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KB금융그룹의 이재근 차기 회장 체제 출범을 앞두고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승계 절차를 정조준하면서 연말 인사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누가 CEO로 낙점되느냐 못지않게 어떤 기준과 절차를 거쳐 후보를 선정했는지까지 검증 대상이 되면서다. 회장 개인보다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앞세운 '분권형 조직'을 예고한 이 부문장으로서는 첫 계열사 인사부터 이를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에 서게 됐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오는 23일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과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최근 이 원장이 금융지주 자회사 CEO 승계 절차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만큼 연말 인사를 앞두고 경영승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재차 강조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앞서 이 원장은 지난 15일 임원회의에서 "대부분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가 마련한 자회사 CEO 승계 절차가 미흡하고,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역할도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CEO 자격요건이 구체적이지 않은 데다 후보 압축 단계별 최소 검증기간이 없고, 상시후보군 관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거나 후보 압축·검증 과정이 불투명한 점 등을 문제로 꼽았다.
특히 특정 계파나 친소관계에 기반해 CEO 선임이 폐쇄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경계하며 후보군 선정부터 검증·평가·기록에 이르는 전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금감원 역시 CEO 승계가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이뤄지는지 점검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의 문제 제기는 연말 대규모 계열사 인사를 앞둔 KB금융에도 직접적인 숙제로 이어진다. 국민은행장 선출 과정을 보면 현재 KB금융의 계열사 CEO 승계 구조를 가늠할 수 있다. 지주 이사회 산하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국민은행장 후보를 추천하면 국민은행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자격을 검증하고 이사회와 주주총회 등을 거쳐 최종 선임하는 구조다.
KB금융이 국민은행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후보 추천의 출발점이 지주에 있다는 점에서 지주 차원의 영향력이 작지 않다. KB금융 자추위는 양종희 현 회장과 이환주 국민은행장, 사외이사 3명 등 총 5명으로 구성돼 있다. 반면 국민은행 행추위는 전원 사외이사(독립이사)로 구성돼 있다.
주목할 부분은 KB금융은 계열사 CEO 후보군도 지주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KB금융 이사회는 지난 6월 '계열사 대표이사 후보군 관리 현황'과 '은행장 경영승계계획 적정성 점검 결과'를 보고 안건으로 다뤘다. 지주가 계열사 CEO 후보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향후 쟁점은 이러한 후보군 관리 자체보다는 국민은행 행추위 등 자회사 추천기구가 후보 발굴과 추천·검증 과정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역할을 갖느냐가 될 전망이다.
이미 다른 금융지주에서는 당국의 문제 제기를 반영해 자회사 이사회의 역할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BNK금융그룹은 최근 경영승계 절차를 개편해 은행 임추위가 CEO 후보를 직접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단계별 후보자 정보를 은행 임추위와 공유하고 지주 자추위의 최종 면접에도 은행 임추위원장이 참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후보 검증기간과 자회사별 CEO 자격요건도 구체화했다.
KB금융과 신한금융도 자회사 사외이사로 구성된 임추위에 CEO 후보 추천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처럼 지주가 후보를 추천하고 자회사 추천기구가 이를 검증하는 구조에서 나아가 후보 발굴·추천 단계부터 자회사 이사회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이다. 금융지주 전반에서 연말 인사를 앞두고 지주와 자회사 이사회 사이의 CEO 추천 권한을 어떻게 배분할지가 새로운 지배구조 이슈로 부상한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이 부문장에게 더욱 민감한 문제다. 올해 말 5대 금융그룹 계열사 가운데 임기가 만료되는 CEO는 54명에 달한다. KB금융에서도 10명의 계열사 CEO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특히 주요 금융지주 가운데 연말 계열사 인사를 앞두고 회장 교체가 확정된 곳은 KB금융이다. 새 회장 체제 출범과 대규모 계열사 인사가 맞물리면서 이 부문장의 첫 인사가 향후 KB의 인적 구성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당국의 요구가 이 부문장의 인사권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인사 재량을 행사하는 방식에 대한 검증 부담이다. 기존 인사를 유임하든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든 후보자의 경영 성과와 전문성, 향후 전략 등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이 부문장이 국민은행장 시절부터 함께 일했던 인사를 발탁할 경우 과거 업무 인연 자체보다 해당 후보가 어떤 성과와 전문성을 갖췄고 어떤 절차를 거쳐 최종 후보로 선정됐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당국이 특정 계파나 친소관계에 기반한 폐쇄적 승계를 경계하고 있는 만큼 '누구를 선택했느냐'와 함께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커진 셈이다.
이 부문장이 취임을 앞두고 내놓은 경영 구상은 오히려 당국이 요구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 이 부문장은 지난 14일 "회장 개인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경영이 아닌,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분권형 조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회장 개인의 판단보다 조직의 시스템과 절차를 중심에 놓겠다는 의미다.
연말 계열사 인사는 이 같은 '분권 경영' 구상을 실제로 보여줄 첫 무대가 될 전망이다. KB금융이 자회사 추천기구의 역할을 어디까지 확대할지, 계열사별 CEO 자격요건과 평가 기준을 얼마나 구체화할지에 따라 이 부문장이 내세운 분권 경영의 실질적인 모습도 드러날 수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에 따라 KB금융 연말 인사의 관전 포인트가 단순한 '이재근 사람 찾기'에서 인선의 기준과 절차로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인적 자원을 활용하더라도 경영 성과와 전문성을 근거로 시장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만큼 이 부문장의 첫 인사는 어떤 기준과 절차를 거쳐 이뤄지느냐에 맞춰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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