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경쟁은 이제 대형 언어모델(LLM)의 성능 경쟁을 넘어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망 등 인프라 확보 경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대규모 투자가 전력과 에너지 인프라로 이어지면서 산업 구조와 자본의 흐름, 기업의 투자 전략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딜사이트는 ‘2026 경영전략 써밋’을 통해 AI 인프라 확장이 산업과 자본시장에 가져올 변화와 기회를 심층 분석했다. AI 전력 슈퍼사이클 시대, 국내외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준비하는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최유라 기자]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제조업의 경계를 넘어 피지컬 인공지능(AI) 기업으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투자 규모가 이를 보여준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국내에 총 125조2000억원을 투자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이 가운데 50조5000억원은 AI·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전동화·로보틱스 등 미래 신사업에, 38조5000억원은 연구개발에 배정했다. 로봇 기술을 연구실 안에 머물게 하지 않고 실제 제조 현장과 물류 시스템에 투입해 산업 현장의 변화를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그룹 내부에서 로봇 사업화를 맡는 조직은 로보틱스랩이다. 로보틱스랩은 2018년 그룹 내 로봇 전담 조직(로보틱스팀)으로 출발해 실 단위 조직으로 승격됐다. 그동안 산업용 착용 로봇 '엑스블 숄더'(X-ble Shoulder), 소형 모빌리티 플랫폼 '모베드'(MobED), 서비스 로봇 '달이'(DAL-e) 등의 설계부터 양산 체계 구축까지 전 과정을 담당해 왔다. 로보틱스랩은 지난 5월 그룹의 미래 소프트웨어·모빌리티 전략을 총괄하는 첨단차플랫폼(AVP)본부 산하로 편입됐다.
연구 성과를 시장으로 연결하는 역할은 로보틱스사업실이 맡고 있다. 김영훈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 로보틱스사업실장(상무)은 딜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고객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은 로봇이라는 제품이 아니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이라고 강조했다. 로봇 사업의 경쟁력은 하드웨어 자체보다 얼마나 많은 실제 현장 문제를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설명이다. 김 실장은 2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릴 딜사이트 '2026 경영전략 써밋'에서도 관련 내용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음은 김영훈 실장과의 일문일답.
-로보틱스랩이 AVP본부 산하로 이관된 지 다섯 달이 지났다. 실무적으로 체감하는 변화는.
▲로보틱스랩이 AVP본부 산하로 편입되면서 로보틱스를 개별 제품 관점이 아니라 미래 모빌리티와 AI 기반 서비스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반이 더욱 강화됐다. 특히 SDV 분야와의 협업이 활발해지면서 자율주행, AI, 소프트웨어 플랫폼, 데이터 활용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술적 시너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로보틱스사업실을 이끌게 된 뒤 가장 방점을 두는 과제는.
▲우수한 기술을 실제 고객이 사용하는 제품과 서비스로 연결하는 것이다. 고객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은 로봇이라는 제품이 아니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고객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업성과 확장성을 갖춘 솔루션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로보틱스사업실은 연구 성과를 어떤 단계를 거쳐 시장과 연결하나.
▲상품기획부터 사업화, 생산·품질, 판매까지 전 과정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개발 조직이 만든 기술을 고객 관점에서 검증하고 제품화와 양산을 거쳐 실제 시장에 안착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궁극적으로는 좋은 기술을 만드는 것을 넘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속 가능한 솔루션 사업을 만들어가는 것을 지향한다.
-모베드의 국내 판매를 앞두고 있다. 엑스블 숄더 등 주요 라인업의 사업화 로드맵과 성과는.
▲엑스블 숄더는 지난해 양산 이후 산업 현장을 중심으로 적용 범위를 꾸준히 넓혀 왔다. 특히 올해에는 농업 분야 보급지원 사업 등을 통해 실제 작업자들의 근골격계 부담을 줄이고 작업 생산성을 높이는 성과를 확인했다. 앞으로는 국내 시장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본격화해 판매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다.
모베드는 국내 판매 개시를 앞두고 있다. CES 최고혁신상 수상 이후 다양한 산업 분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여러 고객사와 실증 사업을 진행하며 실제 활용 가능성을 검증하고 있다. 단순한 모바일 로봇 플랫폼을 넘어 물류, 배송, 순찰, 방송 등 다양한 서비스로 확장 가능한 플랫폼으로 키우고 있다. 모베드 얼라이언스를 비롯한 다양한 파트너들과 협력해 각 산업 현장의 요구에 맞는 애플리케이션도 발굴하고 있다.
결국 로보틱스랩은 로봇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파트너 생태계를 기반 삼아 시장을 넓혀갈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피지컬 AI와 로보틱스 사업 확장에 이토록 전사적 역량을 쏟는 이유는.
▲현대차그룹은 단순히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더 나은 이동과 삶을 지원하는 모빌리티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로보틱스와 피지컬 AI는 자동차와 별개의 영역이라기보다 모빌리티의 개념을 확장하는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물이 이동하고 작업하고 상호작용하는 모든 공간에서 AI가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직접 행동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로봇은 이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구현하는 플랫폼 중 하나이며 현대차그룹이 추구하는 '인류를 위한 진보'(Progress for Humanity) 비전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로보틱스는 특정 사업 영역의 확대라기보다 사람들의 일상과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장기적인 기술 투자라고 보고 있다. 앞으로도 자동차와 로봇, AI가 가진 공통의 기술 기반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데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
-산업 현장에서 로보틱스의 경제성이 성립하려면 기술과 가격 측면에서 어떤 임계점을 넘어야 하나.
▲경제성은 단순히 로봇 하드웨어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제 현장에서는 로봇 구매 비용보다 데이터를 확보하고 현장 환경에 맞게 시스템을 통합하며 운영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과정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로봇이 산업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가격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빠르고 쉽게 도입할 수 있도록 구축과 운영 비용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어 데이터 수집과 학습, 현장 커스터마이징, 기존 설비와의 연동, 유지보수 등의 부담을 줄여야 고객이 경제적 가치를 체감할 수 있다.
앞으로는 로봇 하드웨어의 성능 경쟁보다 데이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확보하고 학습시키며 다양한 현장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지가 경제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결국 로봇 도입의 성공 여부는 기계 한 대의 가격이 아니라 고객의 총 운영 비용과 가치 창출 효과로 판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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