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GS그룹이 강원 동해에 추진하는 최대 2.4GW 규모 AI데이터센터(AIDC)가 '유휴 발전자산 활용'과 '글로벌 고객의 탈탄소 요구' 사이에서 딜레마를 안게 됐다. 송전망 부족으로 가동률이 떨어진 인근 석탄화력발전소와 대규모 전력 수요처인 AIDC를 연계할 경우 기존 발전자산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지만, 글로벌 클라우드서비스제공업체(CSP)들의 재생·무탄소 전력 조달 요구를 어떻게 충족할지도 풀어야 할 숙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GS그룹은 2028년까지 1단계 1.2GW, 2029년까지 2단계 1.2GW를 추가해 총 2.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동해에 구축할 계획이다.
AIDC는 GS E&R의 자회사인 GS동해전력 발전소 인근에 들어선다. GS동해전력은 595MW급 발전기 2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총 발전용량은 1.2GW다.
특히 GS동해전력의 현재 가동률이 약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입지가 주목받고 있다. 동해안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송전망 확충이 지연되면서 발전설비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전설비 용량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유휴 상태에 놓인 상황에서 AIDC가 발전소 인근에 들어서면 지역 내 새로운 대규모 전력 수요가 생기게 된다. 1단계 AIDC만 해도 전력 수요가 최종 1.2GW에 달하는 만큼 발전설비의 가동률을 크게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GS그룹 입장에서는 발전자산과 AIDC의 입지상 시너지가 사업의 핵심 논리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소비) 정책과도 맞닿아 있어 유사한 형태의 사업이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GS는 그룹 차원에서도 에너지와 인프라, 운영 역량을 AIDC 사업에 결집한다는 구상이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AI 대전환과 관련해 "에너지와 인프라, 운영 역량을 두루 갖춘 GS가 보유한 역량을 유기적으로 결집한다면 선도적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 동해 데이터센터 건립에는 GS그룹의 사업 역량이 폭넓게 참여한다. 전력 분야에는 GS파워·GS EPS·GS E&R 등이, 시공과 건축에는 데이터센터 설계·구축 경험을 보유한 GS건설·자이C&A 등이 참여한다. GS칼텍스가 상용화한 데이터센터용 액침냉각 제품도 활용될 수 있다.
전력 공급에 대해서 GS 측은 "한국전력과 계약해서 공급받게 되며, GS가 직접 공급하는 방식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물리적으로는 발전소와 데이터센터가 인접해 있지만, 전력시장에서는 발전사가 생산한 전력을 한국전력거래소(KPX) 도매시장을 통해 거래하고 한국전력이 이를 최종 수요자에게 공급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동해 AIDC를 지역 내 유휴 발전설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사업으로 보고 있다. 유진투자증권 황성현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전력 조달은 한국전력으로부터 수전을 받는 구조로 예상되며, 별도 발전설비 신설 없이도 동해 지역의 잉여 발전 용량으로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연내 강원-수도권 HVDC 2개 라인 중 1개 라인이 가동되면 GS동해전력 가동률이 현재 30% 에서 50% 수준으로 상승할 전망이며 AIDC 가동이 본격화되면 추가 상승도 가능할 것이라 판단한다”고 전망했다.
발전사가 최종 수요자와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을 맺는 방식도 현재는 재생에너지에 한해서만 허용된다. 석탄화력발전소인 GS동해전력이 AIDC와 직접 PPA를 체결해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어렵다는 의미다.
문제는 전력의 계약 구조와 AIDC가 지역 발전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AIDC가 한국전력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더라도 대규모 신규 수요가 GS동해전력의 가동률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결과적으로 지역 내 석탄발전설비의 새로운 수요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글로벌 CSP 유치 과정에서 또 다른 과제가 될 수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RE100 뿐만 아니라 무탄소 전력을 조달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GS가 유휴 발전자산 활용이라는 동해 입지의 장점을 살리면서 글로벌 고객이 요구하는 재생·무탄소 전력 조달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사업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GS그룹이 추진하는 모델은 발전사가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직접 판매하는 구조라기 보다 송전제약으로 활용도가 낮아진 발전설비가 위치한 지역에 대규모 전력 수요처를 유치해 발전과 데이터센터의 입지상 시너지를 만드는 방식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지역 내 재생에너지 공급 여건도 아직 대규모 AIDC 수요를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다. GS동해전력 등 지역 내 발전 사업자들은 RPS(RPS 의무공급비율) 대응 및 자체 탄소 감축을 위해 해양소수력, 태양광 등 일부 신재생·친환경 설비(약 16MW 수준 등)를 병행 운영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무탄소 에너지 전환을 위해 암모니아 혼소 발전 도입이나 풍력 발전 투자 등을 검토·추진 중이나, 대규모 전력 소비를 감당하기에는 아직 비중이 미미하다는 평가다.
동해시는 최근 청정수소도시 조성 사업(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력을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 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해 지역은 전력 자립률 자체는 높지만, 그 실체는 대부분 석탄화력발전에 기반한 상태다.
이 같은 문제는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최근 메타(Meta)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가스발전 7기를 건설해 5GW 규모 AI 데이터센터 '하이페리온'에 전력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후 신규 가스발전 투자가 RE100의 기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RE100에서 탈퇴했다. 동해 AIDC와 구조는 다르지만 AI 데이터센터 확대와 재생·무탄소 전력 확보 사이의 충돌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한국 역시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2029년까지 8.4GW, 2035년까지 1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계획하는 동시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확충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동해 AIDC와 같이 기존 발전설비의 유휴 용량을 대규모 데이터센터 수요와 연계하는 사업 모델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다만 한전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 구조에서는 특정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이 AIDC에 직접 전달되는지를 최종 수요자가 확인하기는 어렵다는 해석도 있다. 전력망을 통해 공급되는 전력은 여러 발전원의 전력이 계통에서 함께 거래·공급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GS동해전력의 가동률 상승과 AIDC의 실제 전력 사용을 직접 연결해 판단하기는 힘들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전이 전력 공급을 위해 동해전력의 발전량을 더 높일 수는 있지만, CSP가 한전을 통해 공급받은 전력이 어느 발전소에서 생산됐는지까지 알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며 “전력 자체에는 발전소를 특정할 수 있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고객사가 무탄소 전력 사용이나 탄소배출 감축을 요구한다면 한전을 통한 전력 조달과 별개로 탄소배출권이나 관련 크레딧 등을 활용해 대응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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