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정희 기자] KG모빌리티(KGM)가 중국 체리자동차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KGM은 내년 초 체리차의 'T2X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 중인 'SE10'을 국내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양사는 이를 시작으로 글로벌 전략차종 공동개발은 물론 로봇·반도체 등 미래 사업으로 협력 범위를 넓혀나간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경우 체리차에 대한 KGM의 기술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자체 플랫폼과 독자 신차 개발 비중이 줄면서 장기적으로는 독자개발 역량이 약화되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KGM은 체리차와 협력해 개발 중인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SE10을 2027년 1월 국내 시장에 출시할 방침이다. SE10은 KGM의 상품기획과 디자인에 체리차의 친환경 파워트레인 및 글로벌 플랫폼 기술을 결합해 개발되고 있다. SE10은 체리차의 T2X 플랫폼을 기반으로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와 2.0ℓ 가솔린 모델로 출시될 예정이다.
KGM은 SE10을 시작으로 체리차와 유럽 및 동남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후속 차종을 공동개발하고, 로봇과 반도체 등 미래 신사업 분야에서도 협력할 계획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체 플랫폼을 개발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재원이 제한적인 KGM으로서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체리 플랫폼을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협력이 장기화할 경우 KGM의 독자 개발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플랫폼은 차체 설계와 전장 시스템, 파워트레인 구성 등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이다. 외부 플랫폼 활용이 반복되면 개발비와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대신 자체 플랫폼을 설계·개선하는 경험과 기술을 내부에 축적할 기회는 줄어들 수 있다.
특히 체리차와의 공동개발 차종이 늘어날수록 KGM이 직접 담당하는 신차 개발 영역도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으로는 개발비 절감과 신차 출시 기간 단축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체리차에 대한 기술 없이는 신차 개발 속도를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KGM의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R&D) 비용은 9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7% 감소했다. 아직 양산되지 않은 신차 개발에 투입되는 기타무형자산 신규 유입액도 471억원으로 30.9% 줄었다. 같은 기간 매출이 24.8% 늘어난 것과 대조적으로, 매출 대비 R&D 비중도 6.8%에서 4%로 낮아졌다.
SE10의 높은 판매 목표도 체리 플랫폼 의존도를 키울 수 있는 요인이다. KGM은 SE10 판매 목표를 내수 3만대, 해외 3만대 등 총 6만대로 잡고 있다. 지난해 KGM 전체 판매량이 11만535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SE10 한 차종이 절반을 웃도는 물량을 담당하게 되는 셈이다. 향후 판매 성장에서 체리 플랫폼 기반 차종의 비중이 빠르게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체리차가 향후 KGM 주요 주주로 올라설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KGM이 체리차로부터 약 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체리차가 인수했기 때문이다. CB가 전량 주식으로 전환되면 체리차는 KGM 지분 약 16%를 확보할 수 있다. 기술 협력에 이어 자본 관계까지 형성될 경우 양사의 결속력은 한층 강해질 수 있다.
르노코리아의 사례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르노코리아는 지리자동차의 CMA 플랫폼을 기반으로 '그랑 콜레오스'를 개발한 데 이어 현재 지리차그룹 산하 폴스타의 '폴스타4'를 부산공장에서 위탁생산하고 있다. KGM 역시 체리차와의 기술·공동개발 협력이 확대될 경우 장기적으로 생산 협력까지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국내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을 확대하면서 이들이 보유한 공장을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생산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KGM은 체리차 위탁생산 가능성에는 선을 긋고 있다. 황기영 KGM 대표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평택공장에서 체리차 차량을 위탁생산하는 방안은 검토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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