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코인 매매를 넘어 실물연계자산(RWA)과 토큰증권(STO),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기존 거래소가 구축한 자금세탁방지(AML)와 시장감시·보안 인프라를 활용해 다양한 디지털자산을 취급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를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려면 가상자산과 전통금융 사이의 제도적 경계를 정비하고 거래소가 할 수 있는 사업의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에서 열린 '코리아블록체인위크(KBW 2026)'의 'Korea's Next Generation of Digital Asset Venues' 세션에서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사업 확장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 개선 방향이 논의됐다.
김재진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 상임부회장이 모더레이터로 나선 가운데 진명구 디지털엑스 대외정책본부장, 황순호 두나무 대외협력실 이사, 강민규 코인원 대외협력본부 이사가 패널로 참석했다.
디지털엑스는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가 구축한 거래·보안 인프라를 RWA와 STO 등 다른 디지털자산으로 확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자산마다 별도의 플랫폼을 구축하기보다 일정 요건을 갖춘 사업자가 필요한 라이선스를 추가로 확보해 여러 유형의 디지털자산을 취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진명구 디지털엑스 대외정책본부장은 "특히 기존 원화거래소가 구축해 온 자금세탁방지와 시장감시, 해킹 방지 인프라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상자산과 STO·RWA가 각각 별도의 거래 인프라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가상자산 거래소가 자산 특성에 맞는 라이선스를 추가로 확보해 다양한 디지털자산을 취급하는 방식을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금융과 가상자산 사이에 놓인 제도적 장벽을 함께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퍼블릭 블록체인을 이용한 가상자산·스테이블코인의 입출금과 상환, 커스터디 등의 제도를 정비하고 신탁재산의 범위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는 방안 등이 사례로 제시됐다.
이 같은 제도 정비를 전제로 진 본부장은 하나의 플랫폼에서 현금과 가상자산뿐 아니라 국채·부동산 등 토큰화 자산을 거래하고, 보유한 디지털자산을 담보로 활용하는 형태까지 사업모델을 확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도 넓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수익처럼 기존 금융시장에서 거래하기 어려웠던 권리를 토큰화해 투자자와 연결하는 방식 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구상은 현행 제도에서 곧바로 구현할 수 있는 서비스라기보다 RWA·STO와 가상자산을 아우르는 라이선스 및 유통 체계가 마련될 경우 가능한 사업모델에 가깝다.
두나무는 해외에서 전통 금융자산과 가상자산 사이의 경계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내 제도화가 늦어지면 상품 출시뿐 아니라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축적되는 기술과 운영 경험에서도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황순호 두나무 대외협력실 이사는 해외에서는 토큰화된 주식과 RWA, 무기한 선물 등 다양한 상품이 중앙화거래소와 탈중앙화거래소(DEX)를 통해 거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이사는 "미국 등 주요국이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자산 관련 제도 정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금융상품이 빠르게 온체인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국내 제도화가 늦어질 경우 단순히 상품 출시 시점만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수년간 서비스를 운영하며 쌓이는 기술과 운영 노하우에서도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제도가 마련된 뒤 국내 사업자가 뒤늦게 상품을 출시하더라도 이미 해외 사업자들이 이용자와 유동성, 운영 경험을 축적한 상태라면 경쟁력 차이를 단기간에 좁히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코인원은 새로운 사업을 허용할지 여부에 앞서 사업자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를 명확하게 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자본과 인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중소 거래소일수록 규제의 예측 가능성이 투자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민규 코인원 대외협력본부 이사는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실제로 무엇을 해도 되는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완벽한 기준이 없다"며 불확실한 규제 환경에서는 새로운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인과 외국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시장을 한꺼번에 전면 개방하기보다 투자자 유형과 거래 범위를 제한한 테스트베드를 운영한 뒤 시장 영향을 확인하면서 범위를 넓히자는 접근이다.
강 이사는 국내 투자자는 해외 거래소를 통해 다양한 디지털자산과 상품에 접근할 수 있는 반면 외국인의 국내 거래소 이용은 제한돼 있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법인 투자 역시 전면 개방에 부담이 있다면 법인 유형과 투자자군을 구분해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등 테스트베드를 통해 정책 효과를 검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인원은 새로운 주주와의 협업도 향후 사업 확장의 기반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강 이사는 한국투자증권과 금융 노하우 및 리테일 고객 접점을 넓히는 방향으로 협업하고 있으며 향후 국내 제도와 해외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파트너십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거래소들이 그리는 차세대 거래소의 모습은 코인 매매 플랫폼에 머물지 않는다는 전망이 나왔다. RWA와 STO, 스테이블코인, 법인·외국인 거래까지 금융과 디지털자산을 연결하는 인프라로 역할을 확대하되, 이를 위해서는 어떤 사업을 허용할지 명확한 규제 체계와 단계적인 시장 개방이 선행돼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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