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지혜 기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4곳 중 1곳은 4년 이상 회수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시장 전반의 외형적인 위험 지표는 개선되고 있지만 장기간 자금 회수가 이뤄지지 않은 사업장은 오히려 빠르게 늘었다는 것이다. 신규 자금이 서울 오피스와 아파트 등으로 몰린 반면 토지와 비주거시설 등의 사업장에선 부실 정리가 지연돼 PF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증권·캐피탈사 51곳이 보유한 PF 익스포저 가운데 취급 후 4년 이상 회수되지 않은 '한계 PF'는 13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분석 대상 PF 익스포저 50조원의 26%에 해당한다. 지난 2024년 6월 2조8000억원, 6%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2년 만에 잔액이 4배 이상 늘었다.
여윤기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이날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AI-고금리-부동산 변화하는 시장환경과 시장위험: 위기와 기회의 재조명' 세미나에서 "신규 PF가 우량 자산 중심으로 취급되면서 포트폴리오의 평균적인 질은 개선됐다"면서도 "장기간 회수되지 않은 PF가 누적되면서 포트폴리오 내부의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됐다"고 말했다.
PF 시장 전체 규모는 줄어드는 추세다. 금융권 PF 익스포저는 새로운 사업성 평가 기준이 도입된 2024년 6월과 비교해 22% 감소했다. 신규 PF 역시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높은 자산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사업 유형별로는 서울 소재 오피스를 중심으로 PF 잔액이 증가했다. 아파트 사업도 시공능력이 우수한 건설사가 참여한 사업장 위주로 자금이 공급됐다. 반면 시공능력평가 100위 밖 건설사가 시공하는 사업장과 브릿지론, 물류센터 등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자산의 PF 잔액은 감소했다. 브릿지론 역시 단일 선순위 구조의 비중이 확대되는 등 질적 개선이 나타났다.
다만 이 같은 평균적인 지표 개선과 개별 사업장의 회수 가능성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한신평의 분석이다. 신규 우량 사업장이 전체 PF 포트폴리오의 지표를 끌어올리는 동안 기존 사업장 가운데 장기간 정상화되지 못한 자산이 누적되고 있어서다.
특히 한계 PF의 자산 구성이 문제로 꼽혔다. 13조1000억원 가운데 토지와 비주거 자산이 70%를 차지했다. 주거시설은 3조9000억원이지만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환금성이 높은 서울 아파트는 4000억원에 그쳤다. 나머지는 미분양 부담이 높은 지방·수도권 비아파트와 기타 주거시설 등으로 구성됐다. 이같은 한계 PF의 97%가 자산가치가 하락했거나 자금 회수 전망이 불투명한 자산군에 속했다.
사업장의 자체적인 정상화 여건도 녹록지 않다. 금리 부담에 더해 건설공사비가 상승하면서 개발사업의 수익성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성이 떨어지면 신규 투자자나 대주단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기존 PF의 만기 연장이나 리파이낸싱에 의존하는 기간도 길어질 수 있다.
담보 처분을 통한 회수 여건도 악화됐다. 서울 아파트의 경매 매각가율은 반등한 반면 토지와 비주거 자산의 낙찰가율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토지 매각가율은 50% 아래로 떨어져 최근 20여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PF 사업이 정상화되지 못할 경우 토지를 처분해 대출 원금을 회수하는 방식마저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여 수석애널리스트는 "과거에는 시간이 지나 시장이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재는 오히려 회수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며 "공사비 상승은 개발사업 수익성을 낮춰 신규 자금 유입을 어렵게 하고, 담보자산 가치 하락은 매각을 통한 회수 가능성까지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금융기관이 분류한 자산건전성보다 개별 PF 사업장의 잠재 위험이 더 클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신평은 약 3600개 PF 사업장에 사업 진행 상황과 회수 가능성 등을 반영한 6개 위험 요인을 적용해 건전성을 재평가했다.
그 결과 분석 대상 PF 50조원 가운데 8조3000억원이 기존보다 건전성을 낮춰 분류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요주의에서 고정 이하로 이동하는 익스포저가 6조8000억원, 고정에서 회수의문으로 이동하는 익스포저가 1조5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를 반영하면 고정이하 자산은 기존 6조원에서 12조7000억원으로 늘어난다. 고정이하여신비율 역시 12%에서 25%로 두 배 이상 상승한다. 금융기관이 추가로 쌓아야 할 충당금은 1조9000억원으로 추산됐다.
한신평은 PF 부실이 금융시장 전반의 시스템 위험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개별 금융사별 위험 격차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잠재적인 건전성 하향 익스포저가 자기자본의 10%를 넘어서는 금융사가 13곳에 달했고, 가장 높은 곳은 자기자본의 60% 수준이었다. 7곳은 추가 충당금 부담이 연간 이익 규모를 웃돌았다.
결국 향후 PF 시장의 관건은 전체 익스포저 감소보다 장기간 묶여 있는 사업장을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정리하느냐가 될 전망이다. 우량 사업장의 신규 PF 공급만으로 전체 지표가 개선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토지와 비주거시설 등 장기 미회수 사업장의 손실을 현실화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여 수석애널리스트는 "자산가치 하락과 공사비 상승 등으로 PF 회수 여건이 구조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며 "잠재 부실의 이연을 멈추고 단계적인 손실 인식과 실질적인 사업장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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