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웨이모와 바이두 등 자율주행 분야 강자로 꼽히는 미국과 중국 기업들의 한국 시장 진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로보택시 사업을 시작으로 해외 기업들의 국내 시장 선점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는 로보택시 시장에서 주도권을 지키려면 기술과 데이터를 축적할 산업 기반 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2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국내 자율주행 임시운행허가를 신청한 해외 기업은 없다. 현재 서울 강남 일대에서 자율주행 시범운행을 진행 중인 중국의 포니AI는 지난해 11월 한국 기업 포니링크와 함께 설립한 '퓨처링크'로 일종의 우회 신청을 한 상태다. 최근 국내에 법인을 세운 중국 바이두와 미국 웨이모는 아직 임시운행허가 신청 절차에 들어가지 않았다. 해외 법인 단독으로 신청한 사례는 아직 없는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해외 기업이 국내에서 지정된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에서 실증을 하려면 임시운행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외국에서 이미 자율주행을 검증받은 차량이라도 국내에 들여온다면 처음부터 국내 법에 맞게 안전기준을 적용해 다시 안전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연구·시범운행을 촉진하기 위해 규제특례가 적용되는 구역이다. 이달 기준 전국 17개 시·도에 총 57곳이 지정돼 있다.
업계에서는 바이두와 웨이모 등 해외 자율주행 기업들이 조만간 임시운행허가를 신청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포니AI처럼 단독보다 국내 기업과의 협력이나 합작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달 15일 웨이모는 내년부터 도쿄에서 완전 무인 로보택시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는데, 현지 기업과 협력하는 방식을 택했다.
최근 자율주행 강자로 꼽히는 해외 기업들이 한국을 주요 진출 국가로 점찍으면서 국내 기업이 기술을 축적할 틈도 없이 시장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자국 내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IT와 교통 인프라를 갖췄지만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인 한국이 새로운 활로로 꼽히기 때문이다. 로보택시는 단순히 택시나 자동차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가 결합된 미래 핵심 산업인 만큼 초기에 주도권을 놓치면 해외 기술 종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로보택시는 아직 초기 걸음마 수준이다. 전국에서 일반 시민 대상 자율주행택시를 운영하는 지역은 서울 강남(약 20.4㎢)이 유일하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중국은 우한과 베이징 등 각각 주요 도시에서 수천 대의 로보택시가 상업 운행 중인 것과 대조된다. 현재 강남에서는 19대가 운행 중이다. 이마저도 지난달 20일에야 7대에서 늘어난 규모다.
자율주행 솔루션 기업 에스더블유엠(SWM)이 KG모빌리티(KGM)의 코란도 이모션과 토레스EVX 등 13대를, 택시 플랫폼 운영사인 카카오모빌리티가 기아의 EV6 6대를 각각 운영한다. 완전 무인 로보택시와도 다소 거리가 있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완전 무인 로보택시가 상용화됐지만 강남 자율주행택시에는 아직 시험운전자가 동승한다. 운행 시간도 평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에 불과하며, 주말과 공휴일에는 이용할 수 없다.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이 뒤처지는 것은 실증 데이터 부족이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기업의 누적 자율주행 실증거리는 1306만km로, 웨이모(1억6000만km)와 바이두(2억km 이상)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자율주행은 도로 데이터를 많이 쌓을수록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고도화되는 산업이다. 국내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 57곳은 대부분 수km 단위의 노선형 구간으로 쪼개져 있었고, 도시 전체를 실증 구역으로 지정한 건 지난 4월 광주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실증 구역을 무작정 늘리기도 쉽지 않다. 국토부는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지방자치단체 신청을 받아 현장 검증을 진행하는데, 안전성 검토와 지자체 여건 등을 꼼꼼히 따지는 탓에 절차가 까다롭다. 지정과 해제가 반복되며 구역이 자주 바뀌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최근에는 기존 구역을 해제하기보다 면적이나 노선을 넓히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이에 올해는 지난해 말(55곳)보다 2곳 더 늘었다.
업계 안팎에서는 지금이 해외 기업과의 자율주행 기술·데이터 격차를 좁히는 데 힘을 쏟아야 할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지난해 4월 발간한 '(로보택시가) 지금, 모시러 갑니다' 보고서에서 "자율주행 기술 격차 축소를 위해 광주에서 첫 도시단위 실증이 예정된 가운데 미·중 선도기업들의 국내 시장 진입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로보택시가 상업화 검증 단계를 지나 글로벌 확산기에 접어들면서 시장을 선점한 선도기업과 후발주자 간 차이가 더 빠르게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한국은 로보택시 대중화를 위해 인프라·사업화 지원 등에서 과감한 캐치업(catch-up) 전략이 필요하다"며 "기존 이해관계자와의 공존방안 마련 등 사회적 합의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자율주행 현장에서도 위기감은 크다. 해외 기술에 의존하면 국내 산업의 경쟁력과 기술 주도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김기혁 에스더블유엠(SWM) 대표는 "글로벌 기업의 국내 진출 자체를 배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면서도 "해외 기술과 플랫폼이 국내 시장을 선점할 경우 국내 자율주행 산업이 기술과 데이터를 축적하고 성장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로보택시는 단순한 이동 서비스가 아니라 택시와 자동차, 소프트웨어, 데이터 산업이 결합된 미래 핵심 산업"이라며 "기술과 플랫폼을 해외 기업에 의존하게 되면 국내 택시산업은 물론 자동차산업의 경쟁력과 기술 주도권에도 장기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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