 및 사업가치, 향후 현금흐름, 회수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관련 회계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있다"며 "결산 과정에서도 외부감사인과 관련 기준에 따라 적정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계열사에 빌려준 돈이 대규모 충당금으로 돌아온 사례는 그룹 내 다른 상장사에서 이미 나타났다. 형지엘리트가 대표적이다. 형지엘리트는 인도네시아 법인 PT.ELITE와 국내 법인 라젤로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자 두 법인에 투자한 출자금 취득원가 49억1766만원을 전액 손상 처리했다.
대여금과 선급금도 상당 부분 장부상 회수가 어려운 채권으로 분류돼 있다. PT.ELITE에 대한 장기대여금 245만3000달러는 전액 대손충당금이 설정돼 있다. 6월 말 환율을 적용하면 약 38억원 규모다. 선급금 21억3714만원에도 전액 충당금이 잡혀 있다. PT.ELITE에 나간 채권성 자산 가운데 약 59억원에 충당금이 설정된 셈이다.
라젤로에 대한 장기대여금은 25억2900만원으로 이 가운데 23억5528만원에 대손충당금이 설정됐다. 충당률로 따지면 약 93%에 달한다.
이미 기존 대여금 등에 대규모 충당금을 쌓았지만 계열사 지원은 이어졌다. 형지엘리트는 2025년 7월부터 2026년 6월까지 PT.ELITE에 46만8000달러를 추가로 대여했다. PT.ELITE에 대한 180만달러 규모 지급보증도 유지하고 있다. 형지엘리트 이사회는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해당 지급보증의 연장을 의결했다.
출자금은 전액 손상됐고 기존 대여금과 선급금에도 전액 충당금이 설정된 계열사에 추가 자금을 투입하고 지급보증까지 이어간 셈이다. 향후 현지 법인의 실적이 개선되지 않으면 추가로 지원한 자금 역시 형지엘리트의 재무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형지그룹 관계자는 "해외법인 등에 대한 대여와 지급보증은 현지 사업운영 및 기존 사업의 정상화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회계상 대손충당금 설정은 회계기준에 따른 기대신용손실 등을 반영한 것으로 이것이 해당 사업을 즉시 중단하거나 채권 회수가 전혀 불가능하다는 의미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추가 지원 여부는 사업의 지속가능성, 회수가능성 및 형지엘리트 자체의 재무여력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대여금 외에도 상장 3사의 상당한 자금이 계열사와의 임대차 관계 등에 묶여 있다. 형지I&C는 네오패션형지에 41억5520만원의 보증금을 맡겨두고 있다. 형지글로벌도 네오패션형지에 대한 기타채권 160억6960만원을 보유하고 있다. 형지엘리트는 네오패션형지와 형지리테일에 각각 67억6574만원, 26억4691만원의 보증금을 맡겼다. 관련 금액은 전기 말과 같거나 소폭 늘어난 수준이다.
특히 네오패션형지 한 곳에 형지I&C와 형지엘리트의 보증금이 집중돼 있고 형지글로벌도 160억원대 기타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대여금과 달리 정상적인 임대차계약 등에 따라 발생한 채권이지만, 상장사 입장에서는 계약이 유지되는 동안 자유롭게 활용하기 어려운 자금이라는 점은 같다.
형지그룹 관계자는 "그룹 계열사 간 임대차 관계에 따라 발생한 것"이라며 "임차면적, 계약기간, 임대조건 및 해당 부동산의 이용관계 등을 기초로 각각의 임대차계약에 따라 산정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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